유엔 아동권리위원회(CRC)가 11일(현지 시각) 한 나라의 온실가스 배출이 다른 국가 아동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경우 배출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12개국 아동 16명이 제출한 아르헨티나·브라질·프랑스·독일·터키 등 5개국 정부의 책임을 묻는 진정서를 검토한 결과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이날 발표했다.
2019년 스웨덴 출신 기후행동가 그레타 툰베리(18)를 비롯해 프랑스, 독일, 인도 등 12국 아동 16명이 CRC에 진정서를 냈다. 이들은 “5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충분히 억제하지 않음으로써, 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생명·건강·문화에 관한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후위기는 미래의 추상적인 위협이 아니며, 전 세계 평균 기온 상승이 이미 폭염이나 전염병, 산불, 홍수, 해수면 상승을 촉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기후 변화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위협을 받고 있다고 했다.
위원회는 영토 내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영토 밖 어린이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칠 경우 해당 정부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또 청소년은 생명, 건강, 문화의 측면에서 기후 위기로 인한 예측 가능한 피해자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진정서를 낸 청소년들은 “실망스럽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인 사안과 관련해서는 위원회가 “국가 법원에 진정서를 먼저 제출하고, 국가에서 시도할 수 있는 법적 구제책이 소진됐을 경우에만 위원회에서 진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 어스저스티스는 “독일과 터키에서는 외국인이 환경과 관련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며 “사실상 위원회는 청소년들에게 어쩔 수 없는 ‘기각’ 판결을 기다리면서 세월을 낭비하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했다.
이번 행동에 참여한 브라질 출신 카타리나 로렌조(14)는 “우리는 각국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의 과학적 증거를 제시했지만, 위원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아동들이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조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이런 입장을 낸 위원회에 실망했다”고 했다. 남아공 출신 아야카 멜리타파(19)는 “앞으로 나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데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플랫폼을 사용하기로 굳게 결심했다”고 했다.
법적 자문을 맡은 스콧 길모어 하우스펠트 수석 변호사는 “위원회는 어린이 생명이 위험에 처해있으며,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유엔의 문을 닫았다”며 “기후를 둘러싼 법적 다툼이 이제 국가 법원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