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
세계 ‘탄소 중립’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등 20국이 탄소 중립 목표를 선언했고, 작년 10월 문재인 대통령도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며 국제 흐름에 동참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애플과 구글 등 284개 글로벌 기업은 2050년까지 사용 전력량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글로벌 캠페인 ‘RE100’에 동참하면서 탄소 중립을 경영의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탄소 중립 실현은 재생에너지를 비롯해 전기차, 친환경 건축물, 대체육 등 다양한 산업에 걸쳐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곁에 바짝 다가온 게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입니다.”
윤태환(39) 루트에너지 대표는 ‘재생에너지 예찬론자’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통해 지역 주민들을 재생에너지 투자자로 만드는 일을 한다. 태양광·풍력 발전소, 에너지저장시스템(ESS) 구축 사업에 공공기관과 함께 투자하고 수익금을 나눠 갖는 구조다. 지난해 12월 기준, 펀딩 누적액은 366억원에 이른다. 지금까지 30개 지역에서 170건의 펀딩을 진행했다. 주민 참여형 재생에너지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그를 지난 11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났다.
재생에너지=분산에너지, 주민 참여 필수
“재생에너지가 확산하는 데 가장 큰 장벽은 ‘주민 갈등’입니다. 기술력이나 경제성이 아니에요. 태양광이나 풍력 에너지는 이미 석탄화력이나 원자력보다 싸고 온실가스도 발생시키지 않습니다. 실제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허가를 내주는데, 반려되는 사업 가운데 약 80%는 주민 갈등 때문이에요. 반대 민원이 없는 땅은 거의 다 소진됐어요. 앞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은 주민과의 갈등을 조율하면서 추진해야 합니다.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주도하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죠.”
윤태환 대표는 태양광·풍력 에너지를 ‘분산 에너지’라고 했다. 특정 지역에 설비를 구축하는 석탄·석유 발전소와 달리 태양광·풍력 발전소는 전국 곳곳에 분산 설치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만큼 주민 동의는 재생에너지 사업의 필수 요소가 됐다.
주민들을 끌어들이는 힘은 확실한 보상에서 나온다. 지난해 12월 마무리된 ‘태백 가덕산 풍력발전사업’은 20년간 연 수익률이 8.2%에 이른다. 강원도청과 한국동서발전이 사업자로 참여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 이 펀딩에 태백시민 250여 명이 총 17억원의 투자금을 내놨다. 윤 대표는 “발전소에서 나오는 이익이 지역에 녹아드는 구조가 중요하다”고 했다.
수익만 중시하는 건 아니다. 가덕산 풍력발전소는 4만3200㎾ 규모로 약 2만 가구가 사용하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2018년 기준 1만8886 태백시 가구 수를 넘는다. 윤태환 대표는 “에너지 분야를 어렵게만 여기고 ‘정부가 알아서 하겠지’ 하고 내버려두면 안 된다”면서 “전기 생산하에 주민이 참여하는 시대가 오고 있고, 태양광·풍력 발전소 투자로 실현 가능하다”고 했다.
주민들이 발전소 만들고 송전탑 세운다
윤태환 대표의 재생에너지 예찬론은 경험에 기반한다. 그는 2008년 에너지 전문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하고 감축 전략을 수립하는 업무를 주로 맡았다. ESG 평가 애널리스트로 MSCI 등급 측정에 동참하며 전문성을 쌓았다. “당시 정부에서 ‘녹색성장’을 강하게 밀면서 GCF, GGGI, GTC 등 국제기구 설립을 추진했는데 컨설팅을 담당했어요. 그때 덴마크의 재생에너지 산업을 알게 됐습니다. 재생에너지 강국이라는 독일보다 앞선 나라가 덴마크였고, 풍력 산업은 이미 밸류체인이 완성돼 있었어요. 공학적인 지식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에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유학을 갔죠.”
윤태환 대표는 덴마크 공과대학에서 풍력에너지를 전공했다. 3년간 현지에 머물면서 재생에너지의 미래를 발견했다. “덴마크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게 하나 있어요. 덴마크 사람들은 내가 쓰는 전기를 내 것이라고 생각해요. 주민들이 발전소도 만들고 송전탑도 세워요. 우리나라에서 매번 극심한 갈등을 빚는 일을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합니다. 지역 단위로 이뤄지는 이 풍력 산업은 덴마크 전체 GDP의 3%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큽니다. 석탄이나 석유 발전에 종사하는 인력은 재교육을 거쳐 재생에너지 산업에 재고용되기도 합니다.”
덴마크가 에너지 전환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한 건 1970년대 1차 오일쇼크 때다. 당시 우리나라가 고리 원전을 지을 시기에 덴마크 국민은 토론을 거쳐 원전 대신 풍력발전소를 짓기로 결론 내렸다. 1980년대부터 본격 투자가 이뤄졌고 지금은 전 세계 1위 풍력 강국이 됐다.
평범한 주민을 탄소 중립 투자자로
“인류가 석탄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한 기간은 200년 정도입니다. 원자력발전은 60년이죠. 과거 에너지 산업의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세계 각국에서 보조금을 대줬습니다. 관세 혜택도 있고요. 그런데 20년 남짓 된 재생에너지 산업은 이미 보조금 없이도 단위 면적당 가장 저렴하게 전기를 생산하는 구조를 갖췄어요. 몇몇 나라는 예를 들어 가로 2m, 세로 1m짜리 태양광 모듈 한 판이 과거 200~250W의 전력을 생산했다면 지금은 540W 정도로 효율이 높아졌어요. 모듈이 결국 반도체 산업이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효율은 더 높아질 겁니다.”
윤태환 대표는 기술의 힘을 믿는다. 재생에너지가 갖는 몇몇 단점도 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발전소 수명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소도 수명은 있지만 석탄화력·원자력과 큰 차이가 있어요. 원전의 사용 연한을 정하는 건 위험 때문이지만, 태양광은 효율이 떨어지는 시기로 수명을 잡습니다. 태양광 수명을 보통 25년으로 보는데, 20년 정도 지나면 효율이 80% 정도로 낮아지거든요.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 나오는 모델들은 50년까지 지속합니다. 어마어마하죠.”
윤 대표가 말하는 ‘에너지 전환의 성공 방정식’은 기술에서 시작해 주민으로 끝난다. 주민에게 재생에너지 사업의 참여 기회를 주고, 그 수를 늘려 나가는 게 핵심이다. “덴마크의 이웃 국가인 독일도 에너지 전환에 성공한 나라로 꼽히는데, 주민 주도형 에너지 사업에 참여하는 인구가 800만명 정도 됩니다. 재생에너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면 정치인들의 태도가 바뀌고 산업은 성장하게 됩니다. 아래로부터의 에너지 혁명인 셈이죠.”
현재 루트에너지가 진행하는 재생에너지 사업은 ‘탄소 중립 프로젝트’의 하나다. 앞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발굴해 더 많은 사람을 탄소 중립 사업의 투자자로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전기버스 개발, 충전소 인프라 구축, 대체육 공장 증축, 건축물 친환경 리모델링 등 도전할 사업은 무궁무진합니다. 정부나 정치인들을 믿고 탄소 중립 시대를 기다리기보다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목표 시기를 앞당길 수 있어요. 그런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손쉽게 경험할 기회를 열어둬야 합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던 시기를 떠올려보면, 처음 한동안은 일부만 썼지만, 어느 순간 사용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대세가 됐잖아요. 재생에너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현재 1만~2만명 수준의 투자자들이 점차 늘어 100만명쯤 되면 ‘탄소 중립’이라는 개념이 우리 사회의 어젠다가 되고, 사회 규범으로 자리 잡을 겁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