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최고&최악의 모금광고는? 2017 라디-에이드 어워즈 추천이 시작됐다

라디-에이드 어워즈(Radi-Aid Awards)를 통해 본 글로벌 모금 광고

굶주림에 지쳐 숨을 헐떡이는 아이. 엄마는 말라버린 가슴을 부여잡으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들리는 목소리.

한 달 3만원이면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금 광고의 한 장면이다. 영상을 만든 모금 단체들은 굶주리고 병든 사람들의 비극적인 모습을 조명하며 사람들의 후원을 이끌어낸다. ‘빈곤 포르노’. 이 자극적인 광고를 비판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빈곤 포르노’ 자세히 알아보기

‘빈곤포르노’는 극단적인 빈곤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어 기부를 부추기는 모금 광고다. 이러한 광고 전략은 국내외 구호 단체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적지 않게 애용되어 왔다. 그런데 아동 인권과 국제 개발 개념이 재해석되면서부터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빈곤포르노가 비판의 대상인 된 것은 벌써 수년 전의 일. 보다 창의적이고 윤리적인 모금 광고에 대한 요구가 커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국제 모금 광고계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한 단체가 있다.

라디-에이드 어워즈가 주목 받은 계기가 된 영상 ‘Africa for Norway’의 한 장면. 라디-에이드 어워즈의 주최 단체인 SAIH는 영상에서 수혜 대상을 아프리카가 아닌 노르웨이로 설정했다. 빈곤 포르노를 이용한 그동안 모금 광고를 풍자한 것이다. ⓒSAIH

노르웨이 학생 및 교수 20만여명이 활동하는 교육 단체SAIH’는 매년 라디-에이드 어워즈(이하 라디-에이드)를 통해 부적절한 모금 영상과 창의적인 모금 영상을 뽑는 온라인 투표를 실시한다. 가장 부적절한 광고로 선정된 모금 영상에는 불명예스러운 ‘러스티(Rusty)’ 라디에이터 상이, 가장 창의적인 광고로 선정된 모금 영상에는 영광의 ‘골든(Golden)’ 라디에이터 상이 돌아간다.   

지난 6월 2일, SAIH의 학생 부회장이자 라디-에이드의 프로젝트 매니저, 테아 윌록 뉴오스타(24·Thea Willoch Njaastad)씨와의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3년부터 지난 4년간 꾸준히 모금 광고의 방향에 대해 고민해 온 라디-에이드와 그 수상작들을 소개한다.

◇라디-에이드 어워즈,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영상1. ‘노르웨이를 구하는 아프리카(Africa for Norway)’

1961년 SAIH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차별 정책(Apartheid)에 저항하면서 설립되었다. 1999년부터는 서구 미디어가 아프리카나 다른 개발도상국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폭력과 갈등, 빈곤과 기근으로 단순화된 이미지가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2012년 SAIH는 남아프리카의 작은 영상 제작팀 ‘아이카인드(iKind)’와 풍자적인 ‘가짜 모금 광고’를 공동 제작하기에 이른다. 아프리카를 구하는 노르웨이가 아닌, ‘노르웨이를 구하는 아프리카(Africa for Norway) 광고’는 여러 나라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SAIH는 여세를 몰아 2013년 또 다른 영상을 만들었고, 같은 해 처음 라디-에이드 어워즈를 시상했다. 라디-에이드 어워즈 후보작에 오른 모든 모금 영상들은 공식 투표가 시작되기 6개월 전부터 네티즌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추천한 광고들이다.

◇가장 외면 받았던 ‘구닥다리(러스티)’ 모금 광고

영상2. ‘내 후원자가 되어 줄래요?(Will You Be My Sponsor?)’

지난 4년 간 최다 득표로 러스티 라디에이터 상을 탄 모금 영상은 무엇일까. 제1회 러스티 수상작, 차일드펀드(ChildFund)의 ‘내 후원자가 되어 줄래요?’가 그 주인공이다. 심사위원들은 이 광고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심사위원들은 각각 커뮤니케이션, 국제개발학, 저널리즘, 공공정책을 포함한 다양한 관련 분야 전문가들로, 네티즌들로부터 추천 받은 다수의 모금 영상들 중 공식 투표에 올라갈 3~4 작품을 심사한다.)

“이 영상에서 아이들은 너무 가난한 나머지 주체적으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개체로 묘사됩니다. 서구의 후원자들을 구원자로 그리는 것은 단순히 불쾌한 것을 넘어섰어요. 매일 후원되는 92센트를 아이의 인생 전체와 저울질할 수 있을까요?”

노후 시설과 구조적인 불평등, 빈곤한 삶만을 강조한 모금 광고는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복잡한 문제들을 조명하는데 번번이 실패한다. SAIH는 이와 같은 모금 광고들이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편견을 우려하고 있다.

테아 윌록 뉴오스타 SAIH의 부회장은 “부적절한 모금 광고는 구호 대상국의 장기적인 발전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구호 단체의 모금액을 줄어들게 해 단체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구호 단체들은 사람들이 더 이상 자극적인 모금 광고에 지갑을 열지 않는, 높은 ‘기부 피로도’ 문제를 겪고 있다.

◇골든 모금 영상, 사람들은 어떤 광고에 지갑을 여는가?

영상3. ‘영웅들과 기적의 아기(The Heroes and the Miracle Baby)’

반대로, 여기 최다 득표로 골든 라디에이터 어워드를 수상한 모금 광고가 있다. 비교적 최근 수상작인 하얀헬멧 시리아(White Helmets Syria)의 ‘영웅들과 기적의 아기’다. ‘하얀헬멧’은 시리아 내전 현장에서 활약한 민간 구조 단체다. 작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으나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이 선정되면서 대안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바른생활상(The Right Livelihood Award)을 수상했다.

‘영웅들과 기적의 아기’는 내전이 일어난 시리아를 수동적이고 무력하게 비추던 기존 미디어와 달리 구조 현장에서 아기를 구출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구조대원의 독백과 극적인 표정 변화는 무너진 집에서 아기를 구출하면서 그가 체감한 생명의 소중함을 전달해준다.

뉴오스타 부회장은 “골든 라디에이터 어워드에는 편견에 둘러싸인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고도 훌륭하게 기부를 이끌어 내는 영상이 후보작에 오른다”고 설명했다.

“수상작의 영예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시청자들에게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 시청자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대신 희망을 이야기하는 모금 광고에게 돌아갑니다.”

◇2016년 최고의 모금 광고, 라디-에이드 어워즈가 바라는 미래

영상4. ‘긍정적인 삶을 사랑하라(Love a Positive Life)’

‘영웅들과 기적의 아기’에 이어 지난해에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강조한 모금 광고가 골든 라디에이터 어워드를 수상했다. HIV/AIDS 얼라이언스(HIV&AIDS Alliance)의 ‘긍정적인 삶을 사랑하라’다. 라디-에이드 어워즈의 심사위원들은 이 영상을 일컬어 “HIV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광고”라고 평했다.

영상에서 HIV 환자인 여성은 ‘Link Up’이라는 캠페인 활동에 참여하는 등 그녀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며 밝은 태도로 일상을 즐긴다. 이를 통해 HIV/AIDS 얼라이언스는 HIV/AIDS에 감염된 사람들도 불쌍한 피해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자율적인 존재임을 알리고, 그들의 삶을 지원하기 위한 도움을 구한다.

(왼쪽부터) 뉴오스타(Thea Willoch Njaastad) SAIH 학생 회장과 리제트(Inga Marie Nymo Riseth) 학생 부회장, 오그와드(Beathe Øgård) 학생 부회장. ⓒSAIH

‘긍정적인 삶을 사랑하라’가 골든 라디에이터 어워드를 수상하고 나서, HIV/AIDS 얼라이언스는 라디-에이드 어워즈 관계자에게 감사 인사를 보냈다. 뉴오스타 씨는 라디-에이드 어워즈가 얼마나 직접적으로 구호 단체들의 모금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의 활동이 국제 언론과 학계, 그리고 NGO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르웨이에서나 국제적으로나 감시견(watchdog)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어워즈’라는 재미있는 방법을 통해서 모금 영상에 관한 이슈를 제기하죠. 사람들이 그동안 구호 대상국을 어떻게 보아왔는지, 혹시 그들을 보고 있는 시각이 잘못되진 않았는지 공론의 장을 열어주는 거예요.”

실제로 라디-에이드 어워즈가 살펴본 구호 단체들 중 일부는 모금 영상을 제작할 때 라디-에이드 어워즈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라디-에이드 어워즈의 초창기부터 일해 온 심사위원들은 2013년부터 매회 후보작들을 선정하면서 ‘나쁜’ 후보작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해외 NGO들은 물론, 국내 구호 단체도 시청자의 죄책감을 자극하여 기부를 이끌어냈던 기존의 모금 광고와 다른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어쩌면 2017년 하반기에 예정되어 있는 골든 라디에이터 어워드 투표에서 국내 구호 단체의 이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재 라디-에이드 어워즈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2017년 최고와 최악의 모금 광고를 가려내기 위한 제 5차 공개 후보작 추천이 진행되고 있다.

장희수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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