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차완영 마린이노베이션 대표
해조류로 만든 포장재, 자연에서 100% 썩어
종이컵 코팅, 비닐·잉크까지 모두 친환경 소재
기술 연구만 13년, 해외서도 러브콜 잇따라
“시중에 100% 친환경 제품이 얼마나 될까요? 국내 친환경 인증을 보면 바이오매스 플라스틱은 기존 플라스틱에 자연 소재를 20%만 섞으면 되고, 생분해 플라스틱의 경우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 분해가 됩니다. 플라스틱 대체재로 목재를 쓴다고 해도 나무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거나 산사태 피해를 막아주는 이점을 포기해야 합니다. 진짜 친환경을 실현할 신소재가 필요한 겁니다.”
차완영(46) 마린이노베이션 대표는 100% 친환경 해법을 바다에서 찾았다. 그는 해조류 부산물로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포장재를 만든다. 해조류에는 종이를 만들 때 필요한 섬유질이 있어 목재를 대체할 수도 있다. 특히 펄프 생산을 위한 나무를 키우는 데 30년이 걸리는 반면 해조류는 40일 정도면 된다. 지난달 24일 울산 울주군에 있는 마린이노베이션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해조류로 만든 포장재는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줄이고, 재료 공급도 상대적으로 수월해 가격 경쟁력도 갖출 수 있다”고 했다.
100% 분해되는 ‘진짜 친환경’ 포장재
마린이노베이션은 바다에 흔한 우뭇가사리, 미역, 꼬시래기 등 해조류로 친환경 소재를 만든다. 특정 조건에서만 썩는 생분해 플라스틱과 달리 자연에 버려져도 완전히 썩는 게 특징이다. 대표 제품은 우뭇가사리 부산물로 만든 계란판이다. 차완영 대표는 “우뭇가사리에서 양갱을 만들기 위한 성분을 추출하고 나면 항상 찌꺼기가 남았다”며 “기존에는 이 찌꺼기를 처리할 방법이 없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지만, 기술을 통해 포장재 소재를 뽑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계란판 제작에 쓰이는 ‘해조 종이’는 해조류 성분 30%에 펄프 70%로 구성된다. 공정 과정도 일반 종이 생산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간단하다. 여기에 생산 시간도 크게 단축하면서 펄프로 만든 종이 제품보다 가격도 저렴하다. 차 대표는 “친환경 종이 제품 중에 생산 단가로 따지면 가장 쌀 것”이라고 자신했다. “일반적으로 친환경 제품이라고 하면 비싸요. 미국 스타트업 롤리웨어가 만든 머그컵이 대표적입니다. 컵 하나에 우리 돈으로 7000원이나 해요. 신기해서 한 번은 사볼 수 있겠지만, 소비자들의 일회용품 수요를 맞추진 못하는 가격이죠. 부담 없는 가격에 친환경적인 제품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해조류에서 뽑아낸 신소재는 비닐과 종이컵 생산에도 쓰인다. 마린이노베이션이 생산하는 비닐은 기본 소재는 물론 인쇄된 잉크까지 모두 친환경 소재로 만든다. 불에 태워도 유해 물질이 발생하지 않는다. 종이컵의 경우 내부 코팅 물질을 게 껍데기에서 뽑아낸 키토산으로 대체해 3개월이면 완전히 분해되도록 했다. 기존 종이컵은 내부에 폴리에틸렌으로 코팅돼 있어 50년 넘게 썩지 않았고, 재활용도 되지 않는다. 차 대표는 “100%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석유화학 물질을 약간만 섞으면 더 싸고, 튼튼한 비닐을 만들 수 있지만, 완전한 친환경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마린이노베이션의 기술력은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회사를 설립한 2019년 이후 2년 만에 환경부·산업부·농식품부·중기부·국방부 등 장관상만 5개 받았고, 지난해에는 두바이 세계 박람회에서 우수 기업에 선정돼 10만달러를 수상했다. 특히 지난달에는 포장 기술 업계 최고 권위의 ’2021 월드스타 글로벌패키징 어워드’에서 친환경 포장 기술로 선정되기도 했다.
기술력은 투자 유치로 이어졌다. 설립 3년 차에 불과하지만 SK이노베이션에서 5억원, 지난해 4월 중기부 창업 지원 프로그램 ‘팁스’에 선정돼 2억원을 투자받는 등 지금까지 총 12억5000만원의 투자를 받았다.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왔다. 차 대표는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의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계약 요청을 보내고 있다”며 “중동 바레인에서는 매칭 투자와 함께 회사를 자국으로 이전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고 말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친환경 사업
친환경 소재를 개발하는 일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원래 사업이란 게 어렵다지만, 이건 정말 힘들더라고요. 창업 첫해에는 제품보다 기술 개발에 집중했는데, 연구·개발비로만 5억원 정도가 들었어요. 새로운 기술을 쓰다 보니 제품을 찍어낼 공장 찾는 것도 어려웠죠. 공정 테스트와 시제품 제작까지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갔어요. 투자금만으로는 부족해서 상금과 사비로 메웠죠.”
차원영 대표가 고된 친환경 사업에 매달리는 이유는 딸 때문이다. 그는 “하루는 딸이 아파 병원에 찾아갔는데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며 “나중에야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질환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에게 깨끗한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당장 행동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마린이노베이션은 창업 3년 차 신생 소셜벤처지만, 차 대표가 기술 연구에 쏟아부은 시간은 무려 13년이다. “인도네시아 주재원으로 있을 때 해양 자원에 눈을 떴습니다. 바닷속에도 나무와 속성이 비슷한 식물성 소재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게 바로 해조류였어요.”
해조류의 가능성을 발견한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연구에 돌입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현지에 머물면서 해조류 소재 연구에 매달렸고, 한국으로 귀국한 뒤로는 한국조폐공사, 한국생산성연구원, 한국섬유개발연구원 등 연구 기관들과 머리를 맞대 시제품들을 찍어냈다. 그는 시제품을 손에 쥐고 나서야 확신을 갖고 회사를 설립했다.
마린이노베이션은 일회용품 위주로 제품군을 넓히고 있다. 조만간 해조류로 만든 일회용 접시를 출시할 계획이다. 도시락 용기, 컵라면 컵 등은 이미 기술 개발이 완료돼 관련 기업들과 연계 사업을 추진 중이다.
“세계적인 흐름은 친환경으로 가고 있는데, 정부나 대기업은 아직 엉덩이가 무겁습니다. 정부는 플라스틱 관련 규제를 강화하거나 친환경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대기업들은 투자를 통해서 친환경 제품 제조를 더 독려했으면 좋겠어요. 친환경 소셜벤처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울산=김지강 더나은미래 기자 rive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