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난민들을 언어교사로 고용하는 사회적기업 ‘채터박스’를 아십니까

[더나은미래x영국문화원]글로벌 사회적기업 트렌드 읽기

 

본국을 벗어나 안식처를 찾는 난민들은 박해와 오해에 맞닥뜨리곤 한다. 하지만 난민들 중에선 아직 미처 개발되지 않은 기술과 재능을 겸비한 이들도 있다. 우리는 난민주간을 맞아 사회적기업 채터박스의 무르샬 헤다얏(Mursal Hedayat)을 만나봤다. 채터박스는 기술이 있는 난민들을 고용해 언어교사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기업이다. 편집자 주

 

수십년 경력을 가진 검증된 엔지니어 파투니(Patuni)는 1994년 아프가니스탄 카불(Kabul)을 떠났다. 그녀는 카불 대학교에서 토목 공학을 공부하는 100명의 수강생들 중 5명 뿐인 여학생 중 하나로, 아프가니스탄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아프간의 희망세대이기도 했다.

아프간 전쟁이 발발한 90년대, 그녀가 살던 카불은 탈레반으로부터 점점 더 많은 위협을 받고 있었다. 1994년, 탈레반 세력이 카불의 한 결혼식장에서 일으킨 폭탄테러로 70명의 사상자가 나오자, 파투니는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프간을 떠난 그녀는 대륙 바깥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마침내 정착한 곳이 영국 런던이었다. 이후 10년간 그녀는 계속해서 청소부 같은 저숙련 직업을 전전했다. 파투니의 딸인 무르샬은 그런 경험이 난민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것이라 말한다.

“아무리 다른 소수 그룹에 비해 평균 이상의 교육 및 훈련 수준을 갖춰도 난민들의 고용률은 현저하게 낮아요. 대부분의 일이 사람들을 잘 마주치지 않는데다 매우 불완전한 고용상태인 경우가 많죠. 더 숙련되고 보상이 높은 다른 직업으로 옮겨갈 기회도 많지 않아요. 보수는 무척이나 낮고요.”

무르샬은 현실을 이렇게 설명한다. “잘못된 직업소개소에 들어가 외국 이름이 적힌 이력서를 내민다고 생각해보세요. 게다가 업무 공백도 긴 이력서를 보여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겁니다.”

채터박스의 창립자 무르샬 헤다얏 씨 ⓒ파이어니어포스트

무르샬은 어머니인 파투니의 경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2016년 사회적기업 ‘채터박스(Chatterbox)’를 설립했다. 난민들이 가진 가능성을 더 나은 방법으로 활용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그녀는 난민들을 개인과 단체를 대상으로 한 언어 교사로 고용해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으로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1:1 수업을 제공하도록 했다. 

“난민들은 서너 개의 언어를 구사할 만큼 언어 역량이 무척 뛰어납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죠.”  

채터박스에서 교사로 일하는 난민들의 출신은 매우 다양하다. 한때 시리아 등에서 건축가, 치과의사, 약사로 일하던 이들도 있다. 현재 교사들이 가르치고 있는 언어는 아랍어, 한국어, 쿠르드어, 스왈리어, 파르시어 등이다. 채터박스는 교사들에게 런던의 생활임금인 시급 9.75파운드(우리돈 약 1만5000원)를 지급하며, 교사들은 일주일에 평균 8~10시간 정도를 가르친다. 강의 수강료는 15파운드(우리돈 약 2만2500원)부터 책정된다. 

채터박스는 올해 초 런던의 SOAS 대학교 언어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시작하며 성공적인 첫 발을 뗐다. 앞으로 영국 에딘버러 대학에서도 추가적인 파일럿 수업이 예정돼 있다. 강의에서 배우는 언어를 실생활에서 사용해볼 경험이 없었기에, 학생들에게도 난민 언어 교사들과의 수업은 꼭 필요한 수단이었다.

SOAS에서 아프리카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아메드 디카(Ahmed Dica)와 레베카 스테이시(Rebecca Stacy)는 “수업을 통해 스왈리어로 다양한 방언을 말하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기술을 연습할 수 있었고 보다 자신감을 갖고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됐다”며 “원어민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도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수업은 난민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줬다. 중국어와 한국어를 공부하는 제이콥 마르슈위츠(Jacob Marchewicz)는 “(수업을 통해)난민 선생님의 출신 국가의 사람들이 직면한 상황에 대해서 보다 공감을 하게 됐다”고 했다.

채터박스의 온라인 페이지. 온라인으로도 언어 강좌를 들을 수 있다. ⓒChatterBox

수업을 통해 미처 기대하지 않았던 몇 가지 소셜 임팩트들도 나타났다. 우선, 난민 언어교사의 3분의 1이 고등교육을 받기로 결심했다. 그중 세 명은 SOAS 대학으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기도 했다.

교사들에게 미친 임팩트 역시 명백하다. “교사들은 채터박스를 통해 이력서에 꼭 필요한 경력은 물론, 영국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것에 대해 중요한 인사이트를 얻게 됐어요. 이들이 일을 통해 얻게 되는 자신감과 존엄성도 중요한 자산입니다. 교사라는 역할은, 이들의 기술을 존중하게 하고 포부를 높여줬습니다. ”

난민 출신 교사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공감한다면, 채터박스의 사례는 감동적일 수 밖에 없다. “의사, 치과의사, 강사, 변호사, 배우, 건축가 등 다양한 출신의 교사들이 서로 경험을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이들은 난민이 되면서 물질적인 부나 사회적 연결망은 물론, 그들이 부단히 애써 쌓아온 전문성까지도 버릴 수밖에 없었죠. 어떤 것도 그들의 탓이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저는 그들의 심정을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운 좋게도, 몇몇 교사들은 채터박스를 통해 과거에 몸담았던 직업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거나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할 수 있었다. 

난민들이 가진 기술을 적절히 활용해 그들의 역량을 강화해주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영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핀란드의 스타트업 ‘스타트업 레퓨지(난민들의 스타트업)’는 새로운 이주민들의 기술을 지도화(mapping)함으로써 난민들이 정착 초기에 수월하게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기도 하다.

영국문화원의 사회적기업 담당자 줄리엣 콘포드(Juliet Cornford)는 “채터박스는 전 세계 사회적기업들이 어떻게 단기적인 해결책이 아닌 ‘그들이 가진 기술을 활용하는’ 해결책을 만들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훌륭한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채터박스 교사와 학생의 1:1 수업 장면 ⓒChatterbox

캠퍼스 안에서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력도 있다. 무르샬은 대학생 외의 수강생들 중 대부분은 채터박스가 가진 ‘소셜 미션’에 이끌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것을 ‘멋진 일(a terrific thing)’이라고 말한다. “언어를 배우도록 장려하는 일은 영국의 경제적 우선순위일 뿐 아니라, 보다 관대하고 포용적인 사회로 가기 위한 일입니다. 지금보다 확장될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이죠.”

영국에서 매년 언어 기술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1년에 480억 파운드(우리돈 약 72조원)에 달한다.

채터박스는 2016년 8월 베스널 그린 벤처스(Bethnal Green Ventures)로부터 1만5000파운드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지난 5월에는 네스타의 쉐어랩 펀드(Nesta’s ShareLab fund)로부터 4만파운드를 지원받았다. 무르샬은 앞으로도 엔젤 투자자(기술력은 있으나 자본이 부족한 초기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개인)나 개인 팀에 투자하는 크라우드펀딩으로부터 추가적인 투자가 들어올 것으로 내다본다. 그녀는 “채터박스가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고 확장가능할 만큼의 수준이 되려면, 앞으로 그에 맞는 팀을 꾸려야 한다”고 말했다.

파투니는 어떨까? 그녀는 아프간 공동체의 리더이자 캠든 아프간 공동체 서플리멘터리 학교에서 수학과 영어, 페르시아어를 가르치는 대표교사, 그리고 교실의 언어 보조까지 맡으며 그녀 스스로의 소셜 임팩트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엄마의 그 딸이다.

 

※ 위 기사는 영국 언론 파이어니어스 포스트(Pioneers Post)에 발간된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 기사는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원 저자 : Lee Man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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