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수)

“정보 소외 없도록… 시각장애인 쇼핑 앱 개발”

[인터뷰] 박지혁 와들 대표

점자 변환 휴대폰 케이스 개발하기도
상품 사진 문자로 바꿔주는 ‘소리마켓’
보안성은 살리면서 결제 접근성 개선

지난달 31일 만난 박지혁 와들 대표는 “소리마켓의 기술이 이커머스 분야를 넘어 더 많은 영역에 활용되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시각장애인들도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하는 일상생활은 정말 잘해요. 하지만 시각 정보가 대부분인 디지털 영역에는 정말 취약하죠. 특히 온라인 쇼핑과 같은 이커머스(e-commerce) 분야에서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시각장애인 쇼핑 앱 ‘소리마켓’을 만들었습니다.”

소리마켓을 탄생시킨 박지혁(24) 와들 대표는 6년 차 개발자다. 한국과학영재학교 시절 영화 ‘아이언맨2’를 보고 슈트 로봇 개발을 꿈꿨고, 고 2 때는 뇌성마비 환자들의 보행 보조 재활 로봇 개발 연구에 참여하며 재활공학에 눈을 떴다. 카이스트에 진학한 뒤 점자 스마트워치를 개발한 ‘닷 인코퍼레이션’에서 8개월간 일했다. 기술 혁신의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 계층의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운 건 그즈음이었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박 대표는 “당장 끌어다 쓸 수 있는 기술만으로도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지점이 보여 ‘와들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와들(waddle)은 뒤뚱거린다는 뜻이에요. 펭귄은 뒤뚱거리면서 걷지만 느린 걸음으로 수백㎞를 걷죠. 대학교 2학년 때인 2018년에 뜻이 맞는 선후배 6명과 팀을 꾸리면서 와들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학부생이라 미숙한 점도 있지만 ‘기술의 혜택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차별 없이 정보를 누리게 하겠다’는 목표를 향해 끈기 있게 간다는 뜻이에요.”

와들 팀은 대학 생활 접했던 기술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학교 근처 장애인복지관을 방문해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조사했다. 스마트폰 화면에 뜨는 글자들을 점자로 변환시켜 주는 휴대폰 케이스를 개발하기도 했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뉴스 플랫폼도 만들었다. 여러 서비스 중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게 ‘소리마켓’이었다.

“시각장애인 대부분이 온라인 쇼핑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기존에 ‘스크린리더’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텍스트만 인식해서 읽어주고 이미지 안에 들어 있는 텍스트는 읽어주지 못했어요. 예를 들어 상품 정보가 가득 적힌 이미지가 있어도 ‘이미지’라고만 읽어주고 끝나는 식이었죠.”

와들 팀은 ‘광학 문자 인식(OCR·Optical Character Recognition)’ 기술을 떠올렸다. OCR 기술은 사람이 쓰거나 기계로 인쇄한 문자가 포함된 이미지를 스캐너로 인식, 분석해 컴퓨터로 읽을 수 있는 문자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대학생 수준에서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기도 했다.

“OCR 기술을 활용해 상품 이미지에 담긴 텍스트를 읽어주는 쇼핑 앱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미지 안에 생각보다 불필요한 텍스트들이 많더라고요. 이용자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필요한 정보만 필터링해 제공하는 자체 기술을 개발했어요.”

시각장애인들이 어려움을 겪던 ‘결제’ 단계의 접근성도 개선했다. 박 대표는 “랜덤 키패드와 같이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기 어려운 결제 과정은 없앴고, 보안성은 살리면서도 음성 지원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쇼핑은 회원 가입-로그인-검색-결제 단계를 거쳐야 해요. 이 중 한 단계라도 할 수 없으면 쇼핑을 못 한다는 얘깁니다. 소리마켓은 쇼핑의 모든 과정을 시각장애인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개선한 ‘배리어 프리’ 쇼핑몰이에요.”

2019년 12월 시각장애인 8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소리마켓 앱 베타 테스트에서는 스스로 온라인 쇼핑을 하지 못했던 시각장애인의 81.8%가 혼자서 상품을 주문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소리마켓 서비스를 오픈한 건 지난해 7월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복지관 등을 대상으로 하는 오프라인 마케팅을 거의 진행하지 못했지만 이미 이용자 1500명을 확보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한 이용자분이 소리마켓 덕분에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선물을 보내줄 수 있었다며 기뻐하셨어요. 사실은 너무 오래 걸린 거죠. 기술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최근 와들은 사업 초기부터 협업을 해오던 11번가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11번가는 올 하반기 자사 플랫폼에 소리마켓의 OCR 엔진 기술을 도입한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현재 와들은 상품의 색상이나 형태 등 ‘비(非)텍스트 시각 정보’까지 제공할 수 있는 이미지 해설 기술을 개발 중이다.

“‘기술은 가장 많은 사람에게 쓰일 때 가장 강력하다.’ 팀 쿡 애플 CEO가 회사의 기술 접근성을 강조하면서 했던 말이에요. 저희도 같은 생각이에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기술의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고 있지는 않잖아요. 이번에 소리마켓을 통해 시각장애인의 이커머스 문제를 해결했지만, 앞으로는 기술 혁신의 사각지대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강명윤 더나은미래 기자 my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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