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기록이 없는 나라… ‘알 권리’를 알려드립니다

시민활동가 ‘알권리연구소’ 전진한 소장 인터뷰

 

청와대 캐비닛 문건의 발견은 대통령 기록물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대통령 기록물은 공공 기록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2007년 이를 보호하고 국민에 공개하기 위해 ‘대통령 기록물 제도’가 제정·시행됐다. 대통령 기록물을 포함, 행정기관의 각종 기록의 열람을 요구하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알 권리’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구청부터 국회 그리고 정부의 정보가 잘 기록되고 또 잘 공개될 수 있도록 국가기록원 정상화에 힘쓰고 있는 ‘알권리연구소’ 전진한 소장을 지난 10월 23일 만났다.

알권리연구소 소장 전진한씨 ⓒ백다니엘 청년기자

-캐비닛 문건과 대통령 기록물 그리고 알권리의 관계는?

알권리도 ‘기록’이 있을 때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록문화가 굉장히 일천하다. 2000년에 기록물관리법이 생기기 전에는 제대로 된 기록이란 게 없었다. 기록을 남기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이 없었고 심지어 대통령이나 공무원이 기록을 가지고 나가도 제재를 가하지 못했다. 한 사람이 공공기관을 떠나가면 그에 관한 맥락 기록이 있다. 공식적으로 생산한 공문 말고 회의록이라든지 그 사람의 노하우를 적어 놓은 기록을 공적 정보로 획득할 수 있다. 가령 대통령이라면 정책 판단에 대한 근거를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데 이러한 기록을 자서전 같은 홍보 수단으로 쓰면서 기록 가치가 떨어졌다. 최근 5.18 발포를 누가 했는지가 기록으로 나와 밝혀졌는데 이런 게 기록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기록이 있는 게 곧 알권리의 전제가 된다. 기록이 있는 것뿐 아니라 공개되어야 하고 관리와 공개의 양적 균형이 잘 이뤄져야 한다.

-그렇다면 모든 기록은 공개되어야 하나?

국민의 알권리는 공개되지 않아야 할 정보를 보호하는 것도 알권리다. 대표적으로 건강 관련 정보, 학교 학적부 등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정보는 보호해야 한다. 알권리란 공개해야 할 건 마땅히 공개해야 하고 보호해야 할 건 보호해야 한다. 나아가 국가 안보 관련 기록도 노출되면 안보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기록이 유출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곳이 외교부, 통일부, 국정원 같은 곳인데 체계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다. 정치권의 목적에 따라 공개하는 경우가 많아 체계화가 필요하다.

-알권리 운동을 업으로 삼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이라는 곳에서 활동을 시작한 게 기록과의 첫 인연이 되었다. 처음 신입 활동가 때 배치받았던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참여연대에서 4년 4개월 근무를 했지만 별다른 꿈과 성과 이루지 못한 채 나오는 게 너무 괴로웠다. 이후 어디 다른 단체에 가지 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시민단체를 만들자는 결심을 했다. 일반 활동가 출신들도 얼마든지 시민단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명지대 기록관리대학원에서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기록관리가 활성화되려면 정보공개운동이 더욱 크게 일어나야 한다고 설득하고 다녔다.

2008년 전진한 연구소장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를 창립했다. 내용을 내세우지 않고 시민운동 방법론의 개선을 통해 시민운동에 기여하는 게 센터 설립의 목적이었다. 실제로 절차(정보공개청구)가 중심이 되는 시민단체는 국내에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처음이었다.

-알권리 연구소를 만들게 된 계기는?

전에 몸담고 있던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를 나오며 시민단체가 아닌 모델을 고민하다 알권리연구소를 설립하게 됐다. 알권리 연구소는 조합원 7명이 함께 하는 협동조합이다. 민간연구소로서 주로 정보공개법 및 기록물관리법을 제도화하고 확산하는 일을 한다.

현재는 국가기록관리 혁신 테스크포스(T/F)팀에 들어가 대통령기록물, 공공관리기록물 관리의 개선을 위해 연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언론인과 공무원 교육을 한다. 시민 대상으로는 각 단체 시민교육 프로그램 강사로 참여해 정보공개 뿐 아니라 알권리 전반에 관해 알리려고 노력한다. 알권리에 해당하는 정보공개법, 기록관리법, 대통령 기록물법 등 시민이 알아야 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을 강의 주제로 삼는다.

알권리연구소의 팻말 ⓒ백다니엘 청년기자

알권리운동 시민 활동가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6개월 동안 정보공개청구와 기자들의 취재로 만들어진 세계일보 ‘기록이 없는 나라’ 시리즈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기록관리 실태를 고발하는 탐사보도였다. 이 경험은 나를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선 언론과 활동가 및 전문가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성공하는 시민운동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됐다. 또한, 우리나라 기록관리 체계를 공부하고, 활동가에서 전문가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언론과 기록 학계라는 엄청난 인맥을 선물 받았다는 점이다. 언론과 시민단체가 함께 공동기획을 하면서 이렇게 큰 성과를 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평소에 개인적으로도 기록을 많이 하는 편인가?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지금까지 책 3권에 보고서까지 포함해 4권 정도 기록으로 남겼다. 사단법인 ‘시민’이란 곳에서 정보공개활동을 평가해 시민 펠로우로 선정된 적이 있었다. 저에 대해 기록을 해달라 해서 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에서 했던 일들, 정보공개센터 만들게 된 계기 떠나게 된 계기 등을 포함해 50페이지 정도로 만들어 시민단체에 배포했다. 그다 ‘대통령 기록전쟁’이란 책을 통해 지난 십몇 년 동안 대통령 기록문제가 어떻게 왜곡됐는지 남겼다. 또 정보공개운동의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정보공개청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담은 책도 만들었다. 출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동안 제가 가진 노하우를 체계화하려고 기록했다. 자신의 활동에 대해 기록하지 않는 분도 많다. 자신의 노하우가 노출되길 꺼려서다. 하지만 노하우를 공유하는 게 전문성을 더 확립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해 알고 있는 부분을 전파하길 노력하고 있다.

-알권리운동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저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을 한다. 결국,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어떤 정보를 취득하고 활용하느냐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힘 있는 사람들만 잘할 수 있었다. 지금은 얼마든지 작은 데이터를 가지고도 분석이 가능한 시대다. 그런 걸 시민들에게 퍼뜨리는 게 제 일이고, 자기가 알고 싶어하는 걸 정확하게 알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데 일조하고 싶다.

 

백다니엘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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