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8년 동안 나무 7만 그루… 척박한 땅에 희망을 심어주다

푸른아시아 몽골 조림지를 가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3시간, 275㎞를 달렸다. 푸른 하늘과 끝없는 초원을 지나 도착한 곳은 돈드고비 지역. 고비는 몽골어로 ‘황무지’를 말한다. 고비사막과도 가까워 여행객도 많이 들르는 도시다. 사실 몽골은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나라다. 지난 100년간 지구 기온이 평균 1℃ 상승할 동안, 몽골은 70년간 무려 2.45℃가 올랐다. 지금까지 사라진 호수는 1166개, 줄기를 찾을 수 없는 강은 887개다. 식물종의 60%가 멸종된 몽골에서는 사막화 지표식물 데르스가 여기저기 보였다.

몽골 에르덴에 위치한 종머드. 종머드는 100그루의 나무라는 뜻인데, 그만큼 나무가 많은 지역이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사막화가 급속하게 진행돼 현재 남은 나무는 36그루뿐. 죽어가고 있는 나무도 많다. 군데군데 점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김경하 기자

지난 15일 찾은 돈드고비 지역 아이막(道) 셍차강 솜(郡). 이곳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마을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뒷산에 오르니, 황토색 땅 위에 저 멀리 푸르른 숲이 한눈에 들어왔다. 기후변화로 국토의 78%가 사막화된 나라에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 지난 2009년, 한국의 비영리단체 ‘푸른아시아’가 이 지역에 자리를 잡으면서 변화는 시작됐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100㏊의 숲을 조성하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한 경기도 고양시의 도움도 컸다. 이보람 푸른아시아 몽골지부 간사는 “비술나무, 포플러, 버드나무 등 방풍림과 차차르간(비타민 나무), 블랙커런트(black currant) 등 유실수까지 총 7만여 주를 식재했다”고 설명했다. ☞푸른아시아가 몽골에 나무를 심는 이유가 궁금하시다면?

고비사막과 가까운 지역이지만, 마을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뒷산에 오르니 저 멀리 푸르른 숲이 한눈에 들어왔다. ⓒ김경하 기자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울창한 숲과는 다르지만, 척박한 몽골 땅에서도 7만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몽골 고양의 숲 입구. ⓒ김경하 기자

◇몽골에 나무 심기 8년… 황무지가 푸른 숲으로 바뀌다

나무가 정말 잘 자랄까. 15일 오후, 제2조림지에서는 주민들의 관수(灌水) 작업이 한창이었다. 주민들은 양손에 20L 크기의 양동이를 들고, 우물에서 물을 퍼다 나무가 심긴 구덩이까지 부지런히 날랐다. 높이 5m가 넘는 최장신 포플러 나무 그늘은 땀을 식히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군데군데 노란 열매의 차차르간 나무도 보였다. 지난해만 230㎏을 수확해 마을에서 소비하고, 지역에 내다 팔기도 했단다. 마을에 4년째 거주하며 주민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오르트나삼(25)씨는 “1㎏당 5000투그리크에 팔아 총 260만 투그리크(한화 약 130만원)을 주민공제회 기금으로 적립했다”고 설명했다.

몽골 돈드고비 지역 아이막 셍차강 솜 ‘고양의 숲’ 제2조림지에서 관수 작업을 하고 있는 주민 직원들의 모습. ⓒ김경하 기자

순식간에 일궈낸 결과가 아니다. 2009년 처음 조림장을 만들 때 가장 힘든 일은 자기 집 담벼락에 쌓인 모래를 치우는 작업이었다. 나무라곤 한 그루도 없는 황무지 땅이라 거대한 모래바람이 잦았다. 이동형 푸른아시아 홍보국장은 “적어도 일주일에 2회 이상 가족들이 총동원돼 삽과 양동이 등을 이용해 쌓인 모래를 치우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벽돌공장 사장이 트럭을 이용해 매주 모래를 실어 나르기도 했단다. 건조하고 단단한 토양, 거대한 모래바람…. 장애물이 많았지만, 지치지 않고 울타리를 치고, 방풍림을 조성했다. 사업 첫해 생존율 90%. 가능성을 눈으로 보여주자, 현지 주민들과 지역 공무원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현재 셍차강 솜에 조성한 ‘고양의 숲’은 현지 주민직원 33명이 직접 관리한다. 조림지를 관리할 지역 주민을 고용하면서 조림 사업의 지속성을 더하기 위해서다. 제2조림지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에르덴벌렉(43)씨는 전형적인 환경난민이다. 셍차강 솜 근처 마을에서 유목민으로 생활하던 그는 “이상 한파인 ‘조드(Dzud)’로 가축의 절반이 죽었다”고 말했다. 2009년 몽골을 강타한 조드로 1200만 마리의 가축이 얼어 죽을 정도였다. 에르덴벌렉씨는 남은 가축을 팔고 일자리를 구하던 중 조림지 경비원으로 고용됐다. 33명의 주민 직원 중 3명의 경비원은 아예 조림지 옆에 게르를 짓고 거주한다.

‘고양의 숲’ 제2조림지에 게르를 짓고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에르덴벌렉씨 부부. ⓒ김경하 기자

◇”모래만 있던 땅이 변해가는 걸 보니 감동적”

나무 한 그루가 가져온 변화는 크다. 먼저, 주민들에겐 일자리가 생겼다. 락와(74) 할아버지는 “할 일 없이 있는 것보단 몸을 오히려 움직이는 것이 건강에 좋다”면서 “예전엔 모래만 있었던 땅이 변해가는 것을 눈으로 보니 감동적이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조림 작업을 배웠던 어떵치멕(30)씨는 주민팀장을 맡아 전문성을 살려 일하고 있다. 오르트나삼씨는 “딸 유치원비도 벌고,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싶어 일하게 됐다”고 했다.

‘고양의 숲’ 조림사업 전 돈드고비 아이막 셍차강 솜 전경. 나무를 한 그루도 볼 수 없다. 2009년 조림사업 전 찍은 사진. ⓒ푸른아시아

이뿐만 아니다. 셍차강 솜 토박이 주민들은 하나같이 “모래바람이 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미세먼지와 황사의 발원지이기도 한 몽골 사막 지역에서 나무 7만 그루 때문에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는 것. 밤바수렝(58)씨는 “옛날엔 전부 모래였고 황무지였다”면서 “숲을 만드니까 모래바람도 막아줘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2015년에는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아이막’에 조림지를 조성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동형 국장은 “유목민의 특성상 조림사업에 대해 대체적으로 회의적인데 의외의 피드백이었다”고 말했다.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움직임 덕분에 아이막에서는 셍차강 솜에서 수도 울란바토르로 이어지는 도로 부근에 총 10㏊ 규모의 조림지를 조성하여 포플러, 비술나무, 버드나무 등을 6000여주 식재했다. 푸른아시아와 고양시의 조림사업이 끝나는 2019년부터는 아이막이 ‘고양의 숲’ 관리권을 이양받는다.

조림지에 관수 작업을 하기 위해 우물에서 물을 퍼다나르는 주민 직원들. ⓒ김경하 기자

몽골 ‘고양의 숲’ 조성사업은 동아시아의 사막화와 황사 방지조림을 인정받아 2015년에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이 주는 ‘생명의 토지상’ 중 최우수상을 받았다. 아무래도 이 상의 큰 몫은 황무지 땅에서 나무 한 그루의 소중함을 발견한 33명의 주민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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