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정유기업인 엑손모빌 이사회에 화석연료 반대를 주장하는 헤지펀드의 추천 인사 2명이 새롭게 선임됐다.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해왔던 주주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다.
26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날 엑손모빌 주주총회에서 이뤄진 이사 선임 투표의 예비 개표결과 헤지펀드 ‘엔진넘버원’가 지명 후보 2명이 의석을 확보했다. 엔진넘버원은 그동안 미국 기업들의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해 온 행동주의 헤지펀드다. 엔진넘버원이 보유한 엑손모빌 지분은 0.02%에 불과했지만, 주요 기관투자자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과 뉴욕주 공동퇴직기금 등을 설득하면서 이뤄낸 성과다. 이날 블랙록은 “엑손모빌의 전략적 방향과 경쟁력에 우려하고 있다”며 “엔진넘버원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밝혔다.
엑손모빌 이사회는 12명으로 구성된다. 이날 대런 우즈 엑손모빌 CEO를 포함한 이사 8명은 유임됐고, 나머지 2석의 투표 결과는 확정되지 않았다. 나머지 두 자리도 엔진넘버원 추천 후보로 선임된다면, 엑손모빌 이사회의 3분의 1을 차지하게 된다.
그동안 엑손모빌은 주주들로부터 기후위기에 대응하라는 요구를 받아왔지만 경영전략을 반대로 취해왔다.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로열더치쉘 등 유럽의 주요 석유회사들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엑손모빌은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을 절반 가까이 내리는 등 기후위기에 역행하는 전략을 펼쳤다.
엑손모빌은 2013년까지만 해도 1주당 100달러를 넘기며 미국 시가총액 1위였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실적 부진으로 주가는 30달러선을 위협할 정도로 하락하기도 했다. 지난 7년간 증발한 시가총액만 2600억달러에 이른다. 특히 지난해에는 224억달러(약 25조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40여년 만에 첫 연간 적자를 냈고, 다우지수 편입 92년 만에 퇴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미국 비영리 환경단체인 CERES의 앤드류 로건 선임이사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엑손모빌과 정유업계에 기념비적인 순간이며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변화를 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강 더나은미래 기자 rive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