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수)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경영자를 위한 히포크라테스 선서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지난 2월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Fortune)은 전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50대 기업을 발표했다. 기업의 혁신성, 인사관리 부분, 자산 활용, 사회적 책임과 품질 관리, 재정 건전성, 장기 투자 가치, 제품·서비스 품질, 글로벌 경쟁력 등 9개 항목을 평가한 결과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GPTW도 매년 탁월한 리더십과 높은 사명감으로 일하기 좋은 일터를 만들고 혁신적인 경영철학을 확산·보급하는 CEO를 선정해 ‘일하기 좋은 직장(Great Place to Work)’을 시상하고 있다. 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여러 단체들도 매년 사랑받는 기업과 존경 받는 기업을 선정하고 발표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정 기업들은 실제로 사회에서 사랑받고 존경받고 있을까?

사실 기업은 우리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지는 못했다. 경영진이 횡령과 배임으로 구속되기도 하고, 협력업체에 갑질을 해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일감 몰아주기와 노동조합 탄압을 지시하기도 했고, 노동자가 임원을 폭행하는 일도 있었다. 해외의 경우는 어떤가? 2001년 기업의 사기와 부패와 관련된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한 에너지·물류 회사인 엔론이 회계부정 사건으로 파산하면서 당시 경영진은 사기와 내부자 거래 등의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엔론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미국 5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아서앤더슨 역시 영업정지를 받고 결국 파산했다. 이후 2007년에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위한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전 세계 많은 회사들이 파산하며 금융위기를 맞은 일이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회사의 부실 대출과 함께 이들을 감시하는 신용평가사 조차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일반 시민들의 피해가 더욱 커졌다.

우리는 종종 의학 드라마나 영화에서 ‘의료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라는 내용이 포함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들으며 가슴 뭉클함을 느끼곤 한다. 법을 집행하는 법관도 취임할 때 ‘본인은 법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고, 법관윤리강령을 준수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라는 선서를 대법원장 앞에서 해야 한다. 그러면 기업의 경영자는 어떠한 선서를 하고 경영을 시작해야 할까?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라케시 쿠라나(Rakesh Khurana) 교수와 니틴 노리아(Nitin Nohria) 교수는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같이 기업인도 경영자로서의 선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기업에 대한 신뢰가 붕괴위기에 직면했고 경영자들도 정당성을 잃고 있다고 진단하며, 대중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기업가도 의학과 법을 다루는 의사와 법관같이 ‘진실된 직업(True Profession)’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진실된 직업에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법관 선서처럼 해당 직업의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내용이 포함된 선언문이 뒤따른다. 사회와 암묵적인 약속을 담은 선언문은 자신에게 맡겨진 업무를 할 때 높은 기준에 맞춰 성실하게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선서가 경영자에게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경영자를 위한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탄생하게 됐다. 이 선서는 2009년 하버드 경영대학원 학생들로부터 아래와 같이 ‘MBA 선서’로 정리됐고, 현재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에 동참하고 있다.

‘나는 비즈니스 리더로서 사회에서의 역할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내 목적은 사람을 이끌고 자원을 관리하여 개인이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가치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내 결정은 현재와 미래, 기업의 내부와 외부, 개개인의 안녕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다음을 약속합니다.

나는 충성스럽고 주의 깊게 사업을 할 것이며, 회사나 사회를 희생하여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기업과 나의 행동을 규율 하는 법률과 계약의 문자와 정신을 이해하고 준수할 것입니다.
나는 부패, 불공정 경쟁, 사회를 해롭게 하는 사업 관행을 반대하겠습니다.
나는 사업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의 인권과 존엄성을 보호하고 차별과 착취에 반대 할 것입니다.
나는 미래 세대의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한 지구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겠습니다.
나는 회사의 성과와 위험을 정확하고 정직하게 보고하겠습니다.
나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개발하는데 투자하여 경영자가 계속 발전하고 지속가능하고 포괄적인 번영을 창출하도록 돕겠습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직업상의 의무를 수행할 때, 내 행동이 올곧음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내가 섬기는 사람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나는 나의 행동과 이러한 기준을 지키는 것에 대해 동료와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질 것입니다. 나는 자유의사에 따라 나의 명예를 걸고 위와 같이 선서합니다.’

우리 주위에 성공한 기업은 많을지 모르지만, 존경할만한 경영자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해관계자 경영’ ’ESG 경영’ 등의 구호와 함께 많은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는 요즘이야말로, ‘경영자’가 ‘진실된 직업’이 될 때가 됐다. 경영학의 그루인 피터 드러커는 경영의 3대 기본 요소로 ‘수익창출’ ‘사회적 책임’ ‘혁신’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중 하나라도 소홀하면 경영자로 존경받기 어렵다고 했다. 여기에 본 선서문을 엄숙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고 실행하는 ‘진실된 경영자’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오늘의 논문
-Rakesh Khurana and Nitin Nohria(2008), “It’s time to make management a true profession”, Harvard Business Review, Oct. 86(10):70-7,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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