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거친 파고 견뎠더니 ‘파력발전 상용화’ 눈앞에”

[인터뷰] 성용준 인진 대표

투자자 러브콜 잇따라 ‘누적 170억’ 돌파
발전 설비 연안에 설치하는 ‘온쇼어’ 공략
상하좌우 파도 움직임, 에너지 전환 기술

26일 만난 성용준 인진 대표는 “사람과 기술을 기반으로 인류에게 공헌하겠다”면서 “사람 ‘인’에 엔지니어링의 ‘진’을 따와 지은 사명(社名)의 뜻이자 조직의 미션”이라고 했다. /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올해로 창업 10년. 파력(波力)발전 스타트업 ‘인진(INGINE)’은 기술력으로 글로벌 선두 그룹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파력발전 기술로 상용화에 성공한 기업은 없다. 인진의 매출은 지난해 설립 이후 처음으로 낸 10억원이 전부지만, 투자자들의 ‘러브콜’이 잇따르는 이유다. 특히 지난달 12일 KDB산업은행으로부터 4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누적 투자금 17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동대문구 사무실에서 만난 성용준(46) 대표는 “매출 없이 9년을 서바이벌한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라며 “왜 이 고생을 하나 싶은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 시간을 견디고 나니 ‘파력발전 상용화’는 기필코 해내야 하는 사명(使命)이 됐다”고 말했다.

파력발전은 태양광·풍력발전 다음으로 꼽히는 차세대 에너지원이다. 파도의 움직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신재생에너지로, 태양광이나 풍력보다 날씨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24시간 작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기술적으로는 먼바다에 구조물을 띄우는 ‘오프쇼어’와 연안에 설비를 설치하는 ‘온쇼어’ 등 두 가지로 구분된다. 글로벌 기업들 대부분이 오프쇼어 방식이지만, 성용준 대표는 온쇼어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오프쇼어는 넓은 면적에 대규모 설비를 구축하는 대형 프로젝트에 적합해요. 전력 수요가 큰 대도시에도 공급할 전기를 생산할 수 있지요. 대신 초기 투자금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어요. 최소 수천억원이 필요해요. 먼바다에서 생산한 전력을 육지까지 끌어오는 해저 송전 케이블 비용도 만만찮죠. 반면 온쇼어는 발전설비를 해안에 설치하고 연안에 구조물을 띄워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고 전력 수요가 낮은 섬 지역에 알맞죠.”

인진의 파력발전 기술은 연안에 띄운 구조물이 파도의 운동에 따라 움직이면 육지의 발전기와 연결된 특수 로프가 당겨지면서 전기가 생산되는 방식이다. 현재 기술성숙도(TRL)는 7단계다. TRL은 미 항공우주국(NASA)이 개발한 기술 측정 수단으로 기초연구(1~2단계)부터 상용화(9단계)까지 구분된다. 성 대표는 “파력발전 기술은 아직 시장에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위닝테크놀로지’가 없기 때문에 기업마다 핵심 기술이 다르다”면서 “누가 먼저 상용화 깃발을 꽂느냐의 싸움”이라고 했다. 현재 온쇼어 방식으로 TRL 7단계까지 도달한 기업은 인진과 이스라엘의 에코웨이브파워 등 두 곳에 불과하다.

물론 온쇼어 방식이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파도의 크기다. 파도가 크게 칠수록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데, 연안은 수심이 얕아 파고도 높지 않기 때문이다. 성 대표는 “파도 높이는 보통 수심의 0.6배 정도인데, 발전기를 돌리려면 수심이 적어도 3m는 돼야 한다”면서 “이 때문에 파도의 상하 운동만 흡수하는 기존 방식에서 상하좌우 모든 움직임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진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초 인진 영국법인은 영국을 대표하는 신재생에너지 기업으로 선정돼 영국·모로코 파력발전 협력 사업 대상으로 계약을 맺었다. 또 2019년 12월 미국 에너지 전문 잡지 ‘에너지 CIO인사이트’에서 선정한 ‘에너지 기업 톱10’으로 꼽히면서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지금은 베트남 안빈섬에서 ‘탄소제로 섬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인구 500명의 안빈섬에서 파력발전 기술로 전력을 공급하는 사업으로 내년 상반기에 완공될 예정이다. 성 대표는 “모로코 사업이나 베트남 사업을 통해 올해 TRL 8단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며 “2023년이면 9단계에 도달한 최초의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력발전이 해외로 눈을 돌린 이유는 국내 에너지 정책과 연관돼 있다. 현재 국내 전력 시장에서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발급 제도를 통해 인센티브를 주고 있는데 파력발전에는 가중치를 주지 않는다. REC 거래 수익이 없는 파력발전은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성 대표는 “REC 수익이 없으면 사실상 국내에서는 사업을 못 한다고 보면 된다”면서 “해외에서는 파력발전에도 인센티브를 주고 있었고,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이라 해외 법인을 세우게 된 것”이라고 했다.

“신재생에너지라고 해서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할 순 없어요. 기술마다 장단점이 있으니까요. 영국처럼 흐린 날이 많은 기후의 나라는 태양광보다는 풍력이나 파력이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또 해가 쨍쨍하면 바다는 조용해요. 여름에는 태양광, 겨울엔 파력이 가장 큰 에너지를 내요. 결국 기후나 입지에 따라 적절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에너지 믹스’가 관건입니다.”

2011년 3명으로 출발한 인진은 25명의 구성원이 일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10년을 살아남았더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는 성용준 대표에게 10년 뒤인 2031년의 인진을 묻는 말에 미소로 먼저 답했다.

“10년 뒤면 파력발전은 상용화가 됐을 거예요. 풍력이라고 하면 퍼스트무버인 덴마크 베스타스를 떠올리듯, 파력 하면 인진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요? 그쯤이면 창업 당시 믿고 투자해준 전 직장 동료와 친구들도 투자금 회수를 할 수 있을 거고요(웃음). 파력에너지를 넘어 에너지·환경 기술을 폭넓게 다루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기업이 될 겁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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