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월)

실버 택배원 4인의 하루, 지하철 노인택배원 동행취재

서울시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2,4,5호선) 한 모퉁이로 쇼핑백과 상자 꾸러미를 손에 든 할아버지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각자 가져온 종이 가방과 상자를 지역별로 나눠 어깨에 멨다. 이들은 모두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만 65세 이상 노인이다. 일명 ‘지하철 노인 택배원’들은 지하철로 간단한 서류, 백화점 상품 등 4~5kg 미만의 경량 물품을 배달한다. 이들의 하루는 어떨까. 지난달 초, 청년기자는 4명의 노인 택배원을 만났다.  

◇지하철 노인택배원들의 24시 

김상식(가명)씨는 상자 서너 개가 담긴 접이식 수레를 옆에 두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가 금방 오지 않자 높이가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수레를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택배일을 한 지 5개월이 됐다는 김씨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면서 “꾸물거렸다간 지하철 환승 시간을 못 맞춘다”고 말했다. 하나에 1~2kg 무게의 상자를 배달해 김씨가 받는 비용은 건당 3000~5000원. “손수레를 써도 상자가 무겁고 백화점이 멀어서 하루에 3, 4개 밖에 못 해.” 하루에 4건 정도 배달을 한 뒤, 수수료를 업체에 떼주고 김씨가 받는 돈은 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같은 회사에 속한 70대 정필두(가명)씨와 서민구(가명)씨는 일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둘은 주로 서울에 있는 백화점으로 배달을 간다. 서울 내에서 건당 배송료는 2000원이지만 수수료 30%를 제하면 이들이 받는 돈은 무게와 상관없이 건당 1400원이다. 매일 14건 정도를 배달하는 정씨는 아침 10시부터 8시간 동안 배달을 한다.

물품을 지역별로 분류하는 노인 택배원의 모습. ⓒ유예림 청년기자

“정년퇴직하고 10년 전부터 이 일을 시작했어. 그때는 지금만큼 지하철 택배 업체가 많지 않았는데, 요즘은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져서 건당 3000원이었던 배송료가 2000원으로 줄어들어 더 빠듯해졌어.” 어떻게 하루에 14건이나 배달을 하는지 묻자 “점심시간이 따로 없어 힘들긴 하지만, 주로 가벼운 물건을 배달해서 괜찮다”고 답했다. 점심도 먹지 않고 매일 일해서 정씨가 받는 돈은 한 달에 40만~50만 원이다.

다리가 불편해 하루에 4건 밖에 하지 못한다는 서씨는 집에 가만히 있기보다 나와서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다. 역사 내 한 편에 앉아 택배 상자를 정리하며 서씨는 “밥은 대부분 못 먹고, 거의 편의점 가서 대충 때운다”고 말했다. 지하철 노인 택배원들 대부분 편의점이나 간단한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했다. 세 명 모두 하루에 5시간 이상 일하지만 일당은 2만원이 안됐다. 최저임금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친다(2018년 최저임금 시간당 7530원). 

임대철(가명)씨는 수당을 건별로 주지 않고 월급으로 주는 회사에서 일한다. 한 달 월급은 100만원 선. 단, 임씨는 일주일에 고작 하루를 쉰다. “아침에는 물량이 많아서 부지런히 가야 하고, 오후에는 서너 개 정도를 배달해. 15개를 배달해야 되니까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지.” 하루 근무 시간과 근무 일수를 고려했을 때 그가 받는 월급이 그나마 최저임금을 적용한 액수와 가까웠다. 하지만 주휴수당은 여전히 없었다. 

◇최소생활비에 턱없이 부족, 근로 환경은?

노부부의 노후생활에 필요한 월평균 최소생활비는 183만 원, 적정생활비는 264만 원으로 집계됐다(2016년, 가계금융‧복지조사, 통계청). 하지만 지하철 노인 택배원이 하루에 최소 5시간 이상 일해서 버는 돈은 그에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백화점 곳곳을 오가지만 중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마땅한 휴게 공간도 없다. 노인들은 주로 역사 내에서 끼니를 해결하거나 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점심시간이나 식사 비용이 따로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 응답자의 79.3%가 현재 일을 하는 이유로 ‘생활비 마련’을 꼽았다(2014년, 통계청). 하지만 지하철 택배는 높은 수수료로 생활비는커녕 용돈 벌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일반 퀵 서비스 업체가 수수료로 평균 20%를 떼는 것을 고려하면 30%는 적지 않은 수치다. 임금을 월급으로 받는 임 씨는 “우리 회사도 처음엔 수수료를 떼가는 구조였지만 몇 달 뒤에 월급으로 바꾼 것”이라면서 “그나마 일을 잘해야 월급으로 받을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지하철로 물품을 배달하는 노인들의 모습. ⓒ 유예림 청년기자

2016년 기준, 서울시의 노인 택배원 종사자가 2000명을 넘어섰다. 생활비 및 용돈 마련, 사교, 시간 보내기 등 다양한 이유로 업계에 종사하고 있지만, 근로 환경은 턱없이 열악했다.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1위인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간접적으로나마 느꼈다. 

유예림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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