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3643명 도움으로 불탄 공장 복구… “다시 일할 수 있어 행복해요”

발달장애인 자립 돕는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

1년 만에 ‘스마트 팩토리’로 새 단장
콩나물 납품받던 품무원이 공장 설계
주민·기업서 후원금 10억 넘게 모아

“새 공장에서 일하게 된 기분요? 날아갈 것 같아요.”

발달장애인 김성태(39)씨는 지난 1월 다시 공장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9년 10월 7일, 발달장애인 직원 20여 명이 근무하는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이 불타 없어진 지 15개월 만이었다. 우리마을은 인천 강화 길상면에 있는 장애인 작업재활시설로, 유기농 콩나물을 생산하고 납품하는 대규모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김성태씨는 콩나물 공장에 불이 났을 때를 회상하며 “심장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새벽 4시경 시작된 불길은 4시간 만에 건물을 모조리 불태웠다. 원인은 누전이었다. 화재로 인한 피해액은 전소된 건물과 기자재 등을 포함해 약 20억원에 달했다.

누구도 이렇게 빨리 공장이 새로 지어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3643명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마을 원장 이대성(48) 신부의 말을 빌리자면 ‘복구는 힘들었으나 외롭지는 않았던 과정’이었다. 지난 1월 시험 가동을 마치고 2월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한 강화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을 지난 3월 17일 찾았다.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 직원 김성태(왼쪽)씨와 유준성씨. 이들에게 일하는 게 힘들진 않으냐고 묻자 손사래를 치며 “새 공장을 지으면서 시설도 더 좋아져 일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강화=이한솔 C영상미디어 기자

스마트 팩토리로 설계… 하루 생산량 두 배로 늘어

오전 9시. 하얀 위생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갖춰 입은 한 ‘친구’가 밝은 얼굴로 기자에게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건넸다. 우리마을의 발달장애인 직원들은 서로를 친구라고 부른다. 장애 정도에 상관없이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존중하며 대화하고 일하기 위해서다. 기자도 위생복을 갖춰 입고 작업장으로 들어섰다. 콩나물 포장 작업이 한창이었다. 직원들 모두 집중하며 능숙한 모습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이대성 신부는 “일에 맞는 사람을 뽑은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맞는 일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콩나물 사업장의 다양한 공정을 모두 잘 해낼 수 있는 발달장애인은 드물어요. 대신 각자 잘하는 일을 한 가지씩은 분명히 가지고 있죠. 친구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적절한 일을 찾아낸 뒤 팀으로 묶어서 일을 맡깁니다.”

콩나물 사업장 내에서 직원들이 하는 일은 잘게 쪼개져 있었다. 갈퀴로 콩나물을 긁어모아 레일 위로 올리는 일, 기계에서 세척된 콩나물에서 나오는 찌꺼기를 치우는 일, 건조 후 진공 포장돼 나온 콩나물을 상자에 차곡차곡 담는 일, 콩나물이 배송 중 햇빛에 노출되지 않도록 상자에 검은 비닐을 씌우는 일 등이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전에 희망 직무를 조사하고 직업훈련 교사와 함께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지켜보며 일에 적응할 수 있게 돕는다.

새로 지어진 공장은 연면적 1329㎡로 예전 공장(1100㎡)보다 더 넓다. 콩나물 생산 공정 전반에 자동화 시스템이 적용된 ‘스마트 팩토리’로 설계됐다는 것도 큰 변화다. 우리마을 콩나물을 납품받던 ‘풀무원’이 TF팀을 꾸려 공장 설계와 건축을 지원해준 덕이다. 콩나물 재배실 온도와 수급량, 공기 질 등을 원격으로 조절할 수 있어 콩나물 생산이 훨씬 수월해졌다. 화재 전 하루 콩나물 생산량이 약 1.5t이었는데, 새 공장에선 3t까지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지난달 17일 찾은 강화 우리마을 공장에서 발달장애인 직원들이 콩나물을 갈퀴로 모아 레일에 올리고 있다. 지난 2019년 공장 화재로 직장을 잃었던 직원들은 올 초 새로 지어진 공장에서 꿈을 키우고 있다. /강화=이한솔 C영상미디어 기자

인천 소방관들, 저금통 보낸 아이… 3643명이 후원

우리마을의 역사는 약 20년 전 시작됐다. 김성수(92) 전 대한성공회 주교가 지난 2000년 3월 본인 소유의 땅을 기부해 만들었다. 1974년 한국 최초의 지적장애인 특수학교인 성베드로학교를 세워 교육에 힘쓰던 그는 졸업을 하면 갈 곳이 없어지는 아이들을 위해 이곳에 일터를 만들었다. 콩나물은 우리마을 설립 이듬해부터 생산하기 시작했다.

공장에 화재가 나기 전인 2018년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의 연매출은 약 18억원이었다. 2017년 농산물우수관리(GAP)경진대회에서 장관상을 받을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었다.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던 발달장애인 20여명이 화재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공장이 문을 닫자 임시방편으로 전자 부품을 조립하는 일을 했지만 100만원이던 월급이 36만원으로 줄었다.

공장 화재는 ‘우리마을’에 대한 이웃의 관심과 지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지역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바자회를 열어 후원금 1000만원을 모았다. 인천소방본부 소속 소방관들도 ’119원의 기적’ 프로젝트를 열어 각자 하루에 119원씩 모아 만든 1000만원을 기부했다. 입금자명에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등의 메시지를 적어 보내는 계좌 후원도 이어졌다. 돼지저금통을 보낸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풀무원 1억5000만원, 아이쿱생협 1억원, 베어베터 1억3000만원 등 기업과 단체 후원금을 포함해 총 10억원 넘는 돈이 모였다. 2019년 10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우리마을’에 후원한 사람은 총 3643명이다.

콩나물 공장이 문을 닫는 시각은 오후 2시다. 공장에서 5년간 근무한 유준성(43)씨는 “열심히 일하면서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지금부터”라며 “같이 일하는 형, 누나들과 놀 수 있어서”라고 했다. 이대성 신부는 “우리마을에는 일터만 있는 게 아니라 공동생활가정, 주간보호센터 등 거주시설이 마련돼 있어 발달장애인 90여 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면서 “단순한 일자리를 넘어 사람과 소통하고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곳”이라고 말했다. “크고 작은 도움 덕분에 콩나물 공장이 다시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마을을 지역사회 일원으로 인정해주신 많은 분께 감사합니다.”

강화=강태연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kite@chosun.com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