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2018 新 복지 사각지대] “사회적 편견에 두 번 운다” ③ 성매매피해여성 편

2004년 국내 최초로 성 매수자와 알선자, 성판매자를 모두 처벌하는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됐다. 이 법에 따르면 성판매자가 청소년이거나 비자발적으로 성을 판매했을 경우 ‘피해자’로 보고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성매매특별법은 국내 성매매 산업의 흐름을 뒤바꿨다. 티켓다방이나 성매매 집결지는 줄었고, 온라인·모바일을 통한 조건만남이나 안마방·오피스텔 성매매 등 ‘음성형’은 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제 포주들에 의한 감금과 폭력, 협박 등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실일까. 

◇갈수록 교묘해지는 폭력과 협박

20여 년간 성매매 피해 여성을 돕고 있는 이정미 한국여성의집 대표는 “수많은 성매매 여성이 여전히 폭력과 살해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억지로 사채를 쓰게 하거나 성행위를 녹화한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등의 교묘한 수법으로 여성을 옭아맨다. 폭력의 ‘형태’가 달라진 셈이다.

김영미(가명·25)씨는 스무 살 때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가출한 뒤 SNS로 조건만남을 시작했다. 몇 번의 만남 후에는 알선책이 붙어 오피스텔을 구해주고 남성을 소개했다. 그러나 영미씨가 성매매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알선책은 녹화해둔 동영상을 인터넷에 뿌리겠다고 협박했다. 강남 유흥업소와 오피스텔에서 일한 장미진(가명·28)씨는 “일을 시작할 때 가족관계증명서나 주민등록등본 등을 요구한다”면서 “도망쳤을 때 가족에게 연락하겠다고 협박해 다시 돌아오게 하거나, 가족에게 돈을 요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몸이 아프거나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포주의 협박 때문에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성매매 여성들은 쉽게 돈을 벌어 사치를 부린다’는 주장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2016년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성매매 여성들은 외면적으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높은 이자와 옷값·방값 등 온갖 형태의 채무로 점점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례 조사 결과 무려 3650%의 고리대를 매기는 업주도 있었다.

ⓒGetty Images Bank

◇성매매 피해 여성 상당수, 어릴 적 성폭력과 학대 경험

상황이 이처럼 심각하지만 성매매 피해 여성에 대한 지원은 사각지대에 있다. 여성가족부의 지난해 성매매 피해 여성 또는 탈성매매 여성 지원 예산은 약 150억원. 이중 약 73%가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 지원시설(쉼터), 자활지원공동생활시설(그룹홈), 자활지원센터 등 성매매 피해자 지원시설 운영에 쓰인다.

현장에서는 150억원이라는 예산이 부족한 수준이라는 성토가 나온다. 2016년 여성가족부의 ‘성매매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매매·가출 등을 경험한 위기청소년 19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57.8%가 부모 또는 보호자로부터 폭행·감금·굶김 등의 학대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현장 전문가들은 “실제 지원시설을 찾는 탈성매매 여성들도 불우한 가정환경, 성폭력, 학대 등으로 인해 성매매를 시작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많은 성매매 피해 여성이 지적장애나 만성적인 무기력증·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심리 치료에만 최소 1년 이상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자립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드는 이유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돕는 현장 활동가들에 대한 처우도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성가족부 지원책에 따르면,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는 5명의 직원을 두고 연간 약 1억원을 지원받는다. 일반 지원시설의 경우 입소자 10명당 직원 5명, 입소자 20명당 직원 9명을 고용하며 평균 1억3000만원 수준의 지원금을 받는다. 한 지원시설 원장은 “예산이 부족해 직급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모든 직원이 최저임금 수준의 인건비만 받고 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편견에 가로막힌 ‘자립’

ⓒpixabay

성매매 피해 여성의 자립에 가장 큰 걸림돌은 ‘사회적 편견’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에 대한 사회적 반발이 거세 예산 확보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최근 인천시 미추홀구가 성매매 집결지 종사자에게 1인당 2000여 만원씩의 자활 비용을 지원하기로 하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원에 반대한다’는 청원이 지난 23일 기준 24건이나 올라오는 등 반대 여론이 강하게 일었다. 시민사회의 모금도 녹록지 않다. 모금을 진행하려 해도 성매매 피해 여성을 향한 인신공격이 난무해 선뜻 나서기 어렵다.

김민영 다시함께상담센터 소장은 “성매매 피해 여성에 대한 자립 지원은 성매매 집결지 해결을 위한 여러 접근법 중 하나지만, 편견으로 많은 장벽에 부딪힌다”면서 “여성들의 진정한 자활을 위해서는 알선자를 처벌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미 대표는 “지금의 예산과 지원으로는 탈성매매 여성의 ‘완전한 자립’은 꿈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지원시설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이 보통 2년 6개월”이라면서 “단 몇 개월 만에 먹고 살 길을 찾아 자립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 맞춤형 자립 지원이 체계적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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