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이제 사회혁신도 메타버스다

[Cover Story] 메타버스의 소셜임팩트

최근 산업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메타버스(metaverse)’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비대면 생활이 길어지면서 현실을 가상세계로 확장하려는 열망과 맞물리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메타버스는 초월이라는 뜻의 ‘메타(Meta)’와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가 합쳐진 단어다. 메타버스 활용 사례도 부쩍 늘었다. 대학에서는 메타버스로 입시 설명회와 신입생 환영회, 대학 축제를 열었고 최근 도서관도 구축했다. 기업들은 신입 사원 채용 설명회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메타버스에서 진행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대선 후보들이 이른바 ‘MZ세대’ 표심을 잡기 위해 네이버Z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유세장을 마련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기간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에서 선거 캠프를 꾸리고 디지털 콘텐츠에 익숙한 젊은 유권자와 소통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메타버스는 아바타를 활용한 게임 혹은 가상공간에서 이뤄지는 비대면 회의 등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메타버스를 특정 산업에 국한하지 않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교육·의료·엔터테인먼트 등 사회 전반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메타버스를 활용해 ‘디지털 소셜임팩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한킴벌리는 올해 33년째를 맞는 사회 공헌 사업 ‘그린캠프’를 올해 처음 메타버스에서 개최했다. 사진은 지난 4일 그린캠프 폐막식에서 참여자들이 한데 모여 박수를 치는 모습. /유한킴벌리그린캠프 캡처

사회공헌 사업도 메타버스로

유한킴벌리는 1988년부터 매년 이어온 환경교육 캠페인 ‘유한킴벌리 그린캠프’를 올해 처음 메타버스에서 개최했다. 지난 2~4일 진행된 그린캠프는 메타버스 플랫폼 ‘개더타운’ 기반으로 제작됐다. 2000년대 초반 유행을 끈 싸이월드 아바타처럼 2D 도트 그래픽으로 제작된 게 특징이다. 프로그램이나 애플리케이션 설치 없이 접속 링크만으로 실행되고, 별도의 회원 가입 절차도 없다.

캠프 첫날인 2일, 참가자 300여 명이 한 공간에 모였다. 참가자들은 숲으로 둘러싸인 광장에서 출발해 산책로, 강의실, 서재, 공방, 이벤트존 등 다양한 공간으로 이동했다. 키보드나 마우스로 아바타를 이동하고 가까운 거리에 다른 이용자가 있으면 화상과 음성 기능이 켜지면서 연결됐다.

오후 1시 ‘숲터디’ 강의 세션이 열렸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생물다양성과 숲의 의미’를 주제로 실시간 강연을 시작했다. 가상공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300여 개의 아바타가 대형 강의실에 모였다. 공방에서는 체험 클래스가 열렸다. 행사 전 캠프 참여자에게 지급된 라탄·자수 체험 클래스 재료를 활용해 직접 공예품을 만들어볼 수 있었다. 캠프에 참여한 송유림씨는 “비대면으로 몰입해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았는데 집중이 잘됐다”면서 “캠프에서 배운 대로 환경 친화적 기업의 제품을 더 많이 이용하고 플로깅도 생활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캠프는 기획부터 개발까지 석 달이 소요됐다. 참가자들을 미리 선발해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경쟁률은 6.4대1로 전년 대비 91%나 높았다. 유란 유한킴벌리 커뮤니케이션&CSR본부 과장은 “오프라인으로 진행했을 때 공간의 제약으로 100명 남짓 참여하던 프로그램에 메타버스를 적용하면서 약 400명이 참여할 수 있었다”면서 “비대면 상황에서도 지속 가능한 사회공헌 사업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했다.

성장하는 메타버스… 산업 간 융합으로 임팩트 창출

메타버스는 특징은 누구나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고, 시공간도 초월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비영리기술연구단체인 미래가속화연구재단(ASF)은 2007년 보고서를 통해 메타버스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라이프로깅(Lifelogging) ▲거울세계(Mirror Worlds) ▲가상세계(Virtual Worlds) 등 네 가지로 구분했다. 증강현실은 GPS 기반으로 특정 이벤트를 발생시키는 기술이다. 지난 2017년 유행한 게임 ‘포켓몬고’가 대표적이다. 라이프로깅은 일상을 디지털로 공유하는 SNS를 뜻하고, 거울세계는 ‘구글어스’처럼 현실을 그대로 가상공간으로 구현한 기술이다. 가상세계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된 게임이 대표적이다. 이미 일상에서 경험하는 기술들이 메타버스의 한 영역인 셈이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PwC는 전 세계 메타버스 시장 규모를 지난 2019년 464억달러(약 53조원)에서 2030년 1조5429억달러(약 1765조원)로 30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메타버스 관련 고용 규모도 같은 기간 82만명에서 2336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화제를 모은 네이버Z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의 가입자 수는 2억8000만명을 돌파했다. 메타버스 기반의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는 지난 5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시가총액 53조원(5일 기준)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메타버스는 교육, 의료, 조선 등 다른 산업과 만나 사회혁신 사례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시아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ASCVTS)는 지난 5월 학술대회에서 메타버스 플랫폼을 통해 폐암 수술 교육을 진행했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이뤄지는 실제 수술에 아시아 각국의 흉부외과 의료인 200여 명이 참여했다. 수술 과정 생중계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메타버스를 활용하면 일방적으로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수술실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삼성중공업은 선박 건조 시뮬레이션과 품질검사에 메타버스를 적용했다. 기존 실제 컨테이너 모형을 이용하던 것에서 3D 스캐닝 기반의 가상 조립 시뮬레이션으로 비용을 줄이고 안전도 확보했다. LNG선 건조 시 재작업 비율은 70%에서 20%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대기오염 수준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술도 나왔다. 영국의 XR(확장현실) 기술스튜디오 ‘서라운드비전’은 이용자 주변의 대기질을 측정해 스마트폰 화면에 AR로 스모그를 생성하는 애플리케이션 ‘클린에어(Clean A/R)’를 내놨다. 오염도가 높을수록 스모그가 짙어지는 방식이다. 리처드 노클스 서라운드비전 설립자는 “도시 대기오염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지역 정치인들에게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메타버스는 모든 산업군에 접목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에 활용법에 따라 경제적인 혜택을 넘어 사회적 혜택까지 구현할 수 있다”면서 “의료나 사회복지 분야에서 사회혁신 사례가 쌓여가면 메타버스가 한때의 유행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리얼 메타버스’로 장애를 뛰어넘다

메타버스 산업이 확장하기 위해서는 플랫폼뿐 아니라 VR·AR기기 등 하드웨어 성장이 뒤따라야 한다. 특히 하드웨어 기술은 의료·헬스케어 분야와 접목한 연구가 활발하다. 지난 5월 삼성전자 사내벤처 육성프로그램인 C랩(Creative Lab)에서 개발한 시각 보조 애플리케이션 ‘릴루미노’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안과학 진료용 소프트웨어’로 품목 허가를 받았다. 릴루미노는 전맹 시각장애인을 제외한 저시력 장애인이 사물을 더 뚜렷하게 볼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다. VR기기를 착용하면 앞쪽에 설치된 카메라로 입력된 영상이 실시간으로 이미지 처리 과정을 거쳐 시각장애인이 식별할 수 있는 형태로 제공된다. 굴절 장애나 변시증, 백내장 등으로 시야가 왜곡되고 뿌옇게 보이던 장애인들은 시각 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시야 내에 섬 모양으로 보이지 않는 부위가 있는 ‘암점’과 시야협장의 일종인 ‘터널시야’를 가진 이용자를 위한 이미지 재배치 기능도 제공된다.

릴루미노가 처음 선보인 건 지난 2017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산업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다. 당시 사회혁신 사례로 주목받았지만 의료기기법 등 관련 규제를 통과하지 못해 상용화 단계를 밟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안경 형태의 VR기기인 ‘릴루미노 글라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인공감각 기술을 통해 시청각 경험을 메타버스에서 구현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이른바 ‘리얼 메타버스(Real Metaverse)’다. 가상세계에서 시청각뿐 아니라 촉각, 후각, 미각도 느낄 수 있는 기술이다. 해외에서는 전맹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인공시각 기술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스페인 미겔에르난데스대 연구팀은 시각장애인에게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안경을 쓰게 하고, 안경을 통해 얻는 영상을 뇌에 전기신호로 전달하는 임상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연구책임자인 에두아르도 페르난데스 교수는 “이 실험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시각장애인이 종이에 쓰인 글자의 윤곽을 식별할 정도로 부분적 시력을 회복했다”면서 “다만 대뇌피질에 전자신호를 전달하는 방식이라 안전성 입증을 위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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