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방법 ‘전자 민주주의’

[인터뷰] 글로벌 전자 청원 기업 ‘Change.org’의 이지민 팀장

멀게만 느껴졌던 ‘전자 민주주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청원이 쏟아진다. 이중 청와대가 직접 답변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20만명의 서명을 받은 청원은 모두 51개. 특히 청소년 범죄와 관련하여 소년법 개정을 요구한 청원은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조국 수석과 김상곤 前 사회부총리가 답변하면서 형사 미성년자를 14세에서 13세로 낮추겠다는 발의로 이어지게 했다.

이지민 사용자 안전팀 팀장 ©Change.org

2007년 미국에서 시작한 글로벌 전자 청원 사회적기업 ‘Change.org’도 전자 민주주의 시대를 이끌고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전자 청원을 받고 청원 대상자(정책담당자)에게 전달한다. 현재 196개국의 시민 약 2억4000만명이 Change.org를 이용하고 있다. Change.org의 홈페이지에 지난 한 달 동안 6만5000여 개의 청원서가 게시됐고, 매일 10~12개의 청원이 성공하고 있다. Change.org의 목표는 ‘모든 사람이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 지난 9월 18일 인터넷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난 Change.org의 사용자 안전 및 성공팀(User Safety Team & Success) 이지민(32) 안전 팀장에게 전자 청원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 변화는 자신의 문제를 공유하는 것에서 시작

─Change.org에 대해 소개해 달라.

“Change.org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전자청원 플랫폼으로,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누구나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곳이다. 개인의 문제를 공유해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제공한다. 누구나 우리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다른 사람이 올린 청원을 보고 지지하거나 청원을 올릴 수 있다. 청원은 청원자가 원하는 변화와 누구에게 전달되기를 원하는지 포함한다. Change.org는 청원 대상자에게 청원들을 전달한다. 그 과정에서 청원이 더 효과적으로 변화를 이뤄내도록 청원자에게 조언을 하거나 정책 담당자들과의 네트워크 형성에 힘쓰고 있다. 청원자가 성공을 선언하고 실제로 변화를 이루어낸 경우 홈페이지 메인에 게시하고 청원이 이루어내는 변화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하고 있다.”

─시민은 청원 시스템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나.

“Change.org 홈페이지(www.change.org)에 들어 와서 메인 페이지에 있는 ‘Start a petition(청원 시작)’ 버튼을 누르면 된다. 청원 대상자를 결정한 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설명하고 사진이나 영상을 첨부하면 끝이다. 청원을 지지하려면, 청원을 클릭하고 페이지 오른쪽에 ‘sign this petition(청원 서명)’ 버튼을 누르면 된다. 청원자가 청원을 ‘종료(closed)’하면 Change.org는 이메일이나 서류로 대상자에게 전달하고 청원의 성공 여부는 청원자가 결정한다. 성공한 청원은 첫 화면에 게시되고 사용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 청원 플랫폼 Change.org의 홈페이지(www.change.org) ©Change.org

“누구나 변화를 만들 수 있음을 믿게 하기 위해 성공 사례들을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청원이 지속적으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계속 업데이트 한다. 청원자들은 평범한 시민이다. 평소에 불편한 문제가 있어도 전자 청원을 하는 데 어려워해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청원 작성 버튼만 누르면 단계별로 작성 팁이 있고,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정책 결정자들과의 네트워크 형성하고 전 세계 10개 지역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그 나라 문제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누구나 체인지메이커가 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플랫폼’ 만들기 위해 주력

─Change.org를 통해 실제로 변화를 이끌어낸 청원들이 있는가.

“캐나다에 사는 마이아(Mya)와 이브(Eve)라는 11살 아이들이 스타벅스를 상대로 Change.org에 청원을 올렸다. 이들은 세 가지를 스타벅스에 요구했다. 2008년 스타벅스가 재활용품 컵을 개발한다는 약속을 지킬 것. 머그컵 사용률을 25%까지 올릴 것. 나무를 재료로 하지 않는 재활용 컵 사용을 100%까지 늘릴 것이었다. 이 청원에 34만 명이 서명했고, 지난 3월 21일 아이들이 미국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 본사로 찾아가, 스타벅스 대표에게 청원서를 전달했다. 이에 스타벅스는 3년 안에 1000만 달러를 투자해 재활용 가능하고, 비료로 사용 가능한 컵을 개발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지난 4월 18일 차세대 컵(NextGen Cup) 개발에 착수했다. 로우스(Lowe’s)라는 미국의 건축자재 및 공구 업체에서 페인트 제거제를 상품 진열대에서 내린 청원도 있다. 해당 페인트 제거제에는 엔-메틸프롤리톤(N-Methylpyrrolidone)이라는 인체에 치명적인 물질이 함유돼 있었다. 지난해 10월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사는 남성드류 윈(Drew Wynne)이 로우스에서 구입한 페인트 제거제를 사용하던 중 사망했다. 이에 로우스에 해당 페인트 제거제를 팔지 말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6만5848명의 지지를 얻어 로우스의 대표에게 전달됐다. 로우스는 페인트 제거제를 진열대에서 치웠고 월마트, 홈디포와 같은 다른 매장들을 대상으로 한 청원도 올라왔다. 두 가지 사례 외에도 성공 사례가 많은데, 청원이 이 같은 변화를 이뤄내는 것을 볼 때마다 놀랍다.”

인체에 치명적인 페인트 제거제 판매를 중단하라는 청원 ©Change.org

─청원이 변화로 이어지도록 돕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직원 수에 비해 업무량이 많은 편이다. 한 달 기준 6만5000개의 청원이 올라오는 만큼 업무량이 상당한데Change.org 전체 직원이 110명뿐이다. 하지만 Change.org는 직원들이 통제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청원을 올리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지지 버튼을 누른다. 시민이 직접 운동을 주도하는 셈이다. 청원이 전달되지 않아도 기자들이나 정책 담당자들도 우리 홈페이지를 주시한다. 시민의 관심과 자율성 덕분에 Change.org가 잘 운 영되고 있다.”

─사회적기업이 고질적으로 재정 문제를 겪고 있다. Change.org는 어떤가.

“Change.org는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졌다. 기금을 조성하는 몇 가지 방법을 가졌다. 우선 매달 3달러, 5달러, 10달러 중 선택해 회비를 내서 멤버십에 가입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런 회원이 무려 8만 명이다. 또 자신의 청원을 잘 보이는 곳에 홍보하는 ‘Promoted petition(프리미엄 청원 서비스)’와 같은 유료 서비스를 판매하기도 한다. 빌 게이츠, 리처드 브랜슨(버진 그룹), 아리아나 허핑턴(허핑턴 포스트)와 같은 큰 후원자들도 재정적으로 도움을 준다.”

◇“촛불혁명 일으킨 한국, 전자 민주주의의 성공적 예”

─최근 한국 정치는 시민의 힘으로 정권이 바뀌는 등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 이런 변화에 전자 민주주의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도 있다. Change.org이 추구하는 바가 한국의 민주주의, 전자 민주주의와 맞닿아 있다고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은 인터넷 보급률이 90.3%이다. 온라인상에서 벌어진 일이 현실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미국에서 시작된 Me Too 운동이 한국에 상륙하여 중요한 사회 운동이 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사회운동이 실제 변화를 가져오는 일은 한국에서 흔한 일이 됐다. 청와대의 국민 청원도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특히 2016년에 있었던 촛불혁명이 한국 전자 민주주의의 수준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운동이 대통령 탄핵까지 이어진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이고 한국이 높은 수준의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이 외에도 LGBT, 이주자, 페미니즘 등 다양한 이슈들이 온라인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전자 민주주의가 한국 국내에서만 머문다는 것이 아쉽다. 이런 흐름이 많은 나라에 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Change.org 샌프란시스코 본사 직원들. 대표 Ben Rattray(맨 앞 줄 왼쪽 의자)와 이지민 팀장(맨 앞 줄 가운데)도 보인다. ©Change.org

─Change.org는 18개 언어 중 한국어 서비스는 없다. 한국에 진출할 생각이 있나.

“Change.org에서 Korean을 검색하면 1697건의 청원이 나온다. 대부분이 개와 고양이의 도살에 관한 것이다.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난 나라인데 특정 이슈만 소개되는 것이 아쉽다. 그래서 지난 4월 한국에 지역 사무소를 내는 건이 논의됐고 회사 내 반응도 좋았지만, 지역 사무소에서 일할 인원을 구하지 못해 좌절됐다. 한국은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주요 국가다. 한국 사무소가 생겨 Change.org이 촛불 민주주의로 공론화된 사회참여의 물결을 함께한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송준호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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