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60년 복지 경험으로… 개도국에 ‘할 수 있다’는 희망 전한다

해외로 수출하는 한국의 복지노하우
교육 자료·연수 제공해 현지인 직원 역량 강화
종이 공예·양철·재봉 등 직업 재활 돕고 판매 연결
현지 복지개념 아직 부족… 장애인도 배울 수 있다는 인식 개선부터 시작해야

“장애인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교육과정이 아예 없었어요. 그날그날 생각나는 대로 글씨 쓰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종일 낮잠을 잘 때도 있더라고요. 장애인 특수교육과정이 생기기 전인 우리나라 1980년대 수준과 비슷했어요.

“지적장애 아동 특수교육 학교인 은평대영학교 김찬수 부장은 지난 2009년 베트남 ‘한베장애인재활센터’를 방문한 소감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베장애인재활센터는 2006년 베트남 하떠이성 지역에 지어진 장애인 종합복지관이다. 한국의 국제개발협력 NGO ‘지구촌나눔운동’이 베트남 정부와 힘을 합쳐 만들었다. 장애인 생활시설, 교육시설, 의료센터 등 국내 장애인 시설 외형을 그대로 본떠 만들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였다. 장애인 교육·치료나 직업 재활의 전문적인 손길이 부족했다. 컨설팅을 맡은 곳이 바로 엔젤스헤이븐이었다.

① 태화복지재단이 설립한 캄보디아 종합사회복지관과 현지 직원들. /태화복지재단 제공
① 태화복지재단이 설립한 캄보디아 종합사회복지관과 현지 직원들. /태화복지재단 제공
②·③ 전문가들은 “해외의 복지기관들을 방문하면, 우리의 70~80년대 모습과 비 슷하다”고 말한다. 사진은 엔젤스헤이븐의 초창기 모습. /엔젤스헤이븐 제공
②·③ 전문가들은 “해외의 복지기관들을 방문하면, 우리의 70~80년대 모습과 비 슷하다”고 말한다. 사진은 엔젤스헤이븐의 초창기 모습. /엔젤스헤이븐 제공
④ 캄보디아 종합사회복지관의 직원 회의 모습. /태화복지재단 제공
④ 캄보디아 종합사회복지관의 직원 회의 모습. /태화복지재단 제공
⑤ 지난 2011년 태국을 방문한 엔젤스헤이븐 관계자들이 재활치료의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엔젤스헤이븐 제공
⑤ 지난 2011년 태국을 방문한 엔젤스헤이븐 관계자들이 재활치료의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엔젤스헤이븐 제공

엔젤스헤이븐은 1980년 은평재활원(지적장애인 재활시설)을 시작으로, 은평대영학교(지적장애 아동 특수학교), 서울재활병원(장애인 치료시설) 등 장애인 시설 운영만 30년 넘는 역사를 지닌 복지법인이다. 김미라 엔젤스헤이븐 생활지도교사는 “예전에는 장애인을 같은 공간에 가둬놓다시피 했지만, 지금은 장애 유형에 맞게 ‘개별 맞춤형 서비스’를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재활 치료 전문가, 부모, 특수지도 교사 등이 장애 아이에 대한 개별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엔젤스헤이븐은 현지에 전문가 6명을 파견해 교육용 교재와 매뉴얼을 전수해줬다.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베트남의 연수생들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엔젤스헤이븐을 견학하기도 했다. 김현숙 해외사업팀장은 “연수생들이 처음 우리 시설을 돌아볼 때는 그저 놀라고 부러워할 뿐이지만, 이는 곧 그들의 비전과 희망으로 연결된다”며 “‘우리도 너희와 같았으니, 너희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지속적으로 심어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축적된 경험, 현지 발전 속도 높여

국제개발협력 사업에 뛰어든 국내 NPO들이 수십년간 축적된 사회복지 노하우를 해외에 ‘수출’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1921년 설립된 태화복지재단은 국내 최고(最古)의 사회복지단체로, 현재 지역 종합사회복지관 10곳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태화복지재단은 2009년 캄보디아 바탐방 지역에 해외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회복지센터를 지었다. 국내의 종합사회복지관 모델을 그대로 갖고 간 것이다.

“캄보디아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여성을 위한 문맹 퇴치 교육을 하고 있는데, 낮 시간이라 참석률이 저조했어요. 낮에는 일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현지인 직원들이 문맹 퇴치 교육을 수료한 주민을 강사로 섭외하고, 그들의 집을 교육 장소로 빌려 마을 안에 교육장을 만들었어요. 덕분에 더 많은 지역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됐죠.”(이정호 태화복지재단 해외사업과장)

가장 주안점을 뒀던 것은 ‘현지인 직원 역량 강화’였다. 현지의 미래 지도자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정호 과장은 “우리가 가진 가장 값진 경험은 외부인(미국 선교사)이 지은 시설을 우리 손으로 운영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를 도왔던 미국인들이 한국인 리더들을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넘겨주고 떠났는지를 직접 경험했고, 현재 태화복지재단의 해외 사업도 그런 경험에 기초해 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 관련 교육 자료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스터디 모임을 유도하고, 현지인의 국내 연수를 통해 그들의 역량을 강화했다. 이 과장은 “아무리 훌륭한 노하우를 전수해도 현지에서 일하는 실무자의 역량이 부족하면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없다”고 했다. 90년간 축적된 운영 노하우보다 사람이 앞서는 이유다.

◇현지에 맞게 적용하면 전수 효과 더 커져

30년 동안 장애인 복지 서비스에 주력해온 밀알복지재단은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장애인 70명이 참여하는 직업 재활 사업을 하고 있다. 주 3회 기술 교육을 통해 종이공예, 양철, 재봉, 신발 수선 등을 하도록 돕고, 이를 판매로 연결한다. 이유리 밀알복지재단 해외사업부 대리는 “국내에서는 천연비누, 제과제빵, 인쇄 등이 주요 제품군인데, 이를 말라위 현지에서 가능한 작업들로 대체했다”며 “특히 말라위 사람들은 옥수수 가루로 만드는 ‘시마’를 주식으로 먹기 때문에, 제분소는 생활과 밀접한 시설이자 좋은 자립처가 된다”고 밝혔다. 밀알복지재단은 말라위에 제분소를 지어 장애인 직업 재활에 활용하고, 그 운영 수익으로 다시 현지의 장애인들을 돕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 15일에 제분소 완공식도 마친 상태다.

박충관 밀알복지재단 사업운영부 부장은 “우리 기관 장애인 복지 서비스의 강점은 역사성과 연속성”이라고 했다. 1979년부터 제공해온 장애인 서비스 경험을 바탕으로, 보육부터 실버에 이르는 전 생애 주기를 연속적으로 보살피고 있다는 것이다.

◇경험 고집하기보다 현지 상황 먼저 고려해야

현장 전문가들은 경험을 고집하는 것보다 현지 상황에 대한 고려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정호 과장은 “사회복지 실천 기술이나 지식은 ‘세계 공용’이기 때문에 한국의 선(先)경험은 분명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서도 “한국적 사고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유세희 태화복지재단 캄보디아 지부장은 “지역 주민의 의견을 듣기 위해 조사를 나갔는데, ‘경제적으로 생활 개선이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더라”고 했다. 질문을 ‘작년에 비해 보유하고 있는 가축 수가 늘어났는지요’라고 바꿔야 소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 지부장은 “캄보디아는 초등학교에 예체능 교육이 없고,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우는 사회, 지리, 역사, 경제 등의 수업이 대학교 교양 과목에만 있다”면서 “한국적 배경에서는 당연한 것이 현지에서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찬수 부장은 “현지에 가보니, 기술 전달보다 인식 개선이 더 급해 보였다”고 했다. 장애인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너희의 교육 방식은 잘못된 것’이라는 식의 접근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유세희 지부장은 “캄보디아에는 ‘사회복지’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해 직원들에게 이러한 개념을 교육하여 업무에 적용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며 “태화복지재단이 설립 당시 소외 계층이었던 여성과 아동에 주목하다가 지역사회로 발을 넓힌 것처럼, 이곳 역시 사회와 경제가 발전하면서 사회복지에 대한 욕구 수준도 점차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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