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람답게, 소는 소답게
동물복지는 결국 사람을 위한 것
소는 본래 풀을 먹는 동물이다. 1970년대 산업화로 농기계가 보급되면서 소는 더 이상 풀을 먹으며 일할 필요가 없어졌다. 예전 우리나라에선 소에게 줄 수 있는 사료가 없었다. 볏짚이 전부였다. 그래서 곡물과 배합사료를 수입해 먹이기 시작했다. 소를 빨리 키우고 쉽게 마블링을 하기 위해서였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소고기는 모두 배합사료로 키운 한우다. 풀 먹인 한우, 그 고유의 맛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보다 소가 더 많다는 전남 장흥. 이곳의 99%는 배합사료를 먹이는 공장식 소 사육을 한다. 그러나 ‘풀로만 목장’, 이곳은 예외다. 풀만 먹은 한우의 맛은 어떨지, 대체 뭐가 다른 것일지 풀로만 목장 조영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조영현 대표 부부는 2011년 귀농, 올해로 7년째 ‘풀로만 목장’을 경영하고 있다. 장흥까지 내려와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그는 서울에서 사료 원료를 수입해 국내에 파는 무역업을 했다고 한다.
“30년 가까이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축협, 사료공장, 소 키우는 사람들이었다. 접대를 받을 때면 그 날의 가장 좋은 소고기를 먹었다. 미국을 30회, 중국을 80회 넘게 다니면서 하루 한 끼는 스테이크를 먹었다. 몇십 년 동안 좋다는 고기는 다 먹어봤지만 느낌이 없었다. 해외의 목축업을 보면서 보고 배운 것으로 ‘풀을 먹인 이런 소고기를 생산해주시오’라고 축산 농가들에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하기로 했다.”
“얘들아 밥 먹자.”
조영현 대표의 한 마디에 푸른 초원에 있던 소들이 하나 둘 축사 안으로 들어왔다. 조 대표가 준 것은 두 가지 건초. 대체 어떤 풀들일까. ‘알팔파’와 ‘라이그라스’다. 모두 직접 재배한 사료들이다. 단백질을 공급하는 알팔파는 소의 영양을 채워준다. 라이그라스는 섬유질을 공급한다. 여기에 천연 암반수와 신안에서 직접 공수해온 토판천일염을 먹인다. 그래야 소고기의 오메가3와 균형 잡힌 영양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며 조영현 대표는 연신 풀더미를 날랐다.
“한 끼를 먹여도 세 번에 나눠서 준다. 소의 침이 풀에 묻으면 미생물이 번식하여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소도 냄새나는 풀은 안 먹는다. 매 끼마다 두 시간에 걸쳐 밥을 줘야하는 이유다.”
◇초원이 없는 한국, 풀 먹여 키울 수 있었던 비결
일반 소와 달리 풀 먹인 소, 일명 ‘그래스 페드 비프(Grass-fed beef)’를 키우는 것에 어려운 점은 없을까. 이 질문에 조 대표는 “소를 키우는 게 아니라 기른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답했다.
“장흥에서는 누구나(?) 소 20마리쯤은 가지고 있다. 아침에 기계로 소 앞에 사료를 한번 풀어놓으면 저녁까지 걱정 없다. 공장식 사육으로 가능한 시스템이다. 공장식 사육이 편하다. 아침에 밥 주고 자기 일 보러 나가도 되니깐. 실상 풀 먹여 키우는 건 볏짚이나 배합사료 먹여 키우는 것과 가격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영양 가치를 따지면 차이가 크다. 볏짚은 소가 몸속에서 이용하는 영양 가치가 낮다. 볏짚 100㎏을 먹이면 소는 30%만 소화시키지만, 목초 100㎏을 먹이면 60%를 소화시킨다. 게다가 볏짚에 농약을 많이 쳐서, 소 몸에 축적된 게 사람 몸에도 축적되기 때문에 좋지 않다.”
조 대표는 목축업자들이 편한 것, 공장식 사육에만 익숙한 점을 꼬집었다. 그렇다면, 소를 초원에서만 길러야 할까. 그는 이 질문에 “국내는 뉴질랜드나 미국만큼 드넓은 초원이 없을뿐더러 새로운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초원에 풀어놓고 기르는 소. 상상만 해도 좋아 보인다. 하지만 소가 어디가 아픈지, 출산할 때가 되었는지 등의 상태를 체크하기에는 힘들다. 따라서 방목은 방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계류식 우사(소가 운동장이나 방목장에 나가 있는 경우 외에는 소를 목에 걸쇠나 체인으로 걸어 계류시키는 형태)와 방목을 결합해야 한다. 한국에서 한우를 키우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어떤 마블링(지방)인지가 중요
‘고기박사’로 잘 알려진 주선태 경상대학교 축산생명학과 교수는 풀로만 목장 소고기를 부위별로 성분을 분석했다. 풀로만 목장 소의 오메가3와 오메가6의 비율이 1대 4로, 권장 섭취비율이 정확하게 나왔다. 옥수수가 주성분인 배합사료를 먹인 소고기가 보통 1대 100이다. 오메가 6의 과다섭취는 혈압을 증가하고 만성염증을 유발시킨다. 한마디로 풀만 먹인 이 소고기의 불포화지방산이 오리고기 수준이다.
얼마 전, 조 대표의 소는 1++(투 플러스)등급을 받았다. “여분의 에너지가 있으면 소들은 자기 몸에 지방을 만들어 저장한다. 목초를 먹고 잘 자란 소들도 마블링이 당연히 낀다. 마블링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어떤’ 마블링인지가 중요하다.” 국내 대부분의 1++등급소고기의 마블링이 곡물 배합사료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대해선 아쉬움을 드러냈다.
밥을 다 먹은 소가 갑자기 동그란 브러쉬에 자기 몸을 비볐다. 조 대표가 설치한 카우 브러쉬(Cow Brush)다.
“소도 자신을 가꾼다. 스스로 몸에 배설물 혹은 흙이 묻거나 등이 간지러울 때 저걸 이용한다. 일반적으로 축사에서는 배설물의 냄새 때문에 환풍기를 크게 틀어 놓는다. 소를 위한 것이 아닌 사람을 위한 것이다. 환풍기의 소음으로 소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요들송을 틀어놓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 그게 동물복지다. 음악을 들려주고, 카우 브러쉬도 한번 사서 계속 쓰는 거면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풀로만 목장 축사 안에서만 2시간을 인터뷰했다. 이곳의 위생상태가 일반 축사와 얼마나 다른지를 알 수 있었다.
“먹거리 생산, 좀 더 공익적이어야 한다.”
12마리로 시작한 조 대표의 목장엔 현재 소 60마리가 있다. 그의 소는 일반 소에 비해 두 배~두 배 반 정도의 가격에 거래된다고 한다. 연매출만 1억 원이 넘는 ‘부농’이다. 하지만 그가 이 일을 하는 건 돈 때문만은 아니다.
“그래스 페드 비프가 유행이라고 해서 한우 키우는 농가를 비롯해 학생들 등 견학 온 사람이 800명이 넘는다. 실제 한 젊은이는 그래스 페드를 직접 해보기도 했는데, 1년 반 만에 포기했다. 1년 365일 휴일도, 명절도 없이 하루에 세 번 풀을 먹이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자유가 없다.”
그는 인터뷰 내내 소의 입장과 먹는 사람의 관계를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소다움’은 소가 마땅히 먹어야 하는 것을 먹이는 데 있다고 했다. 마블링으로 한우를 고급화해온 지난날의 전문가들의 노력을 인정하지만, 우리의 먹거리 생산은 더 공익적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소 한 마리를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4년을 기다려야 소고기는 한 점을 먹을 수 있다. 어미 소가 10개월 새끼를 배고 있다가 송아지를 낳고, 그 송아지는 30개월은 꾸준히 공을 들여야 사람이 먹을 수 있다. 그 어떤 동물보다 시간과 자금이 많이 들어간다. 닭은 요즘 35일만에 먹는데, 사료와 육종 때문에 키워서 먹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닭이 아니라 ‘닭병아리’를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돼지는 6개월이 걸린다. 소는 어찌 보면 슬로푸드의 대명사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 로 동물복지와 먹거리에 대중의 관심이 최근 높아지고 있다.(영화 ‘옥자’는 비밀을 간직한 채 태어난 거대한 슈퍼돼지 옥자와 강원도 산골에서 함께 자란 소녀 ‘미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소를 소답게 키우는 것은 결국 이를 먹는 사람에게 좋은 것이다.’ 소답게 키운 소에서 얻은 소고기가 대중화되는 것, 조영현 대표의 꿈이다.
박윤아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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