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네덜란드 ‘순환경제’ 실험장 ‘블루시티’

네덜란드 로테르담을 가로지르는 마스(Maas)강변엔 또 하나의 ‘도시’가 있다. 온실을 연상시키는 3600평 규모의 유리 돔 건물에 자리 잡은 ‘블루시티(BlueCIty)’다. 이 작은 도시에선 30여 개 소셜벤처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블루시티의 기본 원칙은 ‘누군가의 쓰레기가 다른 누군가의 자원이 되도록’ 하는 것. 자원이 100% 순환되는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과연 자원 낭비율이 ‘0’인 도시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지난 14일 사회적경제 국제포럼 참석차 방한한 랄스 크라마(Lars Crama) 블루시티 CCO(Chief Commercial Officer·최고영업책임자)를 만나 블루시티에서 어떻게 순환 경제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는지를 물었다.

랄스 크라마(Lars Crama) 블루시티 CCO ⓒ한승희

“블루시티에 입주한 팝업 레스토랑 ‘알로하’에서 나오는 커피 찌꺼기는 버섯 재배 소셜벤처 ‘로테슈밤(RotterZwam)’의 느타리버섯 배지(培地)로 사용됩니다. 커피 찌꺼기에서 자란 느타리버섯은 다시 카페 겸 레스토랑 ‘알로하(Aloha)’의 메뉴인 채식 미트볼 재료로 쓰이게 되고요. 이런 식으로 블루시티 내에 있는 소셜벤처들은 서로 자원을 주고받으며 순환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로테슈밤’의 버섯으로 만든 알로하’의 대표 매뉴 채식 미트볼 ⓒ블루시티

블루시티 건물은 원래 디스코테크를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워터파크였다. 그러나 2010년 재정난으로 워터파크가 폐업한 후, 건물은 별다른 용도를 찾지 못한 채 방치돼 있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이 문 닫은 워터파크에 사회 혁신가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죽어가던 공간에 조금씩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지하엔 ‘로테슈밤’이, 테라스엔 ‘알로하’가 문을 열었다. 이어 맥주 양조장 ‘베트&레이지(Vat&Lazy), 폐목재 업사이클링 공방 ‘오케하우트(Okkehout)’ 등이 둥지를 틀었다. 업종은 다르지만 모두 ‘자원을 재사용한다’는 비즈니스 모델로 움직이는 기업들이었다.

‘워터파크 전체를 소셜벤처 플랫폼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지난 2014년부터는 ‘로테슈밤’의 공동 창립자 사이먼 콕스(Siemen Cox)와 마크 슬레저스(Mark Slegers)가 투자자, 건축가, 도시계획자 등으로 팀을 꾸려 로테르담시와 논의를 시작했다. 건물을 부수는 대신 재사용하고, 기업 간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는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 골자였다.

마침내 2015년 공매(公賣)에 나온 워터파크 건물을 블루시티 계획을 지지하던 한 임팩트 투자사가 170만유로(한화로 약 22억원)에 낙찰받으면서 블루시티 건설이 현실화됐다. 2016 1월부터 기존에 입주해있던 소셜벤처들이 정식으로 임대 계약서를 썼고, 블루시티 운영팀이 꾸려졌다. 네덜란드 매체들은 블루시티를 성공적인 사회 혁신 사례로 조명하기 시작했다.

로테르담 마스(Maas)강변에 있는 블루시티 전경 ⓒ블루시티 공식 유튜브

블루시티 안에서 기업 간 순환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은 온전히 기업들의 몫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 협업 공간과 달리, 블루시티엔 기업들의 협력을 돕는 ‘커뮤니티 매니저’가 없다. 크라마 CCO는 “입주한 기업들이 블루시티에서 발생하는 재사용 가능한 자원을 발굴하고 활용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다른 기업과 협력하고 있다”고 했다. 입주한 기업들이 주도적으로 자원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기 때문에 ‘누가 블루시티 일원이 되느냐’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크라마 CCO는 새로운 입주 기업을 선정할 때 “사회문제를 순환 경제 생태계 안에서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있는지, 이 모델로 기업이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지,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수 있는 좋은 인품을 갖추었는가를 꼼꼼히 평가한다”고 했다

순환 경제 모델을 구상 중인 예비 창업가를 위한 공간도 있다. 이들은 옛 디스코테크 자리에 마련된 100석 규모의 협업 공간과 예전 탈의실에 조성된 실험실(lab)을 월 100~229유로(한화로 13~30만원 선)에 이용할 수 있다. 순환 경제 모델을 도입해보고자 하는 기업들로부터 의뢰를 받아 그 모델이 실현 가능한지, 수익성이 있는지 실험하고 평가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옛 샤워실, 돔 지붕 아래 원형 공간 등을 고쳐 만든 다섯 종류의 이벤트 공간에서 순환 경제와 소셜벤처 관련 콘퍼런스도 연다. 크라마 CCO는 “공간 대여, 행사 및 프로그램 진행 등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블루시티가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옛 워터파크 건물의 내부 특색을 살린 ‘블루시티’의 협업 공간 ⓒ블루시티

블루시티가 순환 경제 생태계 안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실험을 해 온 지 어느덧 3년 차. 그 사이 블루시티는 매달 1500명이 견학을 오고, 해마다 순환 경제 관련 행사 수십 건이 열리는 ‘강소 도시’로 성장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일까.

“세계 여러 도시에 지역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저마다의 블루시티가 생겨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블루시티 모델을 알리려고 해요. 그래서 언젠가는 블루시티가 더 이상 ‘고유한(unique) 모델’이 아니게 되는 것이 꿈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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