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에이즈 감염인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꿈꾸다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빅핸즈’ 카페를 가다

“얘랑 같이 살수 있을까요?”

부모님이 첫번째로 물어본 질문이었다. 의사는 “다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집에서 화장실을 따로 썼다. 알아서 식사시간을 피했다. 설거지도 따로 했다. 옷도 따로 빨았다. 자칫 잘못하다 국에 숟가락이라도 닿으면 아버지의 윽박이 날아왔다. ‘그 날’ 이후 늘 그랬다.

상훈(가명)씨가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감염 사실을 가족들에게 밝힌 날,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누나는 어머니를 불렀고 어머니는 연신 “괜찮다”며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눈물 흘리는 그에게 아버지는 휴지를 건네며 “조심해야지, 이거 옮으면 어떻게 하려고”라고 했다. ‘그 날’ 이후 가족들이 점점 멀어져 갔다. 

‘빅핸즈’ 카페의 전경 ⓒ강우진 청년기자

‘감염인과의 일상적인 접촉을 통해서는 감염되지 않아요’

‘악수, 포옹 등의 신체접촉을 통해서는 감염되지 않아요’

‘감염인이 요리해서 함께 먹는 식사로는 감염되지 않아요’

대구 반야월역 2번 출구를 빠져나와 금호강변으로 걷다 보면, 외딴 카페 하나가 나타난다. 카페를 들어서면 여느 카페와 다름없이 음악소리와 커피 내음이 어우러져 다가온다. 하지만 곧장 나타나는 좁은 통로를 지날 때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깨는 문구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통로를 지나자마자 카운터에 서 있던 종업원이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건넨다. 벽면 곳곳은 감염인들이 그린 그림들로 장식돼 있다. 창가에서는 밝은 햇살과 넓은 금호강의 모습이 펼쳐졌다.

이곳은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빅핸즈’ 카페이다. 2013년 설립된 ‘빅핸즈’ 카페는 국내 최초의 에이즈 협동조합이다. 현재 총 26명의 조합원이 일하고 있으며 이 중 6명은 에이즈 감염인이다. 이들은 올해로 5년째 에이즈에 대한 인식개선활동과 감염인의 자활 활동을 돕고있다.

◇에이즈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함께 사는 꿈을 꾸다

 

“처음에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막연한 동경을 느꼈어요. 지금은 그 길을 함께 가는 것을 꿈꿉니다.”

김지영씨(39·여)는 현재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의 대표이자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김대표가 에이즈를 처음으로 접한 때는 대학원 시절이다. 대학원 시절 교수의 추천으로 지금의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서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던 김대표에게 에이즈는 매력적인 일이었다. 올해로 14년째 이 일에 종사하고 있는 김대표는 “이제는 나에게 에이즈란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라고 말했다.

김지영 대표 ⓒ강우진 청년기자

“감염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밥이나 돈이 아닌 사회적 관계망의 회복”

김대표는 에이즈 관련 일을 하면서 쉼터와 상담소 등을 거쳐가는 많은 감염인들을 접했다. 성별, 연령, 지역 등은 모두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감염 이후 가족과 친구 등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된 것.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된 후 이들은 모두 좌절감, 모멸감, 우울증 등을 앓았으며, 대부분이 자살하거나 자살시도를 했다. 김 대표는 “감염인들을 단순한 복지의 수혜자로 볼 것이 아니라 이들이 다시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게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감염인과 비감염인의 경계를 허물다

 

“감염사실을 접한 당사자는 자기 자신을 단죄하려고만 합니다. 가족들에게 감염사실을 알리고 난 뒤에도 ‘내가 사람인가, 자식이라고 할 수 있나’ 자책하고요. ‘내가 치료받고 살아갈 권리가 있나’ 괴로워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마음이 곪아가는 거죠. 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모두 자신의 허물을 내려놓고 하나가 되어 어우러집니다.”

김 대표는 먼저 2010년 지역 최초의 에이즈 자조 모임인 ‘해밀’을 조직했다. ‘해밀’이란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을 뜻하며, 해가 밀고 나온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김 대표는 “에이즈 감염인의 인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감염인들이 주체성과 당사자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모임이 지금의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의 모태가 됐다. 당시 모임의 주체였던 감염인 당사자와 활동가, 봉사자가 십시일반하여 협동조합을 출범했고 결정적으로 2회 현대차그룹과 현대차정몽구재단의  ‘H-온드림 펠로’에서 선정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빅 핸즈’ 카페가 있는 이곳 안심마을은 대구에서 전통 있는 마을공동체이다. 이미 발달장애인 관련 기관들이 위치해 있었으며 소수자들에 대해 비교적 관대했다. 김 대표는 “이곳이야말로 에이즈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처음부터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감염인들은 낯선 사람들을 경계했으며 비감염인들에게 쉽사리 커밍아웃 할 수 없었다.

“저와 감염인, 마을주민이 함께 한 술자리였어요. 당시 술에 얼큰하게 취했던 감염인분이 갑자기 자신의 감염 사실을 커밍아웃해 버린 거에요. 저는 당황해 마을주민들의 눈치를 살폈는데 오히려 마을주민분들은 대부분이 웃고 넘어가는 분위기였어요. 그리고 다음날 저를 찾아와 왜 미리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질책하시더라고요.”

김 대표는 “이날 사건을 계기로 안심마을이야말로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안심마을을 넘어 더 큰 공동체로

 

“편견은 무지에서부터 오는 것 같아요. 저도 이곳을 거쳐가면서 많은 것을 알고 깨닫고 있고요.”

현재 ‘빅 핸즈’ 카페에는 조합원이외에도 다양한 지역사회의 봉사자들이 일하고 있다. 올해로 1년째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상희(40·여)씨는 “동구청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던 중 이 카페를 처음으로 알게 됐다”고 밝혔다. 김상희씨는 “대구에서 살고 있지만 이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며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에이즈에 대한 선입견이 깨졌다”고 말했다.

이 카페에서 올해로 1년째 일하고 있는 김상희씨가 업무에 열중하고 있다. ⓒ강우진 청년기자

4년째 이 카페를 이용하고 있다는 최모(57)씨는 “우연하게 이곳을 지나가다 처음 들렀다” 며 “이곳을 이용하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에이즈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이곳을 소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빅 핸즈’ 카페는 카페의 수익으로 에이즈 인식개선활동과 자활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김 대표는 “에이즈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최고의 방법은 에이즈를 알리는 것”이라며 연대활동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김 대표는 “현재 동구사회적기업협의회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동구사회적경제문화센터에 위치한 북카페를 ‘빅 핸즈’ 카페 2호점으로 만들 것”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이외에도 최근 지역방송국 라디오에 공익광고를 내보내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감염인이 대표가 되는 그날까지

 

“앞으로 향후 10년 안에 감염인이 대표가 되어 좀 더 많은 감염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그분들이 자기자신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다른 감염인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는 12월 1일은 세계에이즈의날 30주년을 맞는 날이다. 이에 김 대표의 각오는 대단했다. 김 대표는 “현재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며 점점 감염인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며 “정책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감염인들이 점점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덧붙혀 김 대표는 최근에 일어난 3건의 에이즈 관련 사건에 대해 “에이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고조된 상태인 지금, 언론은 더 이상 에이즈를 자극적인 가십거리로만 이용하는 행태를 멈춰 달라”고 주문했다.

강우진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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