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청소년을 바리스타로, 카페 보노보
그날도 어김없이 아빠의 폭력이 시작됐다. 견디다 못한 현수(가명)는 다급히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그때 받았던 상처로 마음 둘 곳 없던 현수는 게임 중독에 빠졌다.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게임만 했고, 고등학교도 그만뒀다. 그렇게 2년이 흐르자 현수는 상대방의 눈을 못마주칠 정도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졌다.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 대신 현수를 돌보는건 오로지 할머니의 몫. 할머니는 무릎 수술로 성치 않은 몸으로 야채가게를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현수는 갑갑해졌다. 지겨운 가난도, 술에 빠진 아버지도, 삶에 체념한 자신의 모습도 벗어던지고 싶었다. 컴퓨터를 끄고 방을 나선 현수는 한 카페의 문을 두드렸다. 학교 밖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는 ‘카페 보노보’다.
보노보는 청소년들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다.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안정적인 일터와 쉼터를 만들어주기 위해 서대문청소년수련관이 2008년 세운 테이크아웃 커피 사회적기업이다. 수련관 내 12평 남짓한 공간에 카페 보노보가 자리하고 있다. 카페 보노보에선 미래의 바리스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커피 및 학업에 관한 무료 교육과 실습이 이뤄진다. 학교 밖 청소년들이 커피를 통해 사회성, 청결, 예의, 성취감 등 삶을 배워나갈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자 배움터다.
현수는 보노보에 다니면서 180도 달라졌다. 게임 중독으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던 ‘아웃사이더’에서 어엿한 카페 직원으로 다시 태어난 것. 카페 보노보의 정식 인턴이 된 그는 바리스타라는 새로운 꿈에 도전 중이다. 처음엔 컵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지만 이젠 새로운 메뉴 개발까지 제안할 만큼 열심이다. 실력이 느는 만큼 마음의 여유도 자라났다. 그만뒀던 학교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현수는 “그동안 고생하셨던 할머니를 위해 바리스타라는 꿈을 꼭 이루고 싶다”며 눈을 빛낸다.
현수처럼 카페 보노보로 오는 학교 밖 청소년들은 다양한 이유로 사회와 멀어져있다. 이들은 가정, 학교 등에서 입은 상처를 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카페 보노보를 찾는다. 왕따를 당해 공황장애가 온 아이부터, 자신의 삶은 더이상 회복 불가능하다며 죽고 싶다는 아이까지. 각자의 사연을 안고 온 아이들은 카페 보노보를 통해 삶의 희망을 되찾아갔다.
이들은 카페 보노보에서 커피 이론 공부, 카페 업무 실습을 배운다. 한 달간 수업 태도, 출결, 테스트 결과를 평가해 통과할 경우 보노보에서 인턴십 활동을 할 수 있다. 커피 수업만 하는 건 아니다. 주 1회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한국사, 컴퓨터, 여행학습 등 삶에 꼭 필요한 인문학도 배운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드는 프로젝트 수업도 진행된다. 가보고 싶은 곳을 회의를 통해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카페 보노보를 통해 학교 밖 청소년 10명이 총 6000만원을 지원받았다.
그런데 요즘 카페 보노보에 걱정거리가 생겼다. 중고 커피머신의 수명이 다해 한 달에 한 번은 꼭 고장이 나는 것. 10년도 더 된 기계라 좋은 원두를 좋은 기술로 커피를 내려도 커피 맛이 좋아지지 않는단다. 머신을 교체하고 싶지만 카페 매출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 채진아 서대문청소년수련관 팀장은 “청소년들의 열정과 꿈을 키우고 싶은데 시설이 너무 열악하다”며 “청소년들이 아픈 상처를 이겨내고 마음껏 꿈꿀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전했다.
※카페 보노보를 후원하고 싶다면? 여러분이 카페 보노보에 보내주시는 후원금은 커피머신 교체비용과 청소년 바리스타 일자리 창출(현재 2명에서 5명으로)을 위해 사용될 예정입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이 다시 사회 속으로 나올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을 더해주세요. ☞카페 보노보 후원하기
※이 기사는 채진아 서대문청소년수련관 팀장이 더나은미래와 동그라미재단이 함께 진행하는 ‘비영리 리더 스쿨 4기’ 과정을 통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