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빵 102개 포장 가능할까요? 학생들 간식용이에요.”
지난 15일 오후에 찾은 전북 전주시청 근처의 작은 빵집. 8평 남짓한 매장은 손님들로 북적댔다. 비빔빵을 102개나 구매한 진주기계공고 교사인 송현종(48)씨는 “비즈쿨 수업 프로그램으로 창업에 관심 있는 학생 30여 명과 익산에 들렀다 비빔빵을 사려고 일부러 이곳에 왔다”고 했다. 제빵사를 지망하는 학생들도 아니고, 도대체 창업과 빵집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송씨는 “이 빵집이 어르신들의 일자리를 만들면서 사업을 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알고 있다”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도 창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어 방문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매출 2억원을 달성한 핫한 사회적기업 ㈜천년누리 전주빵카페의 성장 스토리를 심층 취재했다.
◇”전주비빔빵, 들어보셨나요?”
“아니, 진짜 손님들이 다 알고 오신다니까요. 전주의 하루 방문객이 2만9000명이라곤 하지만, 여긴 한옥마을에서도 1㎞ 넘게 떨어진 구도심이라 걸어서 오기가 어정쩡하거든요. 그런데 관광객은 물론, 서울, 수원,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찾아서 와요. 와서 ‘청각장애인도 일한다면서요?’라고 물어보세요. 손님들이 빵값을 지불하면서도 기분이 좋대요. 사람들이 이기적인 것 같지만, 이타주의가 잠재돼 있다고 봐요. 전주비빔빵이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자립을 위해서도 소중하지만 한국인들의 공동체 연대 의식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장윤영(46) ㈜천년누리 대표는 “손님들이 비빔빵을 사면서 사회적 가치까지 구매하는 경험을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관광객이 많았던 지난달에는 매장과 전주역까지 운행하는 콜택시가 주말에 800건가량 늘어나기도 했다. 전주빵카페 이야기가 방송과 SNS로 알려지면서 응원하는 팬들도 생겼다. 장 대표는 “여름에 페이스북을 통해 모르는 분이 매장에서 일하는 어르신들 고기 드시라고 경기도 수원에서 한우 30인분 이상을 퀵으로 보내주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천년누리는 단순히 빵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어르신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에서 사업이 시작됐다.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판다’는 미국의 대표 사회적기업 ‘루비콘 프로그램스(RUBICON PROGRAMS)’와 비슷하다. 2012년, 사단법인 ‘나누는 사람들’의 노인일자리 사업단이 보건복지부 고령자친화기업 공모사업에 선정됐고, 이어 2013년에 SK이노베이션의 ‘사회적경제 지원사업’을 통해 창업 자금 1억5000만원을 지원받아 매장을 냈다.
◇전주 지역을 대표하는 건강빵 개발의 비밀
‘전주를 대표하는 비빔빵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새로운 빵을 개발하기란 쉽지 않았다. 수분이 많은 야채가 빵 속에 들어가자 터지기 일쑤였고, 식감도 떨어졌다. 2015년 8월, 전북과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였던 장윤영 대표가 사업을 돕기 위해 합류하면서 일이 차곡차곡 진행됐다. 6개월에 걸친 12번의 시행착오 끝에 현재의 고추장 소스 개발에 성공했다.
빵의 식감 문제도 32시간 저온 숙성 ‘우리 밀 반죽’으로 해결했다. 장 대표는 “부모님도 건강이 좋지 않았고, 아이도 아토피라 건강한 먹거리로 요리하는 것이 생활의 일부분이었다”고 했다. 그간의 노하우와 역량을 살려 우리 밀로 만든 건강빵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고, 첫 온라인 판매처도 친환경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폐쇄몰 ‘참거래 농민장터’를 선택했다. 커뮤니티 안에서 ‘속이 편한 빵’ ‘야채가 많이 들어간 건강빵’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재구매율은 95%에 이르렀다.
천년누리 전주빵카페에는 전주떡갈비빵도 있다. “전주 하면 떡갈비도 떠오르잖아요. 전주비빔빵이 야채 위주의 빵이라면, 떡갈비빵은 고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대파크랜베리스콘 개발에도 숨은 이야기가 있다. 농부 한 명이 ‘지금 대파를 팔지 못하면 갈아엎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참거래 농민장터’ 커뮤니티에 사연을 올린 것. 이 사연을 읽은 장 대표는 30㎏의 대파를 구매해 설탕과 버터가 들어가지 않은 건강 대파스콘을 개발했다. 건강한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기 메뉴다.
◇2년 만에 월 매출 7배 성장, 일자리도 7배 늘었다.
현재 천년누리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30명. 노인, 장애인, 다문화 여성 등 전주시 내 취약 계층이 25명이다. 직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은 75세 할머니이며, 직원들의 평균 연령이 65세다. 이들의 월평균 급여는 160만원 정도. 2년 전만 해도 직원 4명에 월 매출 500만원이었던 기업은 이제 매월 인건비로만 5000만원 이상을 지출하는 곳으로 성장했다. 주말이면 중고 오븐 2대로 매일 4000개의 빵을 반죽하고, 만들어서, 팔아야 한다. 대표 빵인 비빔빵에 들어가는 야채를 모두 손질하는 데만 꼬박 4시간이 걸린다.
장 대표를 비롯해 직원들은 새벽 4~6시면 출근해 빵을 굽는다. 직원들은 몸은 바쁘지만, 잘나가는 회사 덕에 마음은 즐겁단다. 지난해 말부터 근무하고 있는 리우엔니(52)씨는 한국으로 시집온 이주 여성이자, 중국인이자, 청각장애인이다. 리우엔니씨는 “청각장애인이라 일 자체를 얻기도 힘들었고, 의사소통이 안 돼서 쫓겨난 적도 많았다”면서 “하지만 천년누리에서는 수어 통역사가 와서 제빵 기술도 알려주고 일할 수 있게 배려해줘서 좋다”고 전했다. 리우엔니씨는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서, 이번 추석 명절에 6년 만에 고향을 방문한다.
일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 장 대표가 교수직을 그만두고서 사회적기업 대표로 계속 고군분투하는 이유다. 장 대표는 “사회적기업은 사회복지의 혁신적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사회복지사로 10년 넘게 일해왔지만, 진정한 복지는 일을 통해 자립하는 것에서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대상자들에게 일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사회적기업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대신 사회적기업이 제대로 성장하기까지 정부나 기업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사회적기업에는 카드 부가세 혜택을 준다든지, 복지 대상자가 자립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준다는 등으로요. 저희가 성장하게 된 배경에도 SK이노베이션 임직원들 도움이 컸어요. 매장이 엄청 바쁠 땐 전주까지 내려와서 포장도 도와주고, 이번엔 투자자 미팅도 연결해줬어요. 저희는 지역의 취약 계층 100명의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들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