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환경·주민 모두 생각하는 여행 만듭니다

[레벨up로컬] 윤순희 제주생태관광 대표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98%나 떨어졌어요. 손도 못 썼죠.”

코로나19로 해외 여행길이 막히면서 제주로 여행객이 몰린다는 소리가 심상찮게 들린다. 제주 여행객 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그렇다고 이 상황이 여행사에 호재로 작용하진 않았다. ‘언택트 관광’이 대세가 되면서 여행사를 거치지 않고 개별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제주 공정여행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윤순희(52) 제주생태관광 대표도 “여전히 어렵다”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지난 8일 전화 인터뷰로 만난 윤 대표는 “매출은 줄었지만 언택트 흐름에 맞춘 새 상품을 기획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며 “지금은 위기를 밑거름 삼아 보다 단단해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윤순희 제주생태관광 대표가 서귀포 머체왓 숲에서 편백나무를 끌어안고 있다. 윤 대표는 “제주 생태를 배우는 공정여행을 통해서 여행객들이 제주도의 진가를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소규모 여행으로 위기 극복 노력

제주 지역에서 제주생태관광은 상징적인 회사다. 제주참여연대 출신인 윤순희 대표를 비롯해 6명의 환경운동가가 의기투합해 만든 공정여행 사회적기업이다. 올해로 설립 18년째. 제주는 물론 국내 공정여행 1세대로 불렸다. 하지만 이들도 코로나19 상황에선 속수무책이었다. 특히 주민과 교류하는 단체 관광 상품을 내세워온 제주생태관광의 타격은 극심했다. 2019년 한 해만 해도 62개 기업, 1860명이 제주생태관광을 통해 제주 여행을 다녀갔지만, 지난해는 발길이 뚝 끊겼다.

“우리 여행의 콘셉트는 분명해요. 단순히 사진만 찍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주민들의 해설을 들으면서 배움을 얻는 거죠. 그런데 언택트에는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최근 들어 조금씩 활로를 찾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우연이었다. 2년 전부터 시범 사업으로 진행해온 ‘소규모 자연 체험 여행’ 상품이 코로나 이후 갑자기 주목받기 시작했다. 제주생태관광에서 개발한 ‘제주바다 쿠킹클래스’가 대표적이다. 제주바다 쿠킹클래스는 망장포구 앞 현무암으로 어장처럼 이뤄진 바다에서 여행객이 직접 보말을 채취해서 보말파스타를 만들어 먹는 프로그램이다. 윤 대표는 “근래에는 소규모 인원이 한 장소에 오래 머무는 여행을 점점 더 선호하고 있다”면서 “단체가 아닌 개인 여행객들의 일정에도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하나씩 넣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는데, 이게 코로나19 상황에서 숨구멍이 될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위기를 돌파하는 아이디어는 경험에서 나온다. 윤 대표는 지난 2011년에 제주 조천읍 선흘1리 동백동산 상록활엽수림을 생태관광지로 개발하는 일에 참여했다. 또 2013년에는 서귀포 남원읍 하례리의 효돈천 계곡을 주민들과 함께 따라 걸으며 마을에 전해지는 옛 이야기를 듣는 ‘효돈천 트레킹’을 기획했다. 주민을 해설사로 참여시키면서 마을에 소득이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것이다. 처음에는 주민들도 못 미더워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각 마을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자연보호 활동을 하고, 공정여행 아이디어를 내는 생태관광마을협의체도 꾸렸다.

코로나 이후에도 ‘컨택트’ 여행은 계속될 것

“당장은 힘들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생태관광 정신을 지키는 게 포스트 코로나 상황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지역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여행 방식이 ‘언택트 여행’ 흐름에도 맞아떨어지잖아요.”

제주생태관광은 한 여행지에 최대 스무 명까지 받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윤 대표는 “깨끗한 자연 그대로를 즐길 수 있도록 기획한 여행에서 자연을 훼손하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했다. 이러한 고집에 여행객들도 호응했다.

“제주생태관광의 여행에서는 마을 해설사의 말을 들으면서 자연환경에 대해 배우는 게 중요한데, 사람이 많아지면 이도 저도 안 되거든요.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 생태를 배우려는 교육 목적의 여행 요청이 꾸준히 들어왔어요.”

최근 제주생태관광은 인재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윤 대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는 새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주도할 수 있는 안내자가 더 많이 필요해졌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한국타이어나눔재단과 굿네이버스에서 주관하는 ‘드림위드 우리마을 레벨업 프로젝트’에 선정돼 경력 단절 여성들을 ‘제주생태관광 매니저’로 육성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으로 20명의 생태관광 전문가를 배출했고, 이 중 6명은 제주생태관광에서 진행하는 트리클라이밍이나 편백 숲 체험 프로그램의 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미덕이 된 시대지만, 윤 대표는 여전히 “사람이 만나는 여행은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지역 생태를 이해하는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주민이나 해설사를 만나야 한다”면서 “여행 규모를 줄이고 안전 거리를 두며 만나는 소규모 ‘컨택트’ 여행이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했다.

김지강 더나은미래 기자 river@chosun.com

공동기획 | 더나은미래·한국타이어나눔재단·굿네이버스·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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