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비영리스타트업] ①청년 백수들에게 소속감 주려고 ‘가짜 회사 놀이’ 합니다

[인터뷰] 박은미·전성신 니트생활자 대표

비영리스타트업 니트생활자의 전성신(왼쪽), 박은미 공동대표. /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여섯 번째 직장을 그만두면서 생각했어요. 다시는 조직 생활을 안 하고 싶다고요. 이유 없는 퇴사는 없잖아요. 회사 사람들에게 상처받아 더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거나 불공정 계약으로 쫓겨나듯 나오기도 하죠. 그런데 사회에서는 그저 취업할 의욕마저 사라진 부정적 존재로 여깁니다. 과정보다는 ‘백수’ 상태라는 결과만 보고요.”

박은미 니트생활자 대표는 청년 백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비영리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공동대표인 전성신씨와 함께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니트(NEET)’족을 모아 명함을 준다. 사명(社名)은 ‘니트컴퍼니’. 이른바 가짜 회사다. 입사 자격은 ‘무업(無業) 상태의 만 39세 이하 청년’이다. 사원들은 입사 이후 부서와 업무를 스스로 정한다. 매일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업무일지도 써야 한다. 단 월급은 없다.

지난 24일 바보의나눔 지원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활동가들의 공간 ‘동락가’에서 두 대표를 만났다. 그들은 “월급 대신 동료를 만들어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단체를 소개했다. 자칫 고립되기 쉬운 백수들에게 소속감을 주고 집 밖으로 끌어낸다. 전성신 대표는 “학교나 직장에서 나오는 순간 뭘 해야 할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어떤 업무를 할 건지는 사원들이 알아서 정하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사소한 일이라도 매일 해내면서 생활 루틴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사원들은 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팔굽혀펴기 30번씩 3세트 하기, 핫플레이스 다녀오기, 만보 걷기, 시(詩) 필사하기, 강아지 관찰하기 같은 업무를 매일 인증한다. 자격증 시험 공부를 업무로 지정한 사원도 많다. 사측은 각양각색의 업무 일지를 모니터링하고, 오후 6시가 지나도 퇴근 안 하는 직원들에게 “얼른 퇴근하라”고 지시한다.

박은미 니트생활자 대표.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박은미 대표는 10년 넘게 비영리단체, 공공기관, 기업 출연 재단 등에서 일했다. 20대 때는 더 조건이 나은 회사로 옮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세 번째 직장으로 옮길 때만 해도 이직이 잘됐어요. 공백 없이 경력을 쌓아나갔죠. 그러다 30대 넘어서니까 안 풀리기 시작했어요. 어느 면접장에서 ‘출산 계획이 있느냐’고 대놓고 묻는 말까지 들었죠. 2018년 12월 마지막 회사를 나오면서 ‘이력서 그만 쓰고 딱 1년간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다짐했어요.”

처음에는 막막했다. 같은 처지인 백수 친구들과 만나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됐다. 박은미 대표는 그 점에 착안해 ‘니트생활자’라는 블로그를 만들었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모였다. 오프라인 모임도 기획했다. 첫 모임 주제는 ‘백수들의 한양 도성 걷기’였다. 이를 시작으로 미술관 관람, 북한산 등반 등을 진행했다. 지난해 8월에는 서울NPO지원센터 지원으로 12명의 사원과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개인 업무 결과로 기획 전시도 마련했다. 지난 6월에는 아름다운재단에서 운영비를 지원받아 사무 공간을 마련해 4개월간 서울역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지금은 카카오임팩트와 협업해 니트컴퍼니 온라인점을 열고 있다. 출퇴근 여부는 채팅방으로 알리고, 100일간 매일 업무를 인증하는 방식이다. 올 상반기 진행된 시즌1에는 86명이 과정을 마쳤고, 지난 9월부터 진행한 시즌2에는 91명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사원들의 업무 인증률은 98%에 달한다. 전성신 대표는 “아무리 사소한 업무라도 매일 스스로 정한 업무를 해냈을 때의 만족감은 기대 이상”이라며 “우울한 상태로 지냈는데 자신감을 찾았다며 농담처럼 ‘간증’하겠다는 사원도 있고, 기획 전시에 참여한 한 사원은 관련 분야에서 새 직장을 얻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니트컴퍼니를 거쳐 간 사람은 200명이 넘는다. 대부분 만족하는 분위기지만, 무단 결근하는 일부 사원도 있다. 박은미 대표는 “업무 내용과 무관한 방바닥을 찍어 올리거나 같은 사진으로 반복해서 인증하면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로 판단해 따로 연락한다”면서 “전문가만큼의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친구나 동료처럼 최소한의 사회적인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성신 니트생활자 대표.

“일부 사람이 니트컴퍼니의 목표가 청년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도록 돕는 거냐고 묻는데 그건 아니에요. 오히려 기업이나 특정 조직에 소속돼야만 사회 구성원이라는 인식을 깨는 것에 가까워요. 무업 상태가 비록 익숙하지 않은 삶이지만 모든 사람은 사회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어요.” 박은미 대표는 더 많은 백수가 참여할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온라인점의 경우 100일짜리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중간에 참여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상시 채용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식도 고려 중”이라고 했다.

박은미·전성신 대표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다양해지는 피드백을 참고해 니트컴퍼니의 미래 전략을 수립 중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후기는 니트컴퍼니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회사 그만두게 되면 돌아올 곳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였죠. 누구나 백수가 될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많은 비영리단체가 그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는 게 목표라지만 니트컴퍼니는 계속 존재하는 게 목표입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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