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익 소송 위축시키는 ‘패소자부담주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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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 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지난 4월 25일 인천지방법원은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노숙 생활을 이어온 앙골라 출신 루렌도 가족이 난민 인정 심사를 요구한 행정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에서 승소한 피고는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이다. 루렌도 가족은 즉각 항소하면서 재판을 이어가고 있지만, 최종 패소할 경우 상대방 변호사 보수를 포함해 수백만원에 이르는 소송 비용을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 민사소송법 제98조에 따르면 소송 비용은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패소자부담주의’다. 시민단체에서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원고가 공익 소송을 주저하게 되는 또 하나의 사례가 생겼다고 입을 모은다.

법조계에서도 소송의 성격과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패소자부담원칙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해 말 ‘공익 소송 소송 비용 부담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당시 김현 협회장은 “패소자부담주의는 무분별한 소송 제기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지만, 공익 소송에서는 패소 시 소송 비용을 떠안는 문제로 항소를 포기하는 등 소송 시도 자체가 제한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비용 문제로 재판을 포기한 대표적인 사례는 ‘염전 노예 사건’ 피해자들이다. 지난 2015년 신안군 염전에서 임금 체납과 감금으로 혹사당한 지체장애인 8명은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4월까지 이어진 3년 5개월의 싸움 끝에 대법원은 원고 승소를 확정했다. 국가로부터 위자료를 받게 된 피해자는 4명에 불과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원고 1명에 대해서만 일부 승소 판결을 냈고, 패소한 7명 가운데 4명은 항소를 포기했다. 상급심으로 갈수록 패소했을 때 떠안아야 할 소송 비용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신안군은 패소한 원고에게 변호사 수임료를 포함한 697만2000원의 소송 비용을 청구했다. 최초록 두루 변호사는 “전체 소송 비용에서 아주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지대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원고가 많다”며 “이들은 상대방 변호사 비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소송 자체를 주저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시민단체는 패소를 대비해 예비비를 준비하기도 한다.

공익 소송의 경우 원고와 피고 간 소송 비용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강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국장은 “변호사 수임료가 소송 비용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공익 소송에서 원고는 대부분 무료 변론이고 피고 측은 비용이 발생한다. 원고가 승소하더라도 소송 성격상 피고 측에 비용을 청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 제도가 없진 않다. 법원은 ‘소송구조제도’를 통해 경제적 약자에게 소송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다만 소송 비용을 감당할 자금 능력이 부족하고 패소할 것이 명백하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

해외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공익 소송을 독려하기 위한 제도를 택하고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변호사 보수를 원고와 피고가 각자 부담하고 있지만, 공익 소송에서는 ‘편면적 패소자부담주의’를 택하고 있다. 편면적 패소자부담주의는 원고가 승소할 경우 패소자에게 변호사 보수를 청구할 수 있지만, 원고가 패소하더라도 상대방 변호사 비용은 부담하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 악의적인 제소나 소송을 남용한 경우 패소자에게 변호사 수임료를 부담시킬 수 있도록 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캐나다와 영국의 경우 공익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가 패소했을 때 소송 비용을 면제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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