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장기화로 고립 극심
부모는 생계 위해 일터로
육아는커녕 끼니 걱정해야
지역센터 대부분 문 닫아
비영리·소셜벤처가 나서
아이 돌봄이나 먹거리 지원
“노 머니, 노 푸드, 아이엠 베리 헝그리.(돈도, 음식도 없어 너무나 배가 고파요)”
경기 한 지역에서 이주민을 돕는 A씨는 몇 달 전 일을 잊지 못한다. 2~3개월 된 작은 아이를 안은 한 흑인 여성이 “며칠 동안 자신도, 아이도 굶었다”며 센터 문을 두드린 날이다. 미등록 상태로 한국에 사는 그는 일용직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왔는데 임신 중 코로나19가 퍼졌다고 했다. 건장한 이주민 남성도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상황에서 임신한 그에게 일을 주는 곳은 없었다. 이 와중에 출산하면서 수백만원 빚을 지게 돼 갓난아이와 함께 거리로 나앉게 됐다.
그나마 A씨를 찾아오는 경우는 운이 좋은 편이다. 현재 A씨가 돌보는 미등록 아동은 15명가량. 그는 “한 집에 갔더니 다섯 명이 넘는 아이가 불도 안 켠 작은 집에 옹기종기 모여서, 똥오줌을 싼 기저귀와 옷을 그대로 입고선 피부병에 걸려 몸을 벅벅 긁고 있었다”고 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도움의 손길을 구하기도 어려운 미등록 아동의 고통이 장기화하고 있다. 돌봐줄 친지가 없어 평상시에도 어려움이 컸던 미등록 이주민의 육아가 이제는 끼니를 걱정하는 지경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출신 B씨는 “모텔 청소 일을 하는데 코로나19 이후 일거리가 있을 때만 가서 일을 해주는 식으로 바뀌었다”면서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알아보느라 아이를 볼 시간이 더 없다”고 했다.
이 와중에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부모와 자녀 모두 막다른 골목에 몰린다. 싱글맘 C씨는 뇌수종을 앓은 아이의 병원비를 대느라 겨우 마련한 집 보증금을 뺐다. 지금은 돌도 안 된 아이를 데리고 2~3일씩 친구 집을 전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병원비로 진 빚을 다 갚지 못한 상태다. 코로나19 이후 일자리를 잃은 싱글맘 D씨는 아이가 에이즈 의심 증상을 보여 검사를 하느라 빚을 졌다. 고물상 청소 일을 구했지만 한국인 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그만뒀다.
전문가들은 미등록 아동을 사각지대 중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이라고 설명한다. 저소득 가정인 동시에 한부모 가정에 속한 경우가 많고, 장애나 질병을 가진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자식과 생이별을 선택하는 부모들도 있다. 카메룬에서 온 한 미등록 이주민은 지난달 결국 세 살 자녀를 혼자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고 당장 거리에 나앉을 판인 싱글맘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매일 ‘아이를 혼자 두고 돈 벌러 나갈까’와 ‘아이와 함께 굶을까’ 사이에서 고민했다는 그는 “고향에서는 혼자 있거나 굶지는 않을 테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문제는 이들을 지원하던 복지센터나 지역아동센터 등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미등록 아동에게 심리 지원을 제공하는 송정은 아트온어스 대표는 “공공 센터의 대면 돌봄 서비스가 코로나19로 모두 중단되면서 안 그래도 소외됐던 아동들이 더욱 극심한 고립을 겪고 있다”면서 “일반 아동들이 교육을 걱정하는 수준이라면, 미등록 아동들은 끼니나 사람과의 교류 경험을 걱정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현재 이들에 대한 돌봄은 일부 소셜벤처와 비영리단체 지원으로 간신히 이어지고 있다. 돌봄 소셜벤처 ‘놀담’은 지난 5월부터 한부모·저소득·다문화 등 취약 계층 가정에 무료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신민정 CCO는 “한 골목에 세 살, 다섯 살, 여덟 살 작은 아이들이 덩그러니 놓인 집이 흔하고 아픈 아이가 자기 몸에 혼자 주사를 놓는 가정도 많다”고 했다. 감염에 대한 리스크 때문에 기업 사회공헌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놀담은 취약 계층 돌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펀딩을 진행 중이다.
대놓고 기부나 후원을 요청하기도 어려운 미등록 아동의 상황은 더욱 어렵다. 미등록 이주민을 돕는 A씨는 “종교 단체나 지인들이 십시일반 모아주는 돈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을 통해 먹거리를 지원받는 식으로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영아 아시아의창 소장은 “취약 계층 대부분이 돌봄 공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미등록 아동의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면서 “이 아이들이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