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실명예방캠페인 ‘오픈 유어 아이즈’ (Open Your Eyes)] ④앞이 환해졌어요… 저도 의사가 될래요

영양실조·모래 등으로 해마다 15만명 실명
시골 가지뿔 지역에 안과 클리닉 세우고 MLOP 훈련센터 개원 수만명 실명 예방

방글라데시 다카공항의 출입구를 벗어나자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몇 걸음 떼지 않았는데, 얼굴 위로 굵은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수도 다카에서 북서쪽으로 30㎞ 떨어진 가지뿔로 가는 길. 비좁은 2차선 도로 위로 몸체가 울퉁불퉁하게 찌그러진 차들이 뒤엉켜 있었다. 버스 앞문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부서져 덜렁거렸고, 깨진 창문에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위태롭게 붙어있었다. 아이를 업은 여인들,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들이 지나가는 차량에 달라붙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구걸하는 거예요.” 임영심 하트하트재단 프로젝트 매니저가 안타까운 얼굴로 창밖을 바라봤다.

“방글라데시는 상위 5%가 부를 독차지할 정도로 빈부 격차가 심한 나라예요. 빈곤층 사람들은 동전 한 닢 얻기 위해 도로로 나와 구걸합니다. 위험천만한 일이죠. 방글라데시에는 교통체계가 없어서 사고가 비일비재합니다. 자동차의 찌그러진 상처만큼, 깨진 창문의 수만큼 많은 이가 목숨을 잃고 크게 다쳤습니다.”

1 MLOP 훈련생의 도움으로 백내장 수술을 받고 빛을 되찾은 사자드. 2 지난해 하트하트재단은 방글라데시 가지뿔 지역에 있는 꼬람똘라 병원에서 준전문안과인력(MLOP) 양성을 시작했다. 지난 7월 31일 졸업식을 맞은 MLOP 1기 훈련생들 모습 3 MLOP 1기 졸업생들이 수술실에서 실습을 하고 있는 모습.
1 MLOP 훈련생의 도움으로 백내장 수술을 받고 빛을 되찾은 사자드. 2 지난해 하트하트재단은 방글라데시 가지뿔 지역에 있는 꼬람똘라 병원에서 준전문안과인력(MLOP) 양성을 시작했다. 지난 7월 31일 졸업식을 맞은 MLOP 1기 훈련생들 모습 3 MLOP 1기 졸업생들이 수술실에서 실습을 하고 있는 모습.

◇안질환 치료할 전문인력 훈련센터 개원

시내를 벗어나 두 시간을 더 달렸다. 빈민들이 모여 사는 가지뿔 지역에 들어서자 집집마다 수북이 쌓아둔 쓰레기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임영심 매니저는 “쓰레기를 모아뒀다가 고무·철 등을 골라내 팔면 가족의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이마저도 구하기 어려운 가정에선 아이들을 길거리에 버리곤 한다”고 말했다. 돌볼 사람 없이 버려진 아이들은 더 쉽게 질병에 노출된다. 특히 방글라데시는 해마다 15만명이 실명하는 나라다(한국 실명률 0.02%보다 25배나 높은 수치다). 뜨거운 햇볕과 모래 먼지 때문에 약시(교정시력이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되는 아이들도 많지만, 대부분의 아동이 눈의 가벼운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서 시력을 잃고 있다. 게다가 실명한 어린이의 60%가 가난으로 인한 영양실조와 사고로 인해 1년 내 사망에 이르고 있다. 가난은 아이들로부터 부모를 빼앗고, 빛마저 빼앗아갔다.

하트하트재단이 가지뿔 지역에서 실명예방사업을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인구는 1억5000만명. 그중 안과 전문의는 7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의사 한 명당 돌봐야 할 안질환 환자 수가 무려 21만명에 이른다. 게다가 안과전문의 대부분이 다카 시내에 몰려 있기 때문에 가지뿔과 같은 시골 지역에선 눈이 아파도 치료를 받기 어렵다. 하트하트재단은 지난 2009년 가지뿔 지역에 위치한 꼬람똘라병원과 협력해 안과클리닉을 설립했다. 지난해 8월 MLOP(준전문안과인력. Mid Level Ophthalmic Personnel) 훈련센터를 개원해 준전문안과인력 양성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백내장 수술 받은 시몬, “앞이 환해요”

꼬람똘라 병원이 양성한 MLOP를 통해 가지뿔 지역의 많은 아이가 빛을 되찾았다. 두 살 무렵 가난 때문에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시몬(7)은 한쪽 눈에 심각한 백내장을 앓고 있었다. 왼쪽 눈에 돌덩이가 날아와 상처가 났는데, 치료비가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쪽 눈이 뿌옇게 보이고, 글씨를 읽지 못하게 되자 시몬은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자주 넘어져 온몸에 상처가 났고,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았다.

보육원인 바둔보이즈 호스텔에서 지내던 시몬을 발견한 건 MLOP 1기 아시스(Ashis Palma)씨였다. 지난해 바둔보이즈 호스텔을 지나던 아시스씨는 한쪽 눈의 초점이 흐린 한 아이를 발견했다. 마침 MLOP 훈련센터에서 백내장 수업을 듣고 있던 터라 시몬의 증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 이름과 증상을 물어본 아시스씨는 시몬이 꼬람똘라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했다. 시몬 외에도 아시스씨가 조기에 안질환을 발견해 실명을 예방한 환자만 수백명에 달한다. 가난한 이들에겐 치료비를 대신 지불하기도 했다. 그는 “시몬처럼 오래전에 눈을 다쳤음에도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발견이 늦어진 아이가 많다”면서 “눈이 아픈 환자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이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게 MLOP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미소 지었다.

지난 7월 31일 시몬은 꼬람똘라병원을 방문한 신기철 건국대학교 안과 교수로부터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다음 날 수술 경과를 보기 위해 바둔보이즈 호스텔을 찾았다. 파란 철문을 열고 들어서니 8평 남짓한 작은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조용했다. 3평 정도 되는 각 방에는 2층 침대 3개가 놓여 있었고, 아이들이 침대 위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에 깼는지 시몬이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기자를 알아본 시몬이 얼굴에 웃음을 띤 채 입을 열었다. “앞이 환해요. 두 눈 다 잘 보여요. 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저도 의사가 될래요.”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 가난 속에서 꿈을 찾는 아이들의 첫걸음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가지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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