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Cover Story] 그 많은 청년 일자리 정책에 ‘비영리’는 없었다

쏟아지는 일자리 정책, 외면받는 비영리단체
내년도 일자리 예산 23조원, 중소·사회적기업에 혜택 쏠려
비영리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소속 청년들 ‘상대적 박탈감’

현 정부의 핵심 과제 중 하나는 ‘일자리 창출’이다.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일자리안정자금 등 이번 정부 들어서 청년 일자리를 위한 다양한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2019년도 예산안’ 역시 일자리에 방점이 찍힌 모습이다. 청와대 일자리위원회에 따르면, 내년도 일자리 예산은 23조5000억원으로 올해(19조2000억원)보다 22%나 늘었다. 지원 대상도 중소·중견기업, 소상공인 등으로 범위를 넓혔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을 이리저리 살펴봐도 ‘비영리단체’를 위한 지원이나 제도는 찾아볼 수 없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서 사실상 비영리는 소외돼 있다.

 

부처별 40여 개 일자리 정책 추진… 비영리단체 위한 지원은 전무

정부는 현재 부처별로 약 40개의 청년 일자리 정책을 추진 중이다. 고용노동부의 대표적인 청년 일자리 정책은 ‘청년내일채움공제’다. 중소·중견 기업에 취업한 청년(만15~34세)이 3년간 총 600만원을 적립하면 기업(600만원)과 정부(1800만원)가 함께 돈을 적립해 3000만원의 자산을 형성하도록 돕는 제도다. 올해 이 제도에 편성된 예산은 4258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비영리단체에 취업한 청년은 청년내일채움공제의 대상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용부가 제시한 시행 지침에는 ‘비영리 목적의 사업자, 법인, 단체, 조합, 협회’를 가입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미 취업한 재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도 마찬가지다. 고용부 관계자는 “해당 제도들은 중소기업 인력 이탈을 막고 장기 재직을 장려하기 위한 ‘성과보상기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맞춰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의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대상에서도 비영리는 제외된다. ‘국가·지자체 등으로부터 인건비·운영비 등을 지원받아 운영하는 기관은 제외한다’는 단서 조항이 달렸는데, 비영리단체는 대부분 국가나 지자체 등의 지원을 조금씩 받고 있기 때문이다. 100% 모금과 후원으로 운영되는 기관에 한해 지원이 된다는 뜻인데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소공인에게 최대 5억원까지 융자 지원해주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소공인 특화자금’도 마찬가지다. ‘소공인’은 상시근로자 10인 미만의 제조업 사업장을 뜻하는데, 원래 수익 사업을 하는 비영리법인까지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 제도의 지원 대상 조항을 보면 ‘비영리 개인 사업자, 법인, 조합이 아닐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정부 관계자는 “청년 고용 부문에서 비영리에 대한 지원책을 따로 마련하고 있지는 않다”면서 “정부 차원은 아니지만 청년희망재단 같은 민간에서 비영리단체에 인건비 지원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비영리가 메우고 있는데, 비영리를 위한 지원도 민간에서 해결해야 하는 구조다.

박태규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비영리는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는 서비스 사업을 주로 벌이기 때문에 충분히 좋은 일자리로 성장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서 “정부가 비영리 생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세심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 “사명감 하나로 버팁니다” 비영리 청년들의 현실

비영리단체 소속 청년들은 일자리 정책이 쏟아질 때마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서울 소재의 한 인권 단체에서 일하는 A씨는 “정부의 청년 일자리 정책이 나올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원 조건을 들여다보지만 항상 ‘역시나’로 끝난다”면서 “최근에는 중소기업이나 사회적기업 쪽으로 혜택이 심하게 쏠린 느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예산 497억원을 들여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창업을 준비하는 창업 준비팀과 창업 1년 미만의 초기 창업팀의 정착을 돕는 사업이다. 또 ‘사회적기업지원제도’를 통해서 사회적기업과 예비 사회적기업에 최대 5년간 최저임금 수준의 인건비와 전문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월 200만~250만원의 자금을 지원한다. 사업 개발비로 최대 1억원, 사회보험료와 법인세·취득세·재산세 등 각종 세제 혜택도 주어진다. 물론 비영리는 해당 사항이 없다.

비영리단체 활동을 경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B씨는 “비영리에서 공직으로 가는 방법 중 하나가 ‘민간 경력 채용’ 제도인데, 100인 이상의 비영리단체에서 하루 8시간 이상 일해야 가능할 정도로 조건이 까다롭다”면서 “소규모 비영리단체의 경력을 거의 인정받지 못하는 탓에 1~2년 차 신입 활동가들은 일찌감치 진로를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주 52시간 근무’도 이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주 52시간 근무 제도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유예 기간을 두고 있다. 대부분 소규모로 조직된 비영리단체가 해당하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1년 7월 1일부터 적용된다. 정부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무와 최저임금 인상 등에 대비할 수 있는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비영리단체에는 규제만 있을 뿐 지원은 없다.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비영리 청년들은 사명감 하나로 궂은일을 감내하고 있다. 환경 단체에서 2년째 일하는 비영리 상근 활동가 C씨는 “야근은 물론, 휴일에도 일하는 경우가 잦다”면서 “돈보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에서 일하고 싶어 비영리로 왔기 때문에 아직은 견딜 만하다”고 말했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는 “비영리는 사회적 의제를 기획하고 확산시키는 지식 산업”이라면서 “사람이 재산인 비영리를 좋은 일자리로 키워야 좋은 인재가 유입되고 비영리단체의 활동도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영리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보다 낫다?

전국에 등록된 비영리 민간단체는 올해 2분기 기준 1만4128개(중앙행정기관 1641개, 시·도지자체 1만2487개)다. 국내 일자리 2323만개 가운데 비영리는 404만개(17.4%)를 차지했다. 전체 일자리의 15.8%를 차지하는 대기업(368만개)보다 큰 규모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고용 규모에도 정부가 비영리를 일자리 정책에서 소외시키는 이유는 비영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라고 지적한다.

국제적으로 비영리는 정부와 영리기업을 제외한 이른바 ‘제3섹터’에 포함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3섹터 중에서도 사회적경제에만 지원이 쏠려있다. 박태규 교수는 “정부는 사회적경제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사회적기업 육성법’ 같은 여러 법률을 마련했는데, 비영리는 지원할 법적 근거도 없는 상태”라면서 “정부가 비영리 영역을 하나의 중요한 일자리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통계 수치도 비영리를 정부의 관심 밖으로 밀어내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비영리단체는 ‘좋은 일자리’의 기준이 되는 ▲평균소득 ▲근속 연수 ▲평균 연령 등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앞지른다.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일자리 행정 통계 결과’에 따르면, 비영리단체 근로자의 평균 소득은 308만원으로 중소기업(224만원)보다 37.5% 높게 나타났다. 근속 연수는 7.9년으로 중소기업 4.0년보다 2배 가까이 길고, 근로자의 평균 연령도 비영리단체(45.2세)가 중소기업(44.9세), 대기업(39.3세)보다 높았다. 통계상으로만 보면 비영리단체가 ‘최고의 일자리’인 셈이다.

비영리단체의 수치를 끌어올리는 원인은 학교재단과 의료재단이다. 국내 고등교육의 약 85%를 차지하는 사립학교는 비영리재단으로 운영된다. 국내 대형 병원 역시 비영리의료재단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두 재단 모두 급여 수준이나 근무 여건은 일반 영리 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규모 비영리단체들은 “대형 병원에 근무하면서 자신을 비영리에서 일한다고 소개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 일자리 해법, ‘비영리=좋은 일자리’ 전환 필요

최근에는 비영리단체가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사회적경제 영역으로 이동하는 사례도 나온다. 비영리 활동가 D씨는 복지사업을 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비영리 영역에서만 15년을 일한 베테랑 활동가지만 비영리단체 설립을 포기하고 자구책을 모색한 케이스다.

D씨는 “비영리사단법인은 설립 조건도 까다롭고, 설립 이후에도 정부 지원이 전혀 없다”면서 “반면 사회적협동조합은 설립이 비교적 간단하고, 복지 사업은 그대로 진행하면서 중소기업으로 등록할 수 있어서 혜택이 많다”고 했다. 그는 현재 중소기업 대상 청년고용장려금을 통해 청년 직원 1인당 75만원씩 총 375만원(5명)을 지원받고 있다. 또 쪽방촌 어르신 지원, 저소득 가정 아동 의료 지원 등 사회복지사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비영리단체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영리의 활동이 대부분 복지 서비스 분야에 해당하며, 서비스 산업은 많은 인력이 필요한 노동집약형 산업이기 때문이다.

이명신 비영리경영연구소장은 “미국이나 유럽은 제3섹터가 갖는 경제적 가치, 특히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의미 있는 삶’을 좇아 비영리로 오는 청년들이 장기적으로 일하도록 지원하고, 해당 분야 인재가 양성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선애 서울시NPO지원센터장은 “정부는 영리사업을 진행하는 법인에 대해서도 성장 정책을 쓰면서 공익적인 일을 위해 사람을 고용하고 활동하는 비영리에는 오히려 지원하기를 꺼린다”면서 “비영리 조직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좋은 일자리로 자리 잡으려면 성장 단계별 지원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hee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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