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복지가 필요한 사회복지사 “우린 천사도 수퍼맨도 아닙니다”

열악한 근무 환경 속 사회복지사의 눈물

청소년·노숙인·수급자 등
돌봄 대상에게 신변 위협
업무 강도 비해 임금 낮아
사회복지사 이직 잦고
구인난 가중되는 악순환

최근 근무 실태 알려지자
3교대 근무 도입 등
보건복지부가 대책 추진

사회복지사 A씨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휴대폰을 계속 지켜봤다. 자신이 돌보는 아이들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경기도 안성의 한 그룹홈(소규모 공동가정생활) 시설에서 4~5명의 소년소녀 가장들을 돌보고 있는 A씨는 7년이 넘도록 명절에 고향을 방문하지 못했다. A씨 대신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을 곁에서 돌볼 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2001년, 정부는 사회복지사 2인이 교대로 24시간 동안 그룹홈 청소년을 돌볼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2명 중에 1명은 행정 및 후원업무에 전념하느라 시설에 거의 오지 못한다. 대체 인력이 사실상 없다.

얼마 전, 아이들이 A씨에게 화를 내면서 물건을 던졌다. 하지만 A씨는 자신을 위협한 아이들에게 묵묵히 밥을 차려줬다. A씨는 그 순간을 덤덤히 회고하며 “아이들이 욕을 할 때, ‘우리에게는 과연 인권이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해 동료 사회복지사들이 오래전에 그룹홈을 떠났다. A씨는 사회복지사들의 잦은 이직으로 아이들이 자꾸만 상처를 받는 것이 안타깝다. 1년 동안 아이들과 호흡하면서 겨우 마음을 열면, 사회복지사가 시설을 떠나버린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조선일보 DB
조선일보 DB

◇사회복지사의 인권을 보호하는 시스템은 턱없이 부족해

현장에서 사회복지사들이 가장 많이 겪는 문제 중 하나는 ‘돌봄 대상자들로부터의 위협’이다. 돌봄 대상자들 중 일부는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폭언 및 욕설, 폭행, 심지어는 살인 위협 등의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 인천의 노숙인 보호시설 ‘은혜의 집’ 김명동 사무국장은 “며칠 전에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던 한 노숙인이 옆에서 간호를 하던 자원봉사자를 폭행했다”며 “신규 직원 채용 시 태권도 유단자를 우대하고 사회복지사들의 안전을 위해 호신술을 자체적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했다. 노숙인 재활시설은 2교대 근무 규정도 없다. ‘은혜의 집’의 한 여성 사회복지사는 “우리에겐 인권이 없냐”고 운 적도 있다.

문제가 생겨도 해결이 쉽지 않다. 지방자치단체나 지역사회에서 사고 원인을 담당자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윤선희 한국사회복귀시설협회 사무총장은 “시설 이용자들이 직원들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문제점에 대한 사회적 모니터링이 안 되고 있다”며 “시설의 책임성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사회 풍토로 인해 사고가 발생해도 이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자원봉사자가 아닌 전문직

사회복지사들의 인건비 수준도 심각하다. 사회복지사 1호봉의 권고 기본급은 159만7000원이다.(사회복지시 관리안내, 2013, 보건복지부) 4인 가족 최저 생계비인 155만원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다. 보건복지부 규정에는 개별시설 담당 부서 및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사정에 따라 별도의 기본급 지급 지침 마련이 가능하다는 항목도 포함되어 있다. 지자체가 정부의 기준보다 훨씬 낮은 인건비를 제공하고 있는 경우도 발생한다. 임은경 한국노숙인시설협회 사무처장은 “노숙인 시설은 지방 정부의 지원이 부족해 2009년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 수준에도 맞추지 못할 정도”라고 밝혔다. 이어 “우수한 사회복지사들이 높은 보수를 받기 위해 수도권 사회복지 시설로 이직하면서 지방 시설의 구인난이 가중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업무량도 상당한 수준이다. 사회복지사는 국가의 수많은 복지정책을 수행해야 하지만, 대접은 ‘자원봉사자’에 가깝다. 한국사회복귀시설협회는 251개의 회원시설을 단 두 명의 상근 직원이 관리한다. 이들은 사회복지사 교육, 행정업무 대행, 정책 건의, 법무 상담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은혜의 집’ 사회복지사 G씨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사명감을 키웠지만 1주일에 무려 50~60시간을 일하면서 수많은 일을 처리해야 한다”며 “사회복지사는 마치 ‘수퍼맨’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 가족서비스부에서 사회복지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이정은씨는 한국 사회복지사의 처우에 대해 “사회복지사를 ‘무조건 남을 돕고 봉사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전문성을 가진 집단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열악한 처지 외면

지금까지 정부에서는 민간 사회복지 영역 지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2013년 보건복지부 예산 중 사회복지일반 부문에 배정된 예산은 5611억원으로, 총 예산 41조673억원 중 1.37%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 사회복지공무원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알려지고 나서야 보건복지부에서 3월 21일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 준수를 유도하고 생활시설 3교대 근무를 도입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사회복지사들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놓았다. 한 복지시설의 대표는 “모금회 사업을 따내려는 단체 간 경쟁이 굉장한데, 대형기관은 제안서도 많이 채택되지만 소규모 시설은 역량도 부족하고 조직 체계도 부족해 경쟁 체제에서 밀리고 있다”며 “만약 시설의 인건비 지급이 조금이라도 늦게 되면 부도덕한 사업 내용으로 판단하는 등 소규모 기관에 대한 배려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미국은 비영리단체나 복지기관의 인건비만 지원해주는 민간재단이나 펀드들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기부자들도 내 돈이 100% 어려운 사람한테 다 가기만을 바라는 시스템”이라며 “일본이나 독일은 정부 보조금도 많은데 반해, 우리는 보조금은 적고 외부 지원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어 “사회복지사들이 힘들고 의욕이 없으면 결국 복지의 효과성은 떨어진다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경하 기자

문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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