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사장님] 심재신 토도웍스 대표
“이렇게 팔아서 남는 게 있습니까?”
심재신(45) 토도웍스 대표가 자주 듣는 질문이다. 아동 전용 휠체어인 ‘토도아이’를 만들었을 때도 이런 질문 여러 번 받았다. 지난해 출시된 토도아이는 동력보조장치(파워어시스트)를 장착한 수동 휠체어다. 팔걸이에 달린 조종간을 전후좌우로 움직이면 네다섯살 아이도 힘들이지 않고 자유롭게 휠체어를 굴릴 수 있다.
중요하고 필요한 물건이지만 만드는 회사 입장에선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휠체어를 타는 6~13세 국내 아동의 수는 대략 2000~2500여 명. 시장 자체가 작다. 휠체어 가격을 너무 낮게 잡았다는 것도 문제다. 대당 150만원. 기존 아동 휠체어 가격의 3분의 1 수준이다.
“2000여 명 아이들을 상대로 돈을 남길 생각은 없습니다.”
세간의 질문에 대한 심재신 대표의 답은 단호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급’하기 위해 휠체어를 만든 것이라고 했다. “몸에 맞지 않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경제적인 이유죠. 대부분의 복지 선진국들은 아픈 아이들에게 휠체어를 무료로 지급하는데 한국은 지원이 거의 없어요. 제도에 눌리고 돈에 눌립니다.”
지난달 12일 경기 시흥에 있는 토도웍스 본사에서 ‘세상에서 가장 작고 예쁜 휠체어’를 만드는 사장님을 만났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휠체어를 장기간 타고 다닌 아이들은 척추측만증과 같은 ‘2차 장애’를 얻게 됩니다. 아이들이 몸에 꼭 맞는 휠체어를 타면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 토도아이 휠체어를 만들었어요. 매출이요? 국내 시장만 보면 답이 없습니다. 돈은 해외로 수출해서 벌어야죠.”
특별한 의뢰인
2016년 설립된 토도웍스는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소셜벤처다. 장애 아동의 이동권을 향상하는 비즈니스에 주력하고 있다. 심재신 대표는 “토도아이 휠체어는 가격도 저렴하지만 ‘사이즈 조절’이 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아이의 성장 단계에 따라 좌폭(자리의 너비)을 최소 22㎝에서 최대 40㎝까지 늘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부품 4개만 간단히 갈아 끼우면 1시간 만에 사이즈를 맞출 수 있다.
―사이즈 조절이 되는 휠체어라니, 획기적인데요.
“장애를 가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필요로 하는 휠체어는 평균 4~5대입니다. 휠체어 한 대 가격이 대략 500만원이죠. 성장 속도에 맞춰 2~3년에 한 번씩 휠체어를 교체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제때 바꾸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정부 지원금 48만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개인이 지불해야 하니 부담이 크죠. 토도아이 휠체어는 성인이 될 때까지 한 대로 해결이 됩니다.”
심 대표는 스스로를 ‘엔지니어’라고 불렀다. 10년 넘게 모크업(mock-up)을 만드는 회사를 운영했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거나 디자인할 때 성능이나 모양을 미리 검토하기 위해 소량으로 제작하는 실물 모형을 만드는 일이다. 의뢰인의 콘셉트를 듣고 빠르고 정확하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내는 회사로 소문이 자자했다.
―어쩌다 휠체어 만드는 회사를 차렸나요.
“특별한 의뢰인을 만난 덕분이죠.”
―궁금하네요.
“2015년에 우연히 딸의 친구인 ‘준이’라는 아이를 만났어요. 휠체어를 타는 아이였죠. 아이가 수동 휠체어를 타길래 ‘그렇게 손으로 미는 게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어요. 아이가 그러더군요. ‘아저씨는 힘들어서 100m도 못 갈 거예요.’ 전동 휠체어를 타면 되지 않느냐고 되물었더니 그건 너무 크고 무거워서 엄마 차에 실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밖에 잘 나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고요. 그 자리에서 약속했어요. ‘아저씨가 모터 달린 수동 휠체어 선물해줄게. 그럼 편하겠지?’ 하고요.”
―그게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건가요?
“회사 동료들에게 준이 이야기를 하고 도움을 청했어요. 프로그래밍, 디자인, 통신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달라붙어서 함께 만들기 시작했죠.”
―직원들이 흔쾌히 도와줬군요.
“그럼요. 동료들 모두 아이를 가진 아빠들이었으니까요.”
―휠체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을 텐데요.
“우리가 하던 일이 상상 속 물건을 현실에서 구현해주는 거니까 어렵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냥 준이에게 필요한 걸 만들어주자. 목적은 그거 하나였죠. 무게를 줄이는 게 어려웠어요. 수동 휠체어 무게가 이미 10~15㎏이라 모터를 달면 무거워지더라고요. 다 합쳐 20㎏ 미만으로 만들자는 생각으로 설계와 수정을 반복했어요. 석 달 만에 완성해 준이에게 선물했습니다.”
―원래는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날 일이었군요.
“준이가 휠체어 타고 병원도 가고 여행도 다니는 걸 보면서 정말 뿌듯했어요. 아이의 표정이 달라졌죠. 그런데 그걸 보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어른들에게서 연락이 오면 ‘팔려고 만든 게 아닙니다’ 하고 끊었는데, 문제는 아이들이었어요. 아이들의 부탁은 거절할 수 없었어요. 20개 정도 주문이 쌓이니까 덜컥 걱정이 되더군요. 그제야 이런 의문이 들었어요. 도대체 우리가 뭘 만든 거지?”
어쩌다보니 세계 최경량
심 대표는 그때 처음으로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시중에 그들이 만든 것과 비슷한 물건이 있었다. 수동 휠체어에 모터를 부착해 이동을 보조해주는 ‘휠체어 파워 애드온’이라는 제품이었다. 놀라운 건 심 대표가 만든 물건이 시판되는 제품 중에 가장 가벼웠다는 것이다. 시중 제품은 600만원에서 1000만원대 가격에 무게가 15~40㎏까지 나갔는데, 준이를 위해 만들어준 물건은 배터리를 포함해도 5㎏ 정도였다. “기다리는 20명의 아이들을 위해 빨리 제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경량화를 하다 보니 단가가 좀 비쌌어요. 그래서 ‘스토리펀딩’을 해보기로 했어요. ‘우리가 이런 물건을 만들었는데 이게 필요한 아이들이 20명이 있다’는 내용을 포털 사이트에 올려 펀딩을 진행했어요.”
―결과가 좋았나요.
“두 달 만에 1200만원이 모금됐어요. 부족한 비용은 저희가 자체적으로 충당해 아이들에게 선물했습니다. 펀딩을 진행하면서 하루 100통씩 문의 전화가 왔어요. 수요가 있는 시장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 셈이죠.”
―일이 커졌네요.
“우리가 만든 작은 물건이 장애인의 이동권을 향상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일을 하는 회사가 없었기 때문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2016년 3월 정성환 본부장 등을 영입해 토도웍스를 설립했어요. ‘이동권의 제약으로 생기는 모든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비즈니스를 한다’는 미션을 정하고 엔젤투자까지 받으며 회사의 꼴을 갖추기 시작했어요.”
준이에게 선물했던 휠체어 동력보조장치는 이후 보완과 수정을 거쳐 2016년 10월 ‘토도드라이브’라는 이름으로 정식 출시됐다. 심 대표는 “가격 책정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동력보조장치가 의료보조기기로 인정돼 보조금을 받는다. 독일의 ‘알베르’라는 회사의 동력보조장치는 대당 가격이 4000~5000유로에 달하지만, 사용자 부담금은 10유로(약 1만3000원)에 불과하다. 심재신 대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토도드라이브의 의료보조기기 인증을 문의했지만 시간이 걸린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가격을 제대로 받으면 국내 사용자들의 부담이 커지고, 가격을 낮추면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이었네요.
“사용자들은 200만원 이하의 가격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200만원 이하는 어렵다는 계산이 나왔고요. 고민을 하다가 문득 ‘우리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가’를 생각하게 됐어요. 장애인 이동권을 향상하려면 널리 보급이 돼야 하는데, 가격이 높으면 보급이 안 되겠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방법을 찾아야 했죠. 모든 부품을 직접 생산하고 직거래를 해서 유통 마진을 줄이는 방법을 찾았어요. 부가세 포함 176만원. 수익은 해외에서 얻기로 했어요. 우리나라 시장으로 한정되면 갑갑하지만, 외국으로 수출하면 승산이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토도드라이브는 현존하는 가장 가벼운 동력보조장치였으니까요.”
임팩트투자자들이 토도웍스의 진정성과 해외 진출 가능성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2017년 5월과 8월 퓨처플레이와 SK행복나눔재단이 각각 3억원의 시드투자를 진행했고, 2018년 10월에는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로부터 20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받았다.
―해외에서 돈을 벌겠다는 목표는 잘 이뤄가고 있나요.
“토도드라이브는 2019년에 ‘유럽 의료기기 인증’을 받고 본격적으로 해외로 수출되고 있어요. 2020년 오스트리아와 호주를 시작으로 26국과 45개의 파트너십을 체결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5000여대의 토도드라이브가 운행되고 있어요. 내년에 ‘토도드라이브2’를 출시할 예정인데, 이건 많이 비싸게 팔 겁니다. 스코틀랜드나 호주 등 몇몇 나라에서는 토도 드라이브를 사용자에게 무상으로 지원하거든요. 거기에서는 가격을 낮출 필요가 없어요. 조작감 등 모든 것을 최고급 사양으로 만들면 더 잘 팔립니다.”
가장 작고 예쁜 휠체어
―아동용 휠체어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2019년부터 상상인그룹과 함께 ‘휠체어 사용 아동 이동성 향상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지난해까지 6~13세 아동 1800명에게 몸에 꼭 맞는 수동 휠체어와 토도브라이브를 무료로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어요. 몸에 맞는 휠체어를 탄 아이들의 비율이 전체의 3~4%밖에 안 된다는 거였어요.”
―그렇게 적었나요?
“장애인들이 기성품으로 나온 휠체어를 구매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양복 맞추듯이 모두 맞춤 제작을 합니다. 잘못된 휠체어를 선택하면 2차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고민이 컸어요. 이번 한 번은 몸에 맞는 걸 제공하지만, 아이들이 자라서 또 휠체어가 안 맞으면 문제가 생기겠구나 싶었어요. 몸에 맞는 휠체어를 싸게, 그리고 클 때마다 지급을 해줘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죠. 평균적으로는 2~3년에 한 번 바꾼다지만, 6개월 만에 폭풍 성장하는 아이도 있어요. 재활 치료받는 도중에 사이즈가 바뀌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이즈 조절이 되게 설계했군요.
“빠르고 쉽게, 그리고 적은 비용으로 사이즈와 옵션을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는 아동용 휠체어를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제도가 바뀌는 걸 기다리는 건 너무 오래 걸리니까 그냥 만든 겁니다.”
―심지어 예쁜데요.
“그전에는 아이들이 고를 수 있는 휠체어 색이 두 개밖에 없었어요. 빨강과 노랑. 그런데 그 두 가지 색을 놓고도 아이들이 한참을 고민합니다. 아이들에게 선택 폭을 넓혀주고 싶어서 토도아이를 만들면서 10가지 색상을 준비했어요. 직원들이 직접 조색해 만든 단 하나뿐인 색상들입니다. 색 이름도 직원들이 직접 붙였어요. ‘딸기마을수영장’ ‘민트가바람이라면’ ‘구름위로라일락’ 등.”
―최근에는 ‘휠체어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전 세계 최초일 겁니다. 사용자의 경제적 부담을 더 낮춰주기 위해서 지난달부터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약간의 초기 비용과 매월 사용료를 지불하면서 필요한 만큼 휠체어를 사용하는 서비스입니다.”
―왜 그렇게까지 비용을 낮추려고 애씁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장애를 갖고 태어나면 경제적 약자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아이들의 경우 재활치료 같은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휠체어에 비용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휠체어를 타고서 마트도 가고 놀이터에도 나가 놀아야 장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집니다. 장비가 없으면 아이들은 어른이나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런 장면들이 반복되면 장애인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됩니다. 휠체어를 주는 게 아니라 이동권을 주자는 겁니다.”
―휠체어가 아니라 이동권을 준다?
“장애 아동 한 명에게 이동권을 주면 같은 반 아이 스무 명의 장애에 대한 인식이 바뀝니다. 결국 서로를 많이 보면 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와야죠. 계단과 턱을 없애는 게 핵심은 아닙니다. 복지 선진국에도 계단과 턱이 있어요. 다른 점이 있다면 손만 살짝 들면 주변 사람들이 와서 도와주고 쿨하게 사라진다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주는 것. 그게 중요합니다.”
토도웍스는 최근 SK그룹으로부터 20억원의 임팩트투자를 받게 됐다. 회사의 성장 가능성과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은 결과다. 돈벌이에 관심 없어 보이던 사장님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의료보조기기 업계는 굉장히 보수적이지만 잠재력도 그만큼 큰 시장이에요. 좋은 마음만 가지고 회사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좋은 마음을 넘어서는 혁신적인 기술이 필요하겠죠. 전 세계 휠체어 동력보조장치 시장의 30%를 점유하는 게 토도웍스의 목표입니다.”
시흥=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blindlette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