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헌재 “낙태죄 처벌은 ‘헌법불합치’…2020년까지 법 바꿔야”

낙태죄 처벌과 관련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7년만에 뒤집혔다.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자기낙태죄·의사낙태죄 처벌 조항은 ‘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이 나왔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낙태 여성과 의료진을 처벌하는 ‘낙태죄’에 대해 ‘사실상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11일 헌재는 지난 2017년 산부인과 의사 A씨가 형법 제269 1(자기낙태죄)과 형법 제270 1(의사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2 의견으로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했다. 재판관 4명은 헌법불합치, 3명은 단순 위헌 의견을 냈고, 2명은 합헌 의견을 냈다. 헌법불합치는 심판 법률이 위헌이라고 하더라도, 법률 공백에 따른 혼란을 우려해 법 개정이 이뤄질 때까지 한시적으로 효력을 인정하는 결정을 뜻한다.

형법 제269조 1항은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제270조 1항은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재는 이번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리면서, 오는 2020 1231일까지 국회가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개선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해당 법률 조항은 2021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잃게 된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서기석·유남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은 “자기결정권에는 여성이 존엄한 인격권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자신의 생활영역을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고, 여기에는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임신상태로 유지해 출산할 것인지에 여부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단순 위헌 의견을 낸 김기영·이석태·이은애 재판관은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기소되는 사례가 매우 드물었고 그 경우도 악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상당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판대상조항들의 예방 효과가 제한적이고 형벌조항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서 이들 조항이 폐기된다고 하더라도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임신 제1삼분기(임신 14주까지)에 이뤄진 낙태에 대해 처벌하는 부분은 위헌성이 명백하고 처벌 여부에 대해 입법자의 입법재량이 인정될 여지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종석·조용호 재판관은 합헌 의견을 내면서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고유한 가치를 가지며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라며 “자기낙태죄 조항 및 의사낙태죄 조항은 모두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헌재는 지난 2012년 자기낙태죄 조항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고 의사낙태죄 조항이 책임과 형벌의 비례원칙이나 평등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7년 만에 헌재가 결정을 뒤집으면서 1953년 제정된 낙태죄 처벌 조항은 66년 만에 전면적인 손질을 앞두게 됐다.

낙태죄 처벌 조항과 관련한 논쟁은 그간 끊이지 않았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가운데 무엇을 우선해야 하느냐를 두고 대립이 첨예했다. 헌재 결정이 나온 11일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헌재 결정에 관해 여성계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날 한국여성민우회는 입장문을 내고 “형법 제정 66년 만에 ‘낙태’가 죄가 아니라 ‘낙태죄’가 명백한 인권침해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역사적인 선고는 수많은 이의 용기와 싸움, 연대를 통해 함께 이뤄낸 귀중한 성취”라고 전했다.

반면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같은 날 김희중 대주교 명의의 입장문에서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고착시키고 남성에게서 부당하게 면제하는 것”이라며 “낙태는 태중의 무고한 생명을 직접 죽이는 죄이며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jangpr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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