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10번째 개헌, 시민의 ‘열망’을 담다

시민과 함께 개헌의 장을 만드는 시민단체 ‘바꿈’

 

“이번 개헌만큼은 국민 모두가 의견을 개진하고 반영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지난 11월 1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민주주의 UP! 2017 정치페스티벌’ 사회자 김제동은 말했다. 547개 시민·노동단체로 구성된 ‘정치개혁 공동행동’과 ‘국민주도 헌법개정 전국 네트워크’는 광장 곳곳에 환경, 먹거리, 성 평등, 국민소환제, 장애인 참정권 등 주제별로 40여개의 부스를 설치했다. 부스마다 전하는 이야기는 달랐지만, 개헌을 위한 자유로운 논의가 여기저기서 이어졌다. 

우리나라엔 역대 9번의 개헌이 있었지만, 시민의 손으로 직접 만든 헌법은 없었다. 현재 10번째 개헌에 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건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통해서다. 하지만 이를 시민이 보다 쉽게 알고 자신의 의견을 담을 수 있게 하는 노력은 부족하다. 시민이 함께 하는 개헌의 장을 만드는 시민단체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이하 바꿈)과 ‘참여연대’ 등 여러 시민단체가 직접 거리에 나와 시민들을 만나는 이유다.

지난 11월 열린 민주주의UP! 2017 정치페스티벌 현장ⓒ백다니엘 청년기자

 

 

◇시민이 헌법과 친해질 수 있도록

 

“개헌이라는 주제를 시민들의 삶 속으로 끌어오고 싶었어요.” (홍명근 바꿈 간사)

바꿈은 시민들이 헌법을 좀더 가깝게 느끼도록 노력하는 시민단체다. 2015년 7월 창립해 2020년까지 딱 5년 동안 진행되는 프로젝트 단체다. 백승헌 전(前) 민변 회장과 박순성 동국대 교수(북한학)가 이사장으로 있다. 바꿈은 개헌의 큰 틀안에서 나오는 사회 이슈를 시민들로 하여금 직접 논의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하고 있다.

홍명근 간사는 “헌법은 어렵지만 꾸준히 의견을 나누다 보면 새로운 방향과 내용이 나올 수 있다”며 “헌법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하고, 쓰고, 만질 수 있도록 해서 앞으로 있을 개헌에 시민들의 의견이 자연스레 흘러가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모바일 개헌에 참여한 20대~30대 청년들 ⓒ바꿈

주목할만한 시도는 지난 9월 ‘모바일을 통한 헌법 바꾸기’였다. 이 프로젝트는 20~30대 청년들과 여러 청년단체가 모여 이뤄졌다. 총 3부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우선 1부에서는 사상의 자유, 차별 금지, 지방분권, 평화&통일, 청년정치, 지속가능성 등 6가지 주제가 담긴 발표가 진행됐다. 이어진 2부에서는 주제별 라운드 테이블이 진행됐다. 1부 발표 중 나온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개헌조항을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김준우, 조수진 변호사도 라운드테이블에 참여해 개헌안 작업에 도움을 줬다. 이렇게 각 테이블별로 만들어진 총 11개 개헌안은 아래와 같다.

① 청년을 더 이상 ‘정알못’(정치를 알지 못하는)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

② 모든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

③ 지방정부의 입법 독립성을 보장한다.

④ 모든 인간과 동물과 자연은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

⑤ 차별금지의 사유 요소(경제적 불평등, 인종, 정치적 견해)가 헌법에 확대 기재되어야 한다.

⑥ 지방정부의 재정자립확보를 위해 지방세 항목을 헌법상에 규정한다.

⑦ 평화에 대한 국민의 권리와 국가의 의무

⑧ 평화에 대한 국민의 권리와 국가의 의무

⑨ 사상의 자유 침해 행위자 형사법적 처벌 강화

⑩ 한반도 거주민의 인간답게 살 권리보장

⑪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보안법 폐지 

마지막 3부에서는 개헌안에 대한 모바일과 온라인 투표가 이어졌다. 그 결과, 흥사단 민족통일운동 청년위원회인 ‘들꽃’이 냈던 개헌안인 ‘사상의 자유 침해 행위자 형사법적 처벌 강화’가 50건의 가장 많은 찬성표를 받았다.

홍명근 간사는 “개헌이라는 주제를 청년의 관점에서 풀어냈다는 점, 발표자의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듣는 토론회와 달랐다는 점, 청년들의 목소리를 개헌과 연결시켜 구체적인 헌법안으로 풀어냈다는 점 등도 프로젝트의 수확이었다”고 밝혔다.

 

◇헌법을 나의 손글씨로 써보다

 

바꿈에서는 헌법에 들어갈 내용을 직접 써보는 프로그램도 있다. 지난 11월 17일, 서울 합정동의 한 작은 카페에는 일반 시민 10명이 ‘캘리그라피를 통한 개헌안 쓰기’ 시간을 가졌다. 시민이 바꾸고 싶은 세상을 직접 손글씨로 담아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지난 6월에 이어 두번째로 열렸다.

프로그램은 총 3시간 정도 캘리그라피 강사와 함께 진행됐다. 캘리그라피는 붓펜을 사용하기 때문에 처음 1시간 가량은 선을 그리는 연습부터 시작한다. 참가자 대부분이 처음 붓펜을 잡아봐서 단어 하나를 적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기본 연습을 마친 다음엔 평소 자신이 생각해왔던 개헌안 혹은 전하고 싶은 사회적 메시지를 직접 적었다. ‘행복추구권’부터 ‘건강할 권리’ 등 구체적인 헌법안과 ‘예술도 노동이다’, ‘물가를 못 따라가는 작고 귀여운 내 월급’ 등 다양한 내용이 손글씨로 채워졌다.

개헌book에 들어갈 사회적 메시지를 캘리그라피로 담고 있는 모습 ⓒ바꿈
 

이날 쓰여진 글씨는 바꿈이 계획 중인 개헌북(book)의 표지에 들어갈 예정이다. 개헌북에는 ‘모바일을 통한 헌법 바꾸기’를 포함한 여러 오프라인 개헌토론회와 바꿈이 제작한 개헌 관련 카드뉴스가 내용으로 들어간다.

한편, 바꿈에는 현재 ‘시민이 직접 쓰는 새로운 헌법’이란 온라인 플랫폼이 마련되어 있다. 법안처럼 만들기는 어렵지만, ‘대한민국이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하는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올려 공감을 많이 얻은 의견은 법률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투표창으로 만들어진다. 찬반 투표 내용 또한 개헌북에 들어갈 예정이다.

개헌book 표지에 들어갈 문구를 캘리그라피로 쓴 바꿈 홍명근 간사 ⓒ바꿈

 

◇시민의 ‘참여’를 ‘연대’로

 

한편, 참여연대는 시민단체의 개헌 요구를 종합해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헌법이 국회, 정부, 법원 같은 국가권력 구조에 관해 규정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권리’가 무엇인지 규정함으로써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헌법에서 권리로 인정되면, 국가는 그 추상적인 권리를 실제로 작동하는 정책과 제도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125개 시민 단체로 이뤄진 국민주도 헌법개정 전국 네트워크(이하 국민개헌넷)는 개헌 과정에 국민 참여를 촉진하고, 국회의 개헌 논의에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만든 연대기구다. 지난 6월부터 참여연대, 경실련, 흥사단, 국민주권개헌행동 그리고 노동단체인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이 개헌 관련 연대 논의를 시작했다. 이들은 준비 기간 동안 국회개헌특위의 전국순회 토론을 따라다니며, 기자회견을 통해 문제제기를 계속 하기도 했다. 국회에 지속적으로 국민참여 개헌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안녕헌법 소책자ⓒ국민개헌넷

국민개헌넷은 지난 10월 정식 출범을 거쳐, 개헌연속토론회도 꾸준히 진행중이다. 이밖에도 개헌 관련 토론회, 환경법 관련 토론회, 성평등 개헌 토론회, 정부 형태 토론회 등 다양한 분야의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이뿐 아니라 국민개헌넷은 ‘‘안녕 헌법’이란 소책자를 만들어 시민에게 배포하고 있다. 헌법의 의미를 되새기며 멀기만 했던 헌법을 삶 가까이 두게 하기 위한 내용이 담겨 있다.  

ⅰ. 국민이 주도하는 국민참여형 개헌

ⅱ. 주권, 인권, 성평등을 강화하는 개헌

ⅲ. 자치와 분권에 입각한 개헌

ⅳ. 직접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개헌

ⅴ. 정치개혁이 전제되는 개헌

국민개헌넷은 특히 학습모임, 민회, 주권광장 등과 같은 프로그램에도 집중하고 있다. 헌법을 바꾸는 절차와 과정에 국민 모두가 참여하고, 국민의 권리를 공부하고 토론하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참여연대 이재근 기획정책실장은 “국회가 개헌 논의를 진행하지만 시민들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실제로 헌법 조항이 어떻게 새로 생길지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다니엘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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