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7년 차인 소셜벤처 동구밭은 발달장애 청년을 고용해 친환경 비누를 만든다. 지난해 매출액 60억원을 달성하며 경영 안정화에 접어들었다. 1세대 소셜벤처로 꼽히는 두손컴퍼니는 취약 계층 30명을 고용해 물류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네이버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며 누적 투자금 64억원을 돌파했다. 청각장애인 기사가 운전하는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코액터스, 폐방화복을 ‘업사이클링’한 패션 제품을 제작·판매하는 119REO 등도 소셜벤처계에서 떠오르는 대표 주자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학생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기업이라는 것이다. 각 사 대표들은 대학생 비즈니스 리더십 단체 ‘인액터스’ 출신이다. 이들은 학생 시절 치열하게 고민한 사업 아이디어를 창업으로 연결했다.
마음껏 실패할 기회
인액터스는 세계 36국 1700여 대학이 참여하는 국제 비영리단체다. 1975년 미국에서 시작돼 40년 넘게 대학생들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를 만들고 실험할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한국에는 지난 2004년 처음 상륙했다. 현재 전국 28개 대학에서 연간 약 500명의 학생이 참여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직접 기획한 프로젝트 50여 개를 이끌고 있다. 누적 회원은 7000명에 이른다.
인액터스의 모든 프로젝트는 비즈니스 모델이 아닌 사회문제에서 출발한다. 학생들이 직접 해결하고 싶은 사회문제를 발굴하고 수익 구조를 개발해 이를 시장에서 검증한다. 모금 등 자선 활동 없이 오직 비즈니스로만 문제를 해결하는 게 핵심이다.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목표 아래 진행되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창업 동아리와 다르다.
노순호 대표는 홍익대학교 인액터스 출신이다. 2013년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도시농부 교육 프로젝트 이름이었던 ‘동구밭’은 2015년 1월 법인명이 됐다. 노 대표는 “선배들이 동아리로 시작한 프로젝트를 점차 큰 사업으로 확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창업 후 도시농부 교육 사업에서 친환경 비누 제조업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했다.
성균관대 인액터스 출신인 박찬재 두손컴퍼니 대표는 실패를 거듭하며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한 케이스다. “6개월간 홈리스의 삶을 공부한 끝에 안정적인 일자리가 가장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헌책방, 폐휴대폰 수거, 종이 옷걸이 제작 등 여러 시행착오를 겪다 2015년에 물류 대행 서비스로 자리 잡게 됐죠.” 두손컴퍼니의 연 매출은 약 73억원. 현재 취약 계층 30여 명을 고용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취미 생활 플랫폼을 운영하는 하비풀은 연세대 인액터스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홈리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꽃 가게 프로젝트로 출발했지만 수익이 나질 않았다. 오프라인 클래스도 운영했지만 참여율이 저조했다. 양순모 대표는 취미 생활에도 드는 시간·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결론 끝에 취미 키트를 배달해주는 사업으로 방향을 바꾸고 시니어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가입자 10만명을 보유한 하비풀은 지난해 매출액 20억원을 달성했다.
인액터스 출신 대표들은 “마음껏 실패할 기회”를 인액터스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직접 개발한 사업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얼마나 반응이 있는지, 사회문제 해결의 대상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미리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고은 인액터스코리아 사무국장은 “획기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시작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대상자와 소통한 경험이 사업을 유지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年 500명이 뛰어드는 비즈니스 실험
최근 두각을 보이는 소셜벤처 중에는 인액터스 활동 당시부터 반응이 뜨거웠던 곳도 있다. 송민표 코액터스 대표는 지난 2017년 인액터스에서 청각장애인 택시 기사 일자리를 창출하는 ‘고요한택시’ 프로젝트를 론칭한 지 10개월 만에 회사를 차렸다. 당시 사업 내용이 알려지면서 SK텔레콤 등 대기업이 기술 지원에 나섰고, 정부는 신속한 사업화를 위해 청각장애인도 택시 운전 자격을 정식 취득하기 전에 플랫폼 택시를 운전할 수 있게 규제를 풀어줬다. 시니어 여성을 고용해 반려견 수제 간식을 만드는 개로만족은 지난 2019년 3월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개인 사업자 등록을 했다. 건국대 인액터스 학생이 모여 만든 119REO의 경우, 프로젝트 시작 2년 만인 지난 2018년 법인 등록을 마쳤다.
인액터스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의 전공은 다양하다. 이승우 대표는 “중학생 때부터 건축가를 꿈꾸면서 대학도 건축학과로 진학했는데 인액터스 활동을 거치면서 소셜벤처 대표라는 전혀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송민표 대표는 “스무 살 때만 해도 당연히 IT 개발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코드 개발만 공부하던 와중에 창업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해마다 인액터스가 배출하는 졸업생은 500명 수준이다. 매년 새로운 인재들이 들어와 선배들의 빈자리를 채우며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성장시키기도 한다. 이고은 사무국장은 “소셜 임팩트를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중 인액터스만의 유일한 조직문화는 후배 기수가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지속적인 임팩트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액터스는 더욱 전문적인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고은 사무국장은 “불과 몇 년 전보다 소셜벤처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고도화 돼 심층적인 창업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대학생들이 치열하게 사회문제를 고민하고 계획을 실행에 옮겨볼 수 있도록 심화된 교육 콘텐츠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
강태연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kit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