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시민공익위원회 법률 제정… 서두를 필요 없다

이제훈 한국자선단체협의회 공동대표(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

정부는 지난 7월 27일 국무회의에서 법무부가 마련한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을 통과시켜 국회로 넘기는 작업을 끝냈다. 이 법은 민간 비영리 공익법인을 총괄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시민공익위원회’(공익위원회)의 신설과 운영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정부가 ‘시민공익위원회’를 신설하려는 이유는 비영리 공익법인이 투명하고 건전하게 공익 활동을 전개할 수 있게 돕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러한 선의의 취지와 달리 법안 내용을 살펴보니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점과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 법은 접근법 자체가 비영리 공익법인 활동을 ‘반부패 개혁’ 차원에서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고자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민간의 자발적 공익 활동과 연관성이 적은 법무부가 이 법(안)의 주무부처가 될 뿐 아니라, 시민공익위원장을 법무부장관이 제청해서 대통령이 임명하고 실무를 총괄하는 상임위원 역시 위원장 추천→법무장관 제청→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해놓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법무부가 공익법인들을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원봉사, 국제 구호, 빈곤 아동 지원, 인권, 환경, 평화운동 등 공익을 위하여 민간이 벌이는 비영리 공익 활동을 법무부가 통제하려 든다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다. 민간 공익 활동은 가능한 한 민간의 자율성·책무성을 높여가면서 통제보다는 격려 및 지원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도 담보되기 어렵다. 각 분야에서 사회적 공익을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단체들이 정권에 따라 또는 장관의 성향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면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 국무회의를 통과한 법안대로라면 시민공익위원회는 법무장관 그리고 대통령의 뜻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순수하게 사회 공익을 위해 일하도록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해주는 장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이번 법률안은 공익법인의 설립 허가 및 취소 등과 관련해 현행 주무 부처 제도를 그대로 존치시키고 공익 활동에 대한 관리, 감독 업무를 공익위원회에 맡기는 한편 위법 사항 발견 시 공익위원회에도 법인 취소나 임원해임권을 부여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중 규제라는 비판을 면하기가 어렵게 됐다.

비영리 공익법인이 역동성·책무성·자발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영국, 호주 등의 예에서 보듯이 민간 각 부문에서의 전문성과 전문 역량을 기반으로 자기 책임하에 클 수 있도록 통제보다는 격려 정책을 펴야 옳은 일이다. 비영리 공익법인들의 활동 기반은 따듯한 공동체 사회로 가는 길에 꼭 필요한 기부 문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기부 문화 활성화를 위해서도 정부의 통제 강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시민공익위원회의 설립은 정부와 비영리단체가 5년 전부터 함께 진지하게 검토해왔고 정부 당국에 건의한 사항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정부 안은 책임을 지고 사업을 수행하는 민간 단체들의 생각이나 입장과 너무 거리가 멀다. 법률 제정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반민반관(半民半官) 체제로 시민공익위원회를 운영하되 민간이 주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공익을 내걸고 사익을 취하는 일탈 행위를 감시하고 단속하는 일, 그리고 비영리 공익법인들이 투명성과 책무성을 잘 지키고 있는지를 지도·감독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훈 한국자선단체협의회 공동대표(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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