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장애 아동, 가족이 아프다

[더나은미래―푸르메재단] 장애, 이제는 사회가 책임질 때 中

지우(12)에겐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지우의 병명은 레트증후군. 정상적으로 발달하다 어느 날부터 퇴행하는 희귀난치병이다. 16개월이 되던 해 병명을 알았다. ‘1만명의 한 명꼴, 여자아이에게만 발병한다는 병이 왜 하필 지우였을까.’ 딸의 장애를 알게 됐을 때, 송정희(40)씨는 “죽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했다.

장애 아이 한 명을 키운다는 것. 그날부터 가족은 ‘작은 섬’에 갇힌다. 엄마의 하루는 지우로 가득 찬다. 원래대로라면 초등학교 6학년에 다녔어야 할 지우의 몸무게는 19㎏. 씹지 못하는 지우를 위해 매 끼니 음식을 잘게 가위로 자른다. 지우 혼자선 지탱할 수 없는 앙상한 팔다리를 뒤에서 받쳐 들고 걷는 듯 안는 듯 움직이는 것도 엄마다.

레트증후군을 앓는 지우(12)의 곁엔 늘 엄마가 있다. 엄마 송정희(40)씨는 “장애 아이 둔 엄마 중엔 마음이 아픈 이들이 많다”며 “가족들의 정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재현 영상미디어 기자

엄마를 돌보는 건 다른 엄마다. 마음이 아픈 엄마도, 알코올 중독인 경우도, 가족이 헤어진 경우도 많다. 주변 엄마들에게 때맞춰 전화하고, ‘나쁜 생각은 말라’며 다그치는 것도 엄마들의 몫이다. “장애 아이 키우는 순간 다른 사람과 어울릴 기회 자체가 없어요. 치료 맞춰서 병원 따라다니기 바쁘거든요. 거기서 서로 안부 묻고, 이야기하면서 흘려보내는 거죠. 엄마들끼리는 모여서 ‘우리 죽기 전엔 안 끝나, 죽어야 끝나’ 하면서 웃고 조금 풀고 그래요.”(웃음)

장애 형제를 둔 형제들도 앓는다. 이시영(38·가명)씨는 둘째 아들 진수(5·가명)만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태어났을 때부터 목을 가누기도, 눈 맞춤도 어려워했던 ‘발달장애 경계’ 첫째 진형(8·가명)과 달리, 둘째 진수는 모든 게 정상이었다. 세 돌까진 그랬다.

지난해 5월, 큰아들 진형이가 ‘소아대퇴무혈성괴사’라는 병명으로 휠체어를 타면서부터 둘째 진수는 유난히 힘들어했다. 괴사된 뼈와 관절이 다시 자랄 때까지 1년간 휠체어를 타야 하는 병이다. 둘째의 눈에, 형은 갑자기 아기가 됐다. 엄마의 모든 애정을 독차지하는 것만 같았다. 애정을 갈구하던 진수는 점점 분노를 조절하기 어려워했다. 세 돌까지도 괜찮던 아이가 갑자기 발음이 뭉개졌다. 말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가 됐다. 둘째 진수는 지난 3월 ‘조음장애’ 판정을 받았다. 마음의 병이 둘째의 ‘장애’가 됐다.

장애 아동의 1차 보호망, ‘가족’이 아프다. 이혼 비율도, 형제나 보호자가 우울증을 앓는 비율도 높지만, 가족 구성원을 위한 통합적인 정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장애 가족을 위한 심리·정서 지원이 늘어야 하는 이유다.

16세 다운증후군 딸을 키우는 이주선(48·가명)씨는 “모든 부담과 책임이 가족의 어깨에만 지워져 있어, 가족끼리 나눠지다 지쳐 떨어진다”고 했다.

“보통은 미래의 희망을 보고 살잖아요. 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건 늘 눈앞에 장벽이 있는 느낌이에요. 내가 아프면 어쩌나, 죽으면 어쩌나. 불안하고 우울해요. 가족의 에너지는 한계가 있어요. 외부에서 채워주고 도와주지 않으면 결국엔 에너지가 고갈되거든요. 사회가 가족의 짐을 조금이라도 나눠 져 주었으면 좋겠어요.”

※푸르메재단과 하나금융나눔재단에서는 재활 치료가 시급한 장애 어린이 및 가족을 대상으로 의료비 및 상담·심리치료를 제공합니다. 신청기간은 오는 8월 31일까지이며 신청 서식은 재단 홈페이지(www.purme.org)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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