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상속 에세이 낸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책 ‘나는 새해가 되면 유서를 쓴다’ 출간
11여 년 전부터 매년 유언장 작성
불행한 상속 막으려면 죽음 대비를
“누구나 살면서 한두 번은 유산을 상속받고 또 하게 됩니다. 언젠가 경험하게 되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노하우를 터득하고 익힐 일은 못 되죠. 후회 없이 상속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도움을 구하고 싶어도 마땅한 곳이 없습니다. 상속에도 기술이 필요한데 말이죠.”
황신애(48)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지난 20년간 모금 활동 전문가로 활동해온 ‘국내 1호 고액 펀드 레이저’다. 지금까지 그가 이끌어낸 기부금만 5000억원이 넘는다. 동시에 ‘유산 기부 전문가(Legacy Designer)’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그는 “유산 상속이란 인생을 남기는 일”이라며 “재산뿐 아니라 한 인간의 스토리를 유산으로 삼고 이를 후대에 남기는 일을 상속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황 이사는 최근 ‘나는 새해가 되면 유서를 쓴다’는 책을 펴냈다.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상속을 잘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면서 ‘유언장’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유언장을 쓰는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어요. 상속을 잘하려면 무엇을 누구에게 어떻게 남겨야 할지 정해야 하는데, 그걸 고민하지 않는 거죠. 일단 유언장을 써보면 알게 됩니다. 유언장이라는 건 죽음을 전제해야 하니까 현재 시점으로 인생을 한번 정리하게 되거든요.”
황 이사는 지난 2009년부터 매년 유언장을 쓴다. 2009년은 우연한 기회로 유산 기부 상담을 하게 된 해였다. 그는 “어쩌다가 가족도 아닌 사람의 유언장을 함께 작성하고 유산을 기부받게 됐는데, 기부자로부터 살아온 인생 역정을 들으며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처음에는 유언장을 쓰는 사람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려고 시작했어요. 근데 막막했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으니까요. 첫 유언장은 태워버렸어요. 그런데 억지로 매년 쓰다 보니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져요. 돈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메시지 같은 것도 유언장에 담게 됐어요. 제 유언장에는 자식들이 챙겼으면 하는 삶의 원칙이 담겨 있어요. 이를테면 일에 대한 태도랄지 사람에 대한 태도 같은 거요.”
그는 지난 20년간 수많은 부자를 만났다. 기부를 하겠다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서 발견한 공통점은 ‘돈을 버는 능력’만큼 ‘돈을 다루는 능력’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돈을 어떻게 쓰고 남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어요. 어떤 태도로 살았는지, 소중하게 여긴 가치는 무엇인지도 드러나죠. 현명한 사람들은 자녀에게 돈을 버는 방법을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돈을 지키는 법, 돈을 쓰는 법을 알려주려고 하죠. 잘 버는 게 아니라, 잘 쓰고 잘 남기는 게 중요한 거죠.”
상속 대상은 대체로 가족이다. 더 나아가서는 살아가는 동안 도움받았던 은인일 수도 있고, 더 넓게 유산 기부를 통해 사회로 확장할 수도 있다. 그는 “국내에도 몇몇 빛나는 유산 기부 사례가 있지만 아직은 먼 얘기처럼 느껴지는 상황”이라며 “죽음에 대한 준비를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닥치지만,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는, 미리 준비하지도 않는 그 일이 바로 죽음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입시, 입사, 결혼 등을 열심히 준비하면서 죽음은 외면하고 회피하고 있어요.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현재 나의 삶을 위한 일입니다. 준비 없이 맞이한 죽음은 남은 사람들에게도 큰 상실을 안기잖아요. 소중한 사람들에게 불행을 상속하지 않는 최고 방법은 유언장 작성이에요. 바로 오늘이 유언장 쓰기 가장 좋은 날입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