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국내 주요 화장품 제품 재활용 여부 살펴보니
각사 주력 판매 제품 30개 분석
재활용 가능한 건 5개 제품 불과
대부분 복합 재질 ‘OTHER’
씻고 헹구고 닦았다. 차곡차곡 모은 플라스틱을 악착같이 분리 배출했다. 쓰레기 매립지로 갈 운명의 플라스틱에 새 생명이 부여될 거란 생각에 뿌듯함도 느꼈다. ‘아더(OTHER)’를 알기 전에는 많은 사람이 그랬다. 지난해 말 재활용 마크만 보고 깨끗이 씻어 내놓는 즉석밥 용기가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크게 화제를 모았다. ‘OTHER’는 복합 재질로 이뤄진 플라스틱 제품으로, 식품 포장재나 화장품 용기 등 일상생활 곳곳에 쓰인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지배적인 화장품 업계에서는 유독 OTHER 제품이 많다. 문제는 단일 성분이 아니기 때문에 분리 배출돼 폐기물 선별장에 도착해도 재활용되지 않고 매립 혹은 소각된다는 점이다. 생산할 때부터 재활용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말이다.
더나은미래는 국내 주요 화장품 기업의 주력 판매 제품 30개의 용기 재질을 살펴봤다. 이번 조사는 2019년 기준 국내 화장품업계 매출액 상위 여섯 기업(OEM 제외)인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애경산업, 해브앤비, 카버코리아, 이니스프리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기업별로 다섯 제품을 꼽았고, 제품은 지난 28일 기준 오픈마켓 쿠팡의 판매량 순으로 선정했다.
복합 재질 OTHER, 만들 때부터 재활용 불가
환경부의 분리 배출 지침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질에 따라 ▲PET(페트) ▲HDPE(고밀도 폴리에틸렌) ▲LDPE(저밀도 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PS(폴리스티렌) ▲PVC(폴리염화비닐) ▲OTHER(복합 재질) 등 7가지로 구분한다. OTHER를 제외한 나머지 재질은 재활용이 가능하다.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된 30개 화장품 가운데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은 5개에 불과했다. 세부적으로는 유리 소재 2개(파운데이션), PET 소재 2개(토너·세럼), PP 소재 1개(크림) 등이다. 플라스틱 소재로만 따져보면, 재활용 가능 용기는 약 10% 수준에 불과하다.
분리 배출 표시가 아예 없는 제품도 8개나 있었다. 이 제품들은 마스카라, 아이브로, 컨실러, 팩트 등으로 플라스틱 구성 제품이지만 분리 배출 대상은 아니었다. 이에 대해 한국환경공단 자원순환본부 관계자는 “포장재의 표면적이 50㎠ 미만이거나 내용물 용량이 30g 이하인 제품은 분리 배출 표시 의무 대상에서 제외되는데, 위 제품들이 예외 조항에 해당하는 제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환경 단체들은 일상용품 가운데 화장품 용기가 유독 재활용이 안 된다며 개선을 요구해왔다. 화장품 용기를 재활용 가능한 단일 소재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강동호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패키징기술센터 선임연구원은 “고기능성 화장품에는 변질 우려가 크기 때문에 차단성이 높은 복합 소재를 써야겠지만, 로션이나 크림 같은 제품은 PP·HDPE·PET 등 어떤 소재로도 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화장품 업계 “매출 하락 우려에 소재 전환 어려워”
화장품 기업들이 복합 재질 용기를 단일 소재로 쉽게 전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매출 하락에 대한 우려다. 화장품은 용기 디자인이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단일 소재로 제작하면 색감이 떨어지고 화려한 장식을 달 수 없다는 것이다. 애경산업 관계자는 “내용물의 변질을 막기 위한 복합 재질 포장재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디자인 요소까지 고려한다면 단일 소재로 포장재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한 화장품 기업 관계자는 “용기 소재를 바꾸면 디자인도 바뀌어야 하는데, 디자인 변경은 매출 감소로 직결된다는 건 업계에서 흔히 통용되는 말”이라며 “결국 화장품 용기를 친환경 소재로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인데 그게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소비자 요구에 맞추다 보면 ‘OTHER’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도 있다. 최근 화장품 내용물의 변질을 막는 보존제 사용량을 줄이면서 오염에 강한 복합 소재 용기를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구현 대한화장품협회 대외협력팀 과장은 “화장품은 오래 두고 쓰는 제품이라 변질되지 않고 사용 기한도 길어야 한다”면서 “단일 소재 용기는 빛 차단이나 오염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했다. 이어 “복합 소재 용기를 대체하는 새로운 용기가 나와도 기존 사용 기한만큼 내용물이 유지되는지 테스트하려면 최소 2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화장품 업계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내부 협의체인 그린심의협의회를 구성해 매월 관련 부서가 모여 전사 차원의 포장재 재활용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과제를 수행 중”이라고 했다. 해브앤비 관계자는 “포장재 변경은 안전성 문제뿐 아니라 제조 생산성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산업군 전체가 친환경 흐름을 인식하고 함께 적용해 나가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김지강 더나은미래 기자 river@chosun.com
강태연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kit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