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일자리 리포트] (2) 2030 활동가 이야기
비영리 업계에서 청년층 인력 유출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영리 업계에 뛰어들었지만, 낮은 급여와 열악한 업무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젊은 세대는 무엇을 찾아서 비영리로 오는 걸까. 그리고 왜 비영리를 떠나게 될까. 2030세대 남녀 활동가 두 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9년 차 활동가 정호씨 이야기
김정호(36·가명)씨는 마을 공동체 활동가다. 지역 NGO에서 5년, 개발도상국 현장에서 2년을 일했다. 귀국 후 최근까지 서울 소재 중간 지원 조직에서 일했다. 그는 “개인의 생활과 일이 분리되지 않는 게 비영리 활동가의 삶”이라고 했다.
처음 일하던 단체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도 “이러다 죽을 것 같아서”였다. 그가 주로 하던 일은 지역 공동체 활동. 지역 주민을 만나는 게 중요했는데, 그러다 보니 야근과 주말 출근이 끊이지 않았다. 낮엔 주부나 어르신을 만나고 퇴근 뒤엔 직장인들을 만났다. 산더미 같은 행정 일도 해야 했다. 첫해 월급은 140만원대로 최저임금이었고 수당은 없었다. 월급이 밀리기도 했다. 어려워진 집안 형편과 결혼을 앞둔 상황에 고민이 커졌다.
개발도상국 현장으로 떠난 건 국제 경험을 통해 경력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막상 가보니 상황은 더 열악했다. 현지 직원들 급여를 주기 위해 자신의 몇 달치 급여와 그간 모아둔 돈을 단체에 빌려주기까지 했다. 더 큰 문제는 해외에 나가 있던 2년이 서류상 공백기가 된 점이다. 현장 총책임자 격 실무자로 일했는데도 정호씨의 신분이 ‘봉사자’였던 탓이다. 해외 봉사자로 등록하면 인건비를 지원받을 수 있어 단체들이 이 방법을 쓰는데, 4대 보험이 안 되는 게 문제였다. 경력만큼 급여를 못 받는 것뿐 아니라, 서류상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아예 취업이 안 됐다. 1년 넘게 몇 달 단위의 단기 계약직 일자리를 거치고서야 겨우 새로운 곳에 취업했다.
그래도 공익 활동을 지속한 건 좋은 선배들 덕분이었다. 선배들은 재정이 어려워지면 자기들 월급부터 미루고 후배 월급을 먼저 챙겼다. 직장 상사가 아니라 활동가 선배로 조언을 구하거나 치열한 토론도 할 수 있었다. 신념을 지키고 실력을 쌓았단 자긍심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을 보고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현실적 문제로 동료 선후배가 떠나가니 저임금, 과로만 남았다. 그가 일하던 단체를 옮긴 시점은 모두 동료가 떠나간 이후였다.
최근 정호씨는 그나마 생계 유지가 가능한 수준의 급여를 받게 됐다. 공동체 활동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에서 일하게 되면서다. 하지만 마음은 복잡하다. 공익 활동을 하는 것은 맞지만, 시민 단체는 떠난 셈이기 때문이다. 정호씨와 함께 일한 또래나 선배 대부분이 현실적 문제로 아예 업계를 떠났거나 상황이 나은 중앙 단체, 공공 관련 기관, 기업으로 이직했다. 그는 “나를 포함해 결혼한 30대 이상 남자 활동가는 지역에 거의 없다”면서 “현장을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크다”고 했다.
3년 차 활동가 선희씨 이야기
이선희(27·가명)씨는 경상도 소도시의 환경 단체에서 일하는 3년 차 활동가다. 대학 시절부터 고향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고,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던 차에 고향에 있는 환경 NGO에 지원해 합격했다. 그는 “지역에서, 심지어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겠다는 젊은 사람이 흔치 않아서 운 좋게 합격했다”며 웃었다.
최저임금에서 시작한 급여는 3년 차가 된 지금도 거의 그대로지만, 큰 불만은 없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으니 큰돈 들어갈 일이 없고, 덜 사고 덜 쓰면서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비건이자 미니멀리스트, 제로웨이스트주의자인 신념대로 살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3년 차가 되면서 조금씩 걱정도 생겼다. 선배 활동가들이 떠나는 걸 보고 난 뒤다. 당장은 아니지만 결혼, 유학, 퇴사, 건강 문제 등으로 큰돈이 필요할 때가 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든다. 그가 보기에 선배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아예 가난을 받아들이거나, 안정적 수입을 가진 배우자를 찾았거나…. ‘혼자서도 잘 살고 싶은’ 선희씨에겐 두 종류의 삶이 다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그래도 서울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느리게 돌아가는 지역 분위기가 좋다. 높은 건물로 둘러싸인 도시의 작은 방에서 살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도시에서도 고향에서도 돈이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지금 사는 곳엔 도시에는 없는 정신적 여유가 있다.
그렇다고 이 단체에 뼈를 묻을 생각은 없다. 소셜벤처 등을 창업한 또래들을 보면 자극이 된다. 3년 후쯤엔 단체를 떠나 제로웨이스트 숍을 차려볼 계획도 하고 있다. 활동 경험이 쌓이면서 꼭 단체 소속 활동가가 아니어도 신념대로 살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비영리의 미래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는 “비영리단체가 아니어도 공익 활동으로 먹고살 방법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급여 인상보다 시급한 건 조직 문화 개선이다. “급여가 적은 줄 모르고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 존중받으며 일할 수 없을 때 업계를 떠나요. 열성적 젊은 활동가를 붙잡고 싶다면 활동가가 수평적으로 존중받으며 일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