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기부금품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
개정안 핵심 쟁점 ‘형사 처벌’ 강화
사용 명세 장부 제공 안했을 땐
1년 이하 징역, 1000만원 이하 벌금
행정 낭비에 이중 규제 부담
모금 활동 위축 ‘부작용’ 우려
모호한 조항 구체화 작업 필요
최근 모금 업계에서 ‘기부금품법’ 개정 논란이 뜨겁다. 작년 ‘정의연(정의기억연대) 사태’로 불거진 비영리 단체 투명성 강화를 위한 후속 조치다. 지난달 8일 행정안전부는 공익 법인의 기부 금품 모집 상황, 사용 명세 장부, 서류 공개 등을 온라인 방식으로 통합 관리하는 기부통합관리시스템 ’1365기부포털’을 공개했다. 새로운 제도 도입에 따른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 행안부는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을 연내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주요 개정안에 모금 단체를 형사처벌하는 조항도 추가됐다는 점이다. 이에 모금 단체들은 “비영리 단체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문제 제기된 기부금품법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규제만 강화한다면 이중 규제, 행정 부담 증가로 인한 모금 활동 위축 등의 부작용이 예상된다”며 신중한 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처벌 강화하면 투명성이 높아진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기부금품법 개정안은 총 17개다. 한 법안에 대해 여러 개정안이 제출됐을 경우 통상적으로 법안심사소위에서 병합 심사해 위원회 차원의 대안을 만든다. 논란의 중심은 공익 법인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한 한정애 의원 안이다. 정부 입장이 반영된 이 개정안을 모금 업계에서는 이른바 ‘행안부 안’으로 부른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 쟁점은 형사처벌 조항이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기존 공익 법인에 대한 감독 범위를 기부금 모집·접수에서 사용 내역까지 확대하고, 기부자가 요청한 사용 명세 장부를 제공하지 않으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모금 업계에서 정보 공개를 거부하는 건 아니다. 다만 별도 서식을 만들어 필요한 정보를 기재하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 단체가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사용 명세 장부를 통째로 공개하라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 모금 단체 관계자는 “기부금 모집과 사용에 관한 장부에는 각 단체가 살아가는 방식과 일종의 노하우까지 포함된다”면서 “숨길 것이 있어 감추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모금 업계에서는 그간 기부금품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가이드라인을 요구해왔다. 현행 기부금품법의 구조적인 문제를 내버려둔 채 처벌만 강화했을 때 분쟁의 소지만 키우고 기부 문화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국세청에 결산 보고를 하는 상황에서 사용 명세 장부까지 의무 공개하도록 하고 처벌 조항까지 추가하면 단체 입장에서는 행정 낭비는 물론 이중 규제까지 될 수 있다”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따지지 않고 모금 단체가 규제를 피하려고 한다는 식으로 비칠 수 있어 우려된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에 모호한 조항을 구체화하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으로 법에서 정하는 기부금의 개념이다. 기부금품법 2조에 따르면, 기부 금품을 ‘명칭이 어떠하든 반대급부 없이 취득하는 금전이나 물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기부 금품 모집에 기부금 출연을 권유받지 않은 ‘비자발적’ 기부는 포함되지 않는다. 국세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 기부금 규모는 2018년 기준 약 13조9000억원이다. 반면 기부금품법에 따라 관리·감독되는 기부 금품 규모는 2018년 기준 약 6000억원에 불과하다. 전체 기부금의 4.3% 수준만 기부금품법으로 관리되는 셈이다. 기부 금품에 관한 모호한 규정 때문에 실제로 기부 금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 기부금품법 적용을 받지 않는 일이 생겨나는 것이다.
유튜브 개인 모금에 대한 규율은 어디에?
현행 기부금품법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온라인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개인의 불법 모금에 대해서는 전혀 규율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표적으로 유튜브에서 후원 계좌를 공개하고 불특정 다수에게서 후원금을 모으는 행위는 모두 기부금품법 적용 대상이지만, 이를 관리·감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항은 마련돼 있지 않다.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차원의 가이드라인도 없다. 이 때문에 유튜브나 SNS상에서 발생하는 개인 모금의 규모나 실태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모금 단체에 대해서는 행정 당국의 관리·감독뿐 아니라 시민의 감시도 이뤄지고 있지만, 개인 모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상황”이라며 “정부 차원에서도 뻔히 보이는 개인 불법 모금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모금 단체를 규제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행이 기부금품법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박인수 월드비전 경영전략본부장은 “기부금 관련 문제가 터지고 나면 대형 모금 단체를 중심으로 관리·감독이 강화되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불분명한 규정 탓에 발생하는 문제가 더 크다”면서 “현장 점검을 나온 공무원들조차 기부금품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모금 단체와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어 “비영리 단체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는 것보다는 인력이 부족한 작은 단체를 위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투명성 강화에 훨씬 보탬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대형 모금 단체 관계자는 “기부금 문제가 한번 터지면 업계 전체가 악영향을 받기 때문에 각 단체에서 투명성 강화를 위해 자체적인 노력을 하고 있고, 기부자에게도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작정하고 부정 회계를 저지르는 곳에는 기부금품법이 아닌 형법상 사기죄나 세법으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현장 목소리 외면하는 개정안
기부금품법은 올해로 제정 70년이 됐다. 국내 비영리단체 설립과 운영, 기부금 모집 등에 대한 규정이 부족하던 1951년 처음 마련됐다. 원래 법률명은 ‘기부금품모집금지법’. 무분별한 기부금 모집 금지와 국민의 재산 보호가 그 취지였다. 이후 1995년 ‘기부금품모집규제법’으로 완화됐다가 2006년에야 현행 기부금품법으로 개정됐다. 이때 법의 목적도 기부 활성화와 성숙한 기부 문화 조성으로 전환됐지만, 금지 조항과 형사처벌 규정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기부금품법과 시행령이 개정되기도 수차례. 하지만 그때마다 현장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행안부는 2019년 6월 기부금품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 안건으로 올리기로 하고 보도 자료까지 배포했다가 돌연 안건에서 제외한 적이 있다. 이듬해 6월에는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 하루 전에 안건에서 제외해 논란이 일었다. 2년 연속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현장의 반발 때문이었다. 당시 행안부는 “조문 수정으로 국무회의 안건에서 제외됐다”고 설명했지만, 모금 업계에서는 “기부금을 모집하는 공익 법인과 시민사회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개정안을 통보해 오면서 업계의 큰 반발이 있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행안부는 이번 개정을 앞두고 모금 업계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입장이지만, 지금까지 이견 조율을 위한 자리는 단 한 번도 마련되지 않았다.
모금 현장을 반영하지 못한 규제는 비영리단체의 신뢰를 좀먹는다. 모금 단체들은 지방자치단체, 국세청, 등록 주무 관청에 각각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하지만 기관마다 보고받는 기준이 제각각이다. 이를테면 지자체는 정부 보조금을 기부금에 포함해 보고받는다. 국세청은 정부 보조금을 포함한 내역과 뺀 내역을 둘 다 받는다. 행안부에서는 사전 등록한 일부 모금액만 들여다본다. 한 모금 업계 관계자는 “서식이 다른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단체 실무자들도 혼란스러운데, 후원자들 입장에서는 숫자가 제각각이면 기부금을 유용했다고 오해하기 쉽다”면서 “통일된 하나의 양식으로 보고서 하나만 제출하고 이를 타 기관에서 전달받으면 투명성 강화에 도움될 것”이라고 했다.
해외에서는 모금 단체의 결산 보고를 통일하고 문제가 있으면 사후 규제하는 경우가 일반화돼 있다. 영국은 독립 기구인 자선위원회(Charity Commission)를 통해 모금 단체의 등록부터 사후 관리까지 전담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이사를 해임하는 등 운영에도 개입할 수 있다. 미국은 개인이나 법인 구분 없이 모금에 관한 감독 업무를 국세청이 총괄하고, 규정을 위반했을 시 세금을 부과한다. 호주는 자선비영리위원회(ACNC), 일본은 공익인정위원회를 각각 총괄 기구로 두고 있다. 황신애 이사는 “국내 비영리 공익 단체들은 해외 기관들이 사례를 배워갈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기부 제도와 정책은 여전히 모금 단체를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곳으로 바라보는 후진국 수준”이라며 “현장에서 기부 활성화와 투명성 강화를 위해 노력하는 실무자들의 고충을 입법에 반영하는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