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평화상을 UN산하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이 수상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1960년대 대한민국 보릿고개 시절을 살아온 세대들은 학교에서 나누어주던 옥수수죽 원조물자에서 WFP를 처음 만났던 기억이 남아있을 것이다. WFP는 그동안 지구촌의 기아퇴치를 위해 노력했고, 굶주림이 전쟁과 갈등의 무기로 사용되는 것을 막았으며, 이를 통해 평화를 견인해나가는 업적들을 이루어왔다. ‘제로헝거(Zero Hunger, 기아 없는 세상)’를 지향해 온 WFP는 1995년부터 북한 여성, 어린이, 주민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 사업도 주도해왔다. 우리 정부는 물론 대한민국 무상원조 대표기관인 코이카(KOICA)도 WFP와 손을 잡고 다양한 지원을 함께해온 터라 그 기쁨도 남달랐다. 그렇다면 지구촌 전역이 코로나 팬데믹에 휩싸인 2020년. 왜 WFP가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 것일까?
재난이 일상화된 코로나 시대에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단어가 바로 ‘리질리언스(resilience)’다. 우리말로는 회복력, 회복탄력성, 복원력으로 번역된다. 한 국가와 공동체의 리질리언스는 가장 강한 부분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가장 취약한 부분 아래로부터 평가된다. 실제로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사회와 공동체의 민낯을 보게 했다. 사회의 맹점과 사각지대를 여지없이 드러내 주었다. 타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 치열한 경제성장과 시장의 논리가 생명과 안전가치보다는 우선할 수 없음을 목도하면서 익숙했던 상식과 고정관념, 우선순위에 대해 근본적이고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경쟁에 맞선 협동. 이윤에 맞선 공공성. 지배에 맞선 연대. 경제를 통제하는 민주주의. 촘촘한 사회안전망과 튼실한 고용안전망을 짜는 일로부터 대한민국의 리질리언스를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재난에 맞서는 우리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 운명공동체가 됐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삶의 전제 조건들을 되돌아보면서 우리의 욕망을 리모델링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국제개발협력의 대안적 상상력을 회복해 가는 중이다. 코로나로 국경이 봉쇄되고 이동이 제한된 국제개발협력의 멈춰선 현장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서 움직이는 풀뿌리 주민조직과 마을공동체 현장들을 만나면서 우리는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오래된 역설들을 재발견하고 있다. 가난한 개발도상국에서 지역사회에 기반한 사회적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공정무역 생산자 조직을 돕기 위한 국제적인 연대와 협업이 이뤄지는 모습을 통해 대안개발의 미래를 만날 수 있었다.
코로나 시대에 WFP가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 이유에 대한 답은 “코로나 백신이 나오기까지는 식량이 최고의 백신”이라는 노벨위원회의 설명에 있다. 글로벌 보건의료 위기에 맞서 우리는 서로 연대하고 공조하면서 실은 가장 비의료적인 방식으로 사회적 회복력과 사회적 면역력을 배양하고 있었다. 길이 있어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가니 새로운 길이 된다는 코로나 뉴노멀 시대. 우리는 대안개발의 새로운 상상력을 조직해나가며 연대와 협력, 공조와 네트워킹을 통해 코로나가 호출한 ‘먼저 온 미래’를 맞이하고 있다.
송진호 코이카 사회적가치경영본부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