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로컬 브루어리(지역 양조장)’에 대한 투자 건으로 구성원 간에 진지한 토론이 있었다. 한쪽에서는 술은 웰빙을 해치기 때문에 임팩트 투자 대상은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반대쪽은 전통주와 같이 지역 문화나 지역 공동체적 측면이 강조되는 경우에는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맞섰다. 쉬이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논의는 ‘건강 디저트’로 이어졌다. 더 건강하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디저트 제품이라면 사회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디저트는 영양 등 생존의 필수재도, 식량 문제와 연결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투자 우선순위에서는 떨어진다는 주장이 충돌했다.
임팩트 투자사 내부에서는 종종 사회적 가치 판단을 둘러싸고 열띤 논쟁이 펼쳐진다. 환경, 장애, 의료, 교육, 여성 분야의 경우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쉽게 끝나는 편이다. 하지만 모호한 지점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영역도 많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해야 ‘이것은 사회적 가치고, 이것은 아니다’라는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는 ‘마법의 분류 모자(sorting hat)’가 등장한다. 학생의 머리에 모자를 씌우면 기질과 성격을 읽어 특성에 맞는 기숙사를 배정해주는 마법 모자다. 투자 결정 건으로 토론이 격렬해지다 보면 우리에게도 그런 마법 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임팩트 투자계에 분류 모자 같은 역할을 하는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임팩트 투자 기관은 지난 2015년 UN에서 선정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사회적 가치의 판단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 투자 결정 과정에서 재무적 요소와 더불어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고려하는 ESG 역시 널리 활용되는 기준이다.
그럼에도 사회적 가치에 대한 판단이 어려운 이유는 아무리 선한 비즈니스라도 부차적인 사이드 이펙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경제, 사회, 환경에 어떤 식으로든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산사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 태양광 패널, 블레이드의 수명이 다하면 대부분 매립할 수밖에 없어 토양 오염을 일으킨다. 긍정적 영향이 부정적 영향을 압도할 것이라 예상하고 판단하기에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그래서 임팩트 투자는 참 어렵다.
대안으로 임팩트 투자사들이 선택한 방법은 ‘투자 배제(Negative Screening·네거티브 스크리닝)’ 원칙을 만드는 것이다. 이 원칙은 부정적 가치를 창출하는 회사들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는 기준이다. ‘어떤 것이 사회적 가치인가’에 대한 답을 내리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에 ‘이것만큼은 절대 사회적 가치가 아니다’에 대한 기준을 확고히 정하는 것이다. 투자에 ‘임팩트’라는 말이 붙는 순간 재무적 이익 창출만큼이나 ‘사회적 가치’ 창출이 중요해진다. 특히 우리의 선택이 또 다른 사회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다면 더더욱 이 기준을 엄밀하게 적용해봐야 한다. 최근 전 세계 연기금이나 금융기관들이 석탄화력발전소 등 탄소 배출 산업이나 담배, 벌채와 같은 산업을 투자 제외 대상으로 발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풍벤처스에도 투자를 하지 않는 분야가 여럿 있다. 우리의 기준이 완벽할 수도 없을뿐더러 창업자들이 배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배제 원칙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것은 임팩트 투자자의 정체성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가치의 판단과 결정이 어려울 때, 이 원칙이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배제를 통해 집중이라는 또 다른 효과를 누릴 수도 있다.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가 의미 있는 것은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이다. 임팩트 투자에도 배제 원칙이라는 브레이크가 의미 있는 것처럼 일반 투자사, 조직, 개인마저도 배제 원칙을 세우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바쁘게 달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의 테두리를 먼저 결정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다.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