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병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MZ세대, 환경 문제 민감… 이벤트성 친환경 경영 한계
자사 제품 수거·재활용하는 ‘자원 순환 시스템’ 구축해야
‘환경 문제 어떻게 해결하느냐’ 기업의 평가 기준될 것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글로벌 이슈로 떠오르면서 기업도 소비자도 이젠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부나 기업, 비영리단체는 나름의 설루션을 쏟아내고 있어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설루션들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경제적 손익과 편익을 민감하게 따지면서 동시에 기업이 환경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라기 때문이죠.”
김병규(46)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외 기업들의 단발성 친환경 캠페인에 불만이 많다. 최근 소비재 기업들이 재활용 플라스틱을 활용한다는 그 자체만 홍보하는 ‘그린워싱’이 줄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출간한 책 ‘플라스틱은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에는 국내 기업에 대한 쓴소리도 담았다. 지난 2일 만난 김 교수는 “책 출간 이후 몇몇 기업과 연락이 끊겼다”면서 웃었다. 그는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 문제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답답함을 넘어 회의를 느낄 정도”라며 “이렇게 해결이 어려울수록 플라스틱 문제는 더욱더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발전하게 되고 더 나아가 소비자들이 기업과 브랜드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친환경에 대한 얕은 고민이 ‘그린워싱’ 만든다
“소비자들이 플라스틱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물 부족이나 식량난, 이상기후보다 더 심각하게 느끼죠. 현재 기업의 최대 당면 과제도 플라스틱 문제입니다. 이 말은 역설적이게도 최고의 브랜드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김병규 교수는 브랜드 전략이 중요해지는 이유를 ‘MZ세대’에서 찾는다. 그는 “MZ세대는 소비 빈도가 높고 온라인에서 강한 구전 효과를 만들어내는 소비 집단”이라며 “이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가 바로 플라스틱 문제”라고 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젊은 소비자들은 기성세대와 다르다고 느끼고 싶어해요. 요즘 MZ세대도 기성세대와 다른 가치관을 갖고 기존과 다른 제품과 브랜드를 소비하면서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지금 MZ세대에게는 진실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지난해 여름에 ‘스팸 플라스틱 뚜껑 반납’이나 ‘요구르트 빨대 반납’ 등으로 나타난 ‘플라스틱 어택’이 대표적인 사례죠.”
기업들은 소비자 요구에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얕은 고민은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그린워싱’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을 높인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기업의 ‘그린워싱’에 대한 비판이 이뤄졌어요. 대표적으로 미국 석유회사 셰브론은 당시 야생동물 쉼터를 마련한다는 환경보호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했습니다. 실제 사업비의 몇 배를 TV 광고에 쏟아부었죠. 그런데 언론과 시민들의 비판에 직면했던 겁니다. 미국은 그린워싱의 역사가 50년 됐어요. 반면 국내는 좀 더딥니다. 친환경 경영은 제조 공법의 전환이 이뤄져야 하는 부분인데 대부분의 기업은 하나의 이벤트나 시범 사업 정도로만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환경 규제도 기업의 변화를 유도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기업에서 저항을 할 수 있는 이유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정부의 규제가 비용을 특별히 높이지 않고, 국내에서 유통되는 제품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면 기업에서 굳이 저항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 차원의 가장 대표적인 환경 규제는 자동차 배출가스 제한입니다.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는 시간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죠. 모든 자동차 제조업에 적용되기 때문에 친환경 전기차로 전환하고 있는 겁니다. 플라스틱 문제로 생각해보면 국내에서 제품을 판매하려면 페트(PET)나 재활용 플라스틱 원료 비율을 정해놓는 것도 방법이 되겠죠.”
업사이클은 스타트업… 대기업은 리사이클
버려진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김병규 교수는 업사이클과 리사이클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업사이클은 대기업의 영역이 아닙니다. 업사이클의 목적은 버려진 자원도 높은 가치의 제품이나 예술품으로 재탄생될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이죠. 얼마나 많은 제품이 만들어지고 얼마나 팔렸는지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환경 단체나 스타트업에 적합한 활동이죠. 큰 회사들은 성장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환경 문제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업사이클이 아니라 자원을 순환하는 리사이클에 전념해야 합니다.”
김 교수는 해외 기업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재활용 플라스틱 원료를 적극 활용하는 나이키가 대표적이다. 운동화는 생산 과정에서 부산물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기능성 운동화는 상부, 깔창, 밑창 등 소재도 다양하다. 나이키는 부산물을 줄이기 위해 제조 방식을 아예 바꿨다. 원단을 이어 붙이던 신발 상부는 원사로 두꺼운 양말처럼 만들어 원재료 사용을 60% 줄이고, 바닥의 에어솔은 재활용 플라스틱 비율을 75%로 높였다. 김 교수는 “나이키가 친환경적 성격을 강조하지 않는 게 핵심”이라며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제품이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는 재활용 자원을 이처럼 많이 사용해 만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국내 화장품 기업인 ‘아로마티카’는 제품 용기를 재활용 플라스틱과 유리를 활용해 만듭니다. 주변에 이 브랜드를 쓰는 사람이 있어서 물었더니, 재활용 원료를 쓰는지 모르고 있었어요. 나이키 사례와 마찬가지죠. 우선 상품성으로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이어야 합니다. 많이 팔려야 환경에 도움이 되는 거니까요. 그 효과가 수치적으로 잡히게 되면 소비자들도 자연스럽게 기업의 노력을 알게 됩니다.”
김병규 교수는 이런 전략을 ‘사일런트 리사이클’이라고 명명했다. 재활용 자원을 활용하면서 전면에 드러내지는 않는 게 핵심이다. 미국의 여성용 신발 브랜드 ‘로티스(Rothy’s)’도 사일런트 리사이클의 대표적 사례다. 로티스는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플랫 슈즈를 연간 100만 켤레 넘게 판매하고 있다. 로티스의 신발은 디자인과 품질로 먼저 주목을 받았고, 재활용 소재라는 건 그 이후에 알려졌다.
“지난 수십 년간 기업은 품질로 시장에서 승부를 봤습니다. 품질이 곧 브랜드 가치였죠. 그런데 이제 품질만으로는 부족해요. 플라스틱 브랜드 전략이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자사 제품을 수거하고 재활용해서 다시 활용하는 ‘자원 순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기업들이 자원 순환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폐기물 시장이 하나의 비즈니스 산업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대기업이 움직여야 재활용 원료의 단가가 떨어집니다. SK, 효성, LG 등 일부 기업이 폐기물 시장에 투자를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어서 희망적이에요. 수요가 만들어지면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재활용 원료의 단가도 낮아질 겁니다. 재활용 원료와 새 플라스틱 제조 가격에 별 차이가 나지 않으면 더 많은 기업이 자원 순환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김병규 교수는 ‘플라스틱 문제를 기업이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환경에 기여하는 일은 기업의 이익을 보장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목표는 이익 극대화입니다. 결국 이익을 얻을 수 있어야만 움직일 텐데 이미 움직이고 있어요. 뒤처지는 기업은 시장에서 밀려나겠죠. 자원 순환 시장은 조만간 크게 성장할 겁니다. 그 시기를 앞당기려면 정부 지원이 필요하겠죠. 환경문제 해결에 노력하는 기업에 대한 보상도 필요해요. 무조건 비판하기보다는 현재의 기술력으로 최선의 해결책을 내놓은 기업의 노력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문화도 만들어져야 합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