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사회적 기업 ‘등록제’ 전환, 현장에선…

고용노동부는 사회적기업 등록제 전환을 골자로 하는 ‘사회적기업육성법’ 개정안을 8월께 국회에 상정한다. 제도 시행 12년 만에 ‘사회적기업 인증제’가 ‘등록제’로 바뀌게 되는 셈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현행 사회적기업 인증제 요건 7개 중에서 2개를 폐지해 기준을 완화하는 것. 둘째, 등록에 관한 권한을 지자체로 이관하는 것. 셋째, 다섯 가지 유형으로 규정된 기존 사회적 기업의 정의 규정에 ‘창의·혁신적 방식의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문구를 추가해 사회적 기업의 범위를 넓혔다는 것이다.

사회적경제 현장에서는 등록제 도입 자체는 환영한다는 분위기다. 까다로운 인증 요건, 복잡한 인증 절차 등이 간소화되면 사회적경제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반면 등록제로 전환될 경우 ‘무늬만 사회적 기업’이 늘어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Getty Images Bank

◇등록제 도입,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포용해 사회적경제 활성화

사회적기업 인증제는 지난 2007년 도입됐다.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은 기업에는 정책자금지원, 세제, 공공기관 우선구매 및 조달등록 등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인증제가 사회적경제 활성화와 육성보다는 통제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까다로운 조건과 등록 절차가 문제였다.

사회적기업진흥원에 따르면 최근에는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는 기업이 몇 년 전에 비해 줄어들고 있다. 초기 인증제도를 시행한 2007년과 2010년 인증을 받은 기업 수가 각각 55개에서 216개로 4배 증가한 반면, 2013년과 2018년에는 각각 269개에서 246개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환경 전문 소셜벤처 트리플래닛의 김형수 대표는 “사업을 처음 해보는 젊은 소셜 벤처 운영자들에게 인증 관련 행정 업무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면서 “트리플래닛도 설립 당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으려고 했지만 갖춰야 할 서류가 너무 많고 절차가 복잡해 결국 포기했는데 등록제로 바뀌어 무척 반갑다”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의 목적이 공정무역, 반려동물, 환경운동, 공유 서비스 등 다양해지고 있는데 정부가 인증하는 사회적 기업은 ‘취약 계층 고용’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사회적기업 인증의 사회 목적 실현 유형은 2017년 기준 일자리 제공형이 69.4%를 차지해 한쪽에 치우쳐 있었다. 사회 서비스 제공, 지역사회 공헌형은 각각 6.3%, 4%였고 혼합형은 10%, 기타형은 10.3%였다.

◇행정 인력 부족, 사회적 기업 간 갈등 해결도 과제

문재인 대통령은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강조한 뒤, 성수동 헤이그라운드를 방문했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2017년 10월 18일, 헤이그라운드에서 소셜벤처 마리몬드의 윤홍조 대표로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을 모티브로 제작한 휴대폰 케이스 등의 소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조선일보 DB

반면 사회적경제 전문가들은 “사회적 기업의 양적 성장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질적 향상에 도움이 될지 의문스럽다”고 우려했다. 등록제로 인해 ‘가짜 사회적 기업’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사회적 기업으로의 진입이 쉬워진 만큼 등록만 해놓고 운영을 하지 않거나, 사회적 가치는 거의 창출하지 않고 이름만 사회적 기업을 거는 불량 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고용노동부는 이 같은 부작용에 대비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 측정 지표(SVI) 심사를 도입하고 경영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게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불량 사회적 기업을 구분하고, 단계적 도입을 통해 혼란을 최소화한다는 입장이다.

불량 사회적 기업의 출현보다 사회적경제 섹터 내의 혼란이 더 문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권성문 부천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국장은 “기존 인증 사회적 기업들이 등록 사회적 기업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어 주도권 싸움 일어날 수 있다”면서 “고교 비평준화 시절 입학한 선배가 평준화 시절 입학한 후배에게 갖는 편 가르기와 비슷한데, 실제로 기존 인증 기업들은 등록제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 편”이라고 이야기했다.

사회적경제 조직을 관리하는 행정 조직의 혼란도 문제다. 등록제가 도입되면 많은 이가 사회적 기업 등록을 받으려 할 텐데 이를 감당할 인력이 행정 당국과 중간 지원 조직에 부족하다는 것. 하재찬 사람과경제 상임이사는 “사회적 기업 등록을 지자체로 이양한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지자체에는 사회적경제 담당 부서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담당자가 자주 바뀌어 전문성이 부족하다”면서 “행정에 대혼란이 올 여지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박병혁 함께일하는재단 사회적경제팀장은 “중간 지원 조직의 경우 인력이 한정된 상태에서 신규 사회적 기업 지원뿐 아니라 기존 사회적 기업의 판로 개척, 세무 서비스 등의 여러 지원 업무를 맡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신규 사회적 기업 수가 대폭 증가하면 기존 업무에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고 목소리를 냈다.

사회적 공감대와 제도 간의 괴리를 메우는 것도 과제다. 사회적경제 조직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가 부족한 상황에서 사회적 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정책은 그동안 ‘그들만의 리그’로 인식됐던 사회적경제 분야의 고립 문제를 현상 유지하는 수준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사회적협동조합인 SE바람의 강대성 이사장은 “현장 목소리를 듣고 사회적경제에 대한 시민의 인식을 높이는 일, 사회적 가치에 대한 다양한 지표 개발 등이 단계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용석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사회적경제 조직과 정부, 시민단체, 기업 등 다양한 섹터들이 연대할 수 있도록 서로 정보와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나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도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영 더나은미래 기자 bad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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