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이동 약자 발목 잡는 건, 장애 아닌 사회적 무관심”

[레벨up로컬] ‘이유 사회적협동조합’ 양윤정·최재영 부부

장애인 콜택시 배차 ‘하늘의 별 따기’
지체장애인 어머니 보고 사업 결심해

복지관 소유 장애인용 車 통합 관리
배차 효율 높여…내년 전국 확산 목표
모두가 이동할 수 있는 사회 만들고파

이유 사회적협동조합의 양윤정(왼쪽) 이사장과 최재영 이사는 “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확대하는 게 이유의 설립 목적”이라며 “장애인 탑승객이 원할 경우 병원 등 목적지에서 하는 활동 지원까지 제공하는 서비스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부산=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사회적협동조합 ‘이유’는 어머니의 한숨에서 시작됐다. 지체장애인인 어머니는 늘 “장애인 콜택시는 타기도 너무 어렵고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딸과 사위는 현실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오후 8시에 차를 불렀는데 차가 다음 날 새벽 4시에 오기도 하고, 시 경계를 벗어날 때마다 새로운 택시를 잡아타야 해 부산에서 차로 15분 거리 울산에 가는 데 세 시간이나 걸렸다. 공무원을 찾아가 이런 상황을 설명해봤지만 “이 정도도 고마운 줄 알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딸과 사위는 결국 회사를 차리기로 했다. 양윤정·최재영 부부는 하던 일을 접고 지난 2018년 10월 ‘이동 약자 승차 공유 플랫폼’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달 27일 부산 해운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만난 양윤정 이사장과 최재영 이사는 “사회적 약자에게 ‘이동의 자유’를 제공하겠다는 뜻으로 협동조합 이름도 ‘이유’라고 지었다”고 설명했다.

공유로 모두가 이동할 수 있는 세상 만든다

이들이 내건 모델은 ‘데이터 기반 승차 공유 플랫폼’이다. 구조는 단순하다. 지역 내 복지관 소속 장애인용 차량을 통합 관리해 차를 호출하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차량이 배차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양윤정 이사장은 “공공이 콜택시를 늘리고 배차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수십억원이 드니, 개별 장애인 복지기관이 소유한 장애인용 차량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애인 차량 한 대의 하루 평균 주행거리가 260㎞ 정도인데, 사람을 안 태우고 달리는 거리가 140㎞에 가까워요. 차가 개별 기관에 소속돼 있다 보니 그 기관 사람만 쓸 수 있어서죠. 각 기관에서 사람이 배차 관리를 하다 보니 중복 배차 등의 실수도 잦았어요. 전체 차량을 통합 관리하면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 장애인은 빠르게 이동해 좋고, 기관은 수수료 수입이 늘어나니 서로 좋은 일 아닐까요?”

사업 모델에는 확신이 있었지만, 난관은 기관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최재영 이사는 “처음엔 기관 10곳을 찾아가면 10곳에서 퇴짜를 맞았다”고 했다. 사회복지 경력도 없는 데다 ‘준비위원회’ 명함을 갖고 다니니까 사기꾼 보듯 했다. 지난해 2월 이미 사업자 등록을 했지만 ‘타다’와 택시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승차 공유 모델을 내건 이유에 대한 법인 인가가 기약 없이 미뤄졌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법인 등록을 하고 지난 3월 부산장애인생활지원센터와 함께 베타 테스트를 진행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다섯 기관만 참여했는데도 한 대당 같은 기간 이용자는 2배로 늘었고, 배차 대기 시간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올해까지 부산 지역에서 차량 160대 확보해 누적 이용자를 5만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양윤정 이사장은 “현재 전국 사업 확장을 추진 중”이라며 “내년까지 전국적으로 차량 6000대를 확보해 80만명이 이용하는 교통 약자 대상 서비스를 출범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은 잠재적 이동 약자

이유 사회적협동조합이 만든 승차 공유 플랫폼은 기사와 승객 모두 ‘이유’ 앱(애플리케이션)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해 편의성을 극대화하고 데이터 수집률을 높였다. 앱 개발은 IT 기업 ‘아우토크립트’와 협력해 만들어냈다. 디자이너 출신 양윤정 이사장이 UI 디자인을 기획하면 아우토크립트 소속 개발자들이 솜씨 좋게 앱으로 구현해냈다.

승객들의 평가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음성 안내’다. 최재영 이사는 “특히 시각장애인 승객과 기사 간 분쟁이 확 줄어들었다”고 했다. “요금을 시간으로 책정하는 경우 구간 요금제라서 특히 시각장애인과 기사 간 분쟁이 많았어요. 가령 기본요금이 2000원이라고 했을 때 20분 1초부터 2500원이 되는 식이에요. 하차할 곳 근처에서 차가 밀려서 매일 2000원에 오던 곳인데 2500원을 내야 한다고 하면 시각장애인은 앞이 보이질 않으니 ‘사기 친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희 앱에선 음성 안내가 나오니 이런 분쟁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유를 일반 기업이나 비영리단체가 아니라 사회적경제 방식을 빌린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설립한 것도 공익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사회적협동조합은 영리 활동을 할 수 있는 비영리법인으로, 전체 사업의 40% 이상을 취약 계층 돌봄 등 공익 목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이유는 공익성과 사업성을 인정받아 올해 한국타이어나눔재단의 ‘드림위드 우리마을 레벨업’ 프로젝트 참여 기관으로 선정됐다. 드림위드는 지역사회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부산시와도 협업을 시작했다. 사업 대상자도 장애인을 넘어 노약자 등 전체 교통 약자로 확장했다. 교통 약자를 위한 ‘수요 응답형 배리어 프리 교통 버스’ 사업이 대표적이다. 교통 약자가 이용할 수 있는 노선버스로, 앱으로 버스를 호출하면 내 위치 근처까지 오는 식이다.

“이동 약자를 위한 ‘스타 모빌리티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게 목표입니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이동 약자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죠. 사람은 모두 이동 약자로 태어나 대부분 이동 약자로 죽어요. 아기로 태어나 노인으로 죽잖아요. 이동 약자들을 비장애인이 ‘도와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모두가 이동할 수 있는 사회가 결국 내가 살기에도 좋은 사회’라는 생각이 필요하단 걸 알리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전투적으로 사업을 확장해서 ‘스타 기업’이 될 겁니다.”

[부산=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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