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일흔 살 제주 흙집의 대변신 “난방도 안 돼 힘들었는데… 잘도 고맙수다”

광동제약 ‘희망&나눔 집수리 봉사활동’

지난 19일 광동제약 직원들이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의 전향 할머니 집을 수리하고 있다. 전 할머니 집은 인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제주 전통 가옥으로, 심하게 낡은 상태였다. ⓒ제주=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9일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의 작은 바닷가 마을. 나지막한 현무암 돌담이 흙길을 따라 이어져 있고, 돌담 안쪽으로는 귤나무 몇 그루와 경사가 완만한 지붕을 얹은 단층집들이 서 있었다. 시멘트로 마감한 다른 집들과 달리 제주 전통 방식대로 현무암을 얼기설기 쌓아올려 벽을 세운 낡은 집 한 채가 눈에 띄었다. 전향(92) 할머니가 며느리, 초등학생 손녀 셋과 함께 사는 집이다.

며느리는 부두에 일하러 가고 손녀들은 학교에 가고 없는 평일 오전. 할머니 집 앞마당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할머니의 낡은 집을 고쳐주러 온 광동제약 직원과 집수리 봉사 단체 ‘희망의러브하우스’ 소속 봉사자 40여 명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6~7명씩 팀을 짜서 도배, 목공, 전기 설비, 타일 시공, 도색 등으로 일을 나눈 뒤 망치와 톱, 전동 드릴을 들고 집 안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무너질 듯 위태로운 70년 된 흙집… 안전하고 따뜻한 집으로

흙과 나무로 엉성하게 지은 집은 가족이 살기에 불편함이 컸다. 바닥을 뚫고 지네가 올라와 무는 일이 허다했고, 장마가 들면 곳곳으로 빗물이 스몄다. 복지 단체나 기업에서 집을 고쳐주겠다고 몇 번 찾아오기도 했지만, 집 상태를 살펴보고는 난색을 보이며 돌아갔다. 집안의 유일한 남자였던 외아들마저 4년 전 집을 나가 연락이 끊기면서 집 관리는 더 어려워졌다. 전 할머니는 “나는 밭일로 바쁘고, 며느리는 베트남에서 와서 집에 문제가 생겨도 어디에 연락해야 할지 잘 모르니 그냥 이대로 버텨왔다”고 했다.

“이 집에서 할머니께서 70년 넘게 사셨다니 믿기지 않네요. 봉사 오기 전에 집이 많이 낡았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제주도 집수리 봉사활동에 처음 참여한다는 김영준(32) 광동제약 생수영업팀 사원이 말했다. 전 할머니는 “4·3사건 때 살던 집이 다 타버려서 그 자리에 새집을 다시 올린 것인데, 서둘러 지으면서 구들을 못 넣었다”며 “전기장판이 집 안의 유일한 난방 장치”라고 했다.

공사를 총괄 지휘한 이정호 희망의러브하우스 국장은 “집이 워낙 낡은 데다 벽이 흙으로 되어 있어서 자꾸 무너져내려 공사가 쉽지 않다”며 “단열재와 벽지 시공 전에 나무 널빤지와 각목 등으로 목공 작업을 꼼꼼히 하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집 안에 샤워 시설을 갖춘 화장실을 만드는 것도 도전 과제였다. 여태까지 전 할머니 가족은 집 밖에 있는 변소에서 볼일을 보고 마당의 수도 펌프에서 물을 길어다 집 뒤편에서 몸을 씻었다. 이 국장은 “밖으로 뚫려 있는 창고 공간을 막고 타일을 깐 뒤 온수기, 세면대, 변기, 수도 시설을 설치해 화장실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광동제약·제주개발공사, 제주 지역 취약계층 집수리 지원

광동제약 직원들이 집수리 봉사활동을 위해 제주도를 찾은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광동제약은 2017년부터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희망의러브하우스와 함께 제주도 내 주거 빈곤층의 집을 무료로 고쳐주는 ‘희망&나눔 집수리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 삼다수, 감귤주스 등의 판매 수익을 제주 시민에게 환원하려는 취지에서다. 여태까지 광동제약 직원 80여 명이 제주도를 찾아 저소득·고령 장애인 가정이 사는 낡은 집 세 곳을 전면 수리했다. 고동현(33) 생수마케팅팀 계장은 “매번 집 틀만 남기고 거의 집을 새로 짓는 수준의 대규모 수리를 하고 있다”며 “제주도 자원과 관련된 사업을 하고 있는 만큼, 어려운 형편의 제주도민을 돕는다는 게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실제 제주 지역의 주택 노후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제주 지역의 전체 주택 9만8715동 가운데 52.7%인 5만2036동은 준공된 지 30년이 넘었고, 이 중 3만6981동은 40년 전인 1970년대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이런 노후 주택으로 주거 빈곤층이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홍나나 제주특별자치도사회복지협의회 기획팀장은 “제주도에 이주민이 급속도로 늘어나 집값이 폭등하면서 고령자, 장애인 등 취약 계층 토착민들은 집이 아무리 낡아도 이사 갈 형편이 안 돼 열악한 환경을 견디며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광동제약과 제주개발공사는 제주지역 취약 계층의 주거 복지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임직원의 집수리 봉사활동을 비롯해 임직원 기부금을 조성해 지역 내 노후 주택에 사는 취약 계층의 집수리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이날 시작한 집수리는 다음 날 오후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곰팡이와 비 샌 자국으로 얼룩덜룩했던 벽지와 장판을 새것으로 교체하자 집안 분위기가 한결 화사해졌다. 창호지를 덧댄 창문은 현대식 창호로 교체됐고, 삐걱거리던 나무 문이 있던 자리엔 튼튼한 철문이 들어섰다.

외부로 뚫려 있어 창고처럼 쓰던 방이 집수리 공사 후 샤워 시설을 갖춘 화장실로 변신한 모습. ⓒ광동제약

화구 두 개짜리 가스레인지만 덩그러니 놓여 있던 부엌도 조리대와 개수대가 달린 싱크대가 추가되면서 훨씬 쾌적해졌다. 110볼트 전용뿐이었던 벽면 콘센트도 220볼트 전용으로 갈고, 조명도 밝고 오래가는 LED로 새로 설치했다. 몰라보게 변한 집 안을 둘러보며 전 할머니는 “죽기 전에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감격했다. “잘도 고맙수다. 폭삭 속았수다.(정말 고맙습니다. 수고 많았어요).” 전 할머니가 소녀처럼 활짝 웃었다.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hee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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