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쉬운 정보일수록 어렵게 만들어집니다”

[인터뷰] 백정연 소소한소통 대표

‘쉽게 알아보는 코로나19’ 안내서 제작
최우선 가치는 발달장애인 ‘안전·권리’
그들과 더 친해지려 ‘소소한수다’ 기획

“발달장애인이 주체적으로 정보를 이해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지난달 24일 만난 백정연 소소한소통 대표는 “쉬운 정보 제작엔 끝이 없다”며 “독자가 정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과정의 연속일 뿐”이라고 말했다.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발달장애인 중에는 아직 코로나19가 뭔지 모르시는 분도 많아요. 정확한 마스크 착용법도요. 마스크를 밀착시키지 않거나 뒤집어 쓰기도 하고, 애초에 왜 써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해 3월, 백정연(41) 소소한소통 대표는 ‘쉽게 알아보는 코로나19’라는 안내 책자를 펴냈다. ‘코로나19는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면서 널리 퍼지는 병’이라는 간단한 설명과 함께 마스크로 입과 코를 완전히 가린 그림을 보여주며 올바른 착용법을 알려줬다. 이 책자는 대구 지역 특수학교와 복지관, 주민센터 등에 약 4만8000부 배포됐다.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언어’를 찾는 일을 한다. 지자체 복지 서비스 소개 책자, 복지관 이용 안내문 등 발달장애인이 꼭 알아야 할 정보들을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바꿔 설명해주는 작업을 진행한다. 농사 매뉴얼이나 영화 예매 방법 등을 담은 자료도 만든다. 2017년 설립 이후 연평균 100건의 쉬운 정보를 만들고 있다.

지난달 24일 서울 문래동 사무실에서 만난 백정연 대표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한 덕분인지 쉬운 정보를 전달하려는 움직임이 확 늘었다”고 말했다. “팬데믹 시대에 정보는 생존 수단이잖아요. 사회적 거리 두기, 자가 격리, 비말 감염, 잠복기 등 감염병 증상이나 예방 수칙 관련한 낯선 단어들이 쏟아지면서 많은 장애인 지원 기관이 쉬운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어요. 정부도 처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요. 보건복지부로부터 ‘장애인을 위한 코로나19 안내서’를 제작해 달라는 의뢰가 와서 지난해 6월에 책자로 펴냈습니다. 이달에 백신 접종 관련 내용을 추가한 개정판이 나올 예정이에요.”

사람마다 다른 ‘쉽다’의 기준

‘쉬운 정보’라는 말의 정확한 뜻이 궁금했다. 백정연 대표는 “나도 잘 몰라서 매일 고민한다”며 웃었다. “흔히 ‘간단한 문장 구조에 전문용어나 한자어, 외래어는 지양하고 삽화나 사진과 같은 보조 이미지를 더한 정보’라고 정의하긴 하는데, 사실 ‘쉽다’라는 게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이잖아요. 독자 본인의 경험과 기본 지식에 따라 난도가 달라지니까요.”

백 대표는 “독자(발달장애인) 친화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주제 선정부터 감수까지 정보를 만드는 전 과정에 걸쳐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다”고 말했다. 독자가 자문위원이 돼 소소한소통이 바꾼 정보가 ‘진짜 쉬운지’ 확인하는 셈이다. 눈썹을 찌푸리거나 대답을 하지 않는 등 비언어적 표현으로 문장의 이해 여부를 드러내기도 한다. 여기서 통과되지 못한 문장은 다시 손보는 방식이다. 그는 “쉬운 정보일수록 어렵게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오는 24일 출간하는 책 제목도 ‘쉬운 정보, 만드는 건 왜 안 쉽죠?’다. 발달장애인 지원 기관의 실무자들이 스스로 쉬운 정보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가이드북’이다. 비장애인을 위한 책을 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소소한소통이 지금껏 쌓아온 쉬운 정보 제작 노하우가 모두 담겼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다 알려주면 밥줄 끊기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쉬운 정보가 널리 퍼져서 점자와 수어처럼 당연한 의사소통 도구로 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만들었어요.”

“발달장애인과 소소하게 수다 떠는 기업이 되고 싶어”

백 대표는 소소한소통을 설립하기 전 15년을 사회복지사로 일했다. 대부분 시간을 발달장애인 지원 기관에서 근무했다. “발달장애인은 자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분들과 있을 때 덩달아 솔직해지는 제 모습이 좋아 오랫동안 함께 일했죠. 하지만 제가 개발한 복지 서비스가 당사자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어요. 해외에서는 쉬운 정보가 다양한 영역에서 구축돼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졌죠.”

소소한소통을 통해 이루고 싶은 최우선 가치로 그는 ‘안전’과 ‘권리’를 꼽았다. “쉬운 정보가 없으면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스스로의 안전을 지킬 수가 없고, 복지 서비스 신청이나 투표 등을 통해 권리를 행사할 수도 없어요.” 분기마다 펴내고 있는 잡지 ‘쉽지’도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시도다. ▲선거 ▲놀이 ▲반려동물 등을 주제로 일상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올해 소소한소통의 목표는 발달장애인과 정서적으로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당사자와의 접점이 늘어날수록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발달장애인이 겪은 어려움 중 하나가 사회적 고립이에요. 평소에도 만나는 사람이 제한된 발달장애인에게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다는 것은 완전한 관계 단절을 의미합니다. 답답한 나머지 소소한소통 공식 SNS 계정으로 본인의 하루 일과를 찍어 보내는 사람도 있었어요.”

최근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 토크쇼 ‘소소한수다’를 기획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오후 2시 첫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소소한소통과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는 발달장애인 3명이 방송에 출연해 ‘코로나19로 변한 일상’을 주제로 수다를 떨었다. 소소한수다는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남편이 휠체어를 타는 신체 장애인이에요. 오랫동안 사회복지사로 현장에서 일하며 장애인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장애인의 가족이 되고 보니 제 이해가 많이 부족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제가 당사자의 목소리에 집착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고요. 쉬운 정보로 발달장애인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소소하게 함께 수다도 떨 수 있는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강태연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kit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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