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수거 노인이 불쌍하다고요? 생각을 한번 바꿔볼까요? 그분들은 국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자원순환에 일조하시는 분들입니다. 대가 없이 도움을 줘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거죠.”
기우진(38) 러블리페이퍼 대표는 폐지 수거 노인을 ‘자원재생활동가’라고 부른다. 사회적기업가인 그는 1kg당 50원 수준의 폐지를 300원에 매입한다. 웃돈 주고 사들인 폐지는 캔버스로 만들어지고, 그 위에 미술 전공자들의 그림을 입혀 작품으로 재탄생된다. 작품 판매 수익은 다시 노인들을 위해 쓰인다. 자원순환처럼 수익선순환을 만드는 기우진 대표를 지난달 21일 인천 부평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코로나19 이후 쓰레기 배출량이 늘면서 재활용에 대한 관심도 많이 늘었잖아요. 그런데 재활용품 수거 노인에 대한 인식은 그대로예요. 개인의 빈곤 문제로만 치부하면서 불쌍히 여기죠. 그만큼 재활용 산업에 대해 관심이 없는 거죠. 폐지 수거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환하려면 어르신들이 지금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할 수밖에 없게 만든 원인을 이해합니다.”
기우진 대표는 ‘재활용품 수거 노인의 노동 환경과 이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한다’라는 목표로 비즈니스 모델을 조금씩 확장해왔다. 올해로 5년차. 러블리페이퍼 활동에 자원봉사로 참여한 그림 작가는 300명, 매월 일정 금액을 내고 그림을 받아보는 정기구독자는 500명에 이른다. 연 매출은 2억원 수준이다. 기 대표는 “작년부터 그림뿐만 아니라 직접 폐박스로 캔버스를 만들 수 있는 DIY 키트를 팔기 시작했다”면서 “학생들과 폐지로 캔버스를 만드는 자원순환 교육 프로그램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최근 비대면 교육이 늘면서 섭외 연락이 오히려 늘었다”고 했다. 러블리페이퍼의 자원순환 교육을 받은 학생은 지난해 하반기에만 2000명이 넘는다.
최근에는 러블리페이퍼의 환경적 가치를 끌어올릴 길을 찾고 있다. “폐박스를 캔버스로 만들면 재활용이 안 되는 일반 쓰레기가 되잖아요.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더 줄일 필요가 있어요. 기존 그림 위에 젯소를 칠하면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이러한 방식으로 캔버스 재활용 서비스를 준비 중입니다.”
기우진 대표가 자원순환 분야에 뛰어든 건 우연이었다. 그는 “대안학교 교사였던 2013년부터 사무실에서 버려지는 무수히 많은 종이를 보면서 고민에 빠졌었다”면서 “특별한 기술도 없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생각하다 우연히 폐지 수거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우선 현황 조사부터 했다. 폐지 수거 노인은 전국에 약 170만명, 이들이 종일 일해서 받는 돈은 고작 3000원 수준이었다. 처음엔 수거 활동을 돕는 봉사 단체를 만들었다. 단순히 일손을 돕는 것으론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지금처럼 폐지를 활용해 상품을 만들고 발생한 수익이 다시 노인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기까지 3년이 걸렸다.
올해는 입법 활동에 힘을 보탤 계획이다. 기 대표는 “지난 20대 국회에서 법안심사소위에 계류하다 별다른 논의 없이 폐기된 ‘재활용품 수거 노인 지원 법률’이 제정되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생계가 어려운 노인들의 재활용품 수거 활동을 노동으로 인정해 인건비를 지급한다는 게 법안의 핵심”이라고 했다.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노인의 경제 상황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현황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지금은 폐지를 줍는다는 지자체 조사 결과 하나에 의존해 물품을 지원하는 데에 그치고 있어요.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사람은 어렵고 힘드니까 도와줘야 한다’라는 인식이 아니라 ‘재활용에 기여하는 자원활동가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다’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 거죠. 앞으로도 노인 빈곤을 심화시키는 재활용 산업의 구조적인 요인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강태연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kit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