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비영리 조직, 건강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때

비영리 전반이 몸살을 앓고 있다. 비영리조직 관리자들은 ‘요즘 애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이다. “사명감도 없고, 시키는 일만 하고, 할 만 하면 이직이니 뭐니 딴생각을 한다”고 한다. “우리 세대는 적은 돈 받으면서도 열정적으로 일했다”는 이야기도 뒤따른다. 반면 ‘요즘 애들’도 할 말은 있다. “처음에 비영리기관을 알게 됐을 땐 가슴이 뛰었는데, 일해보니 조직의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한다. “일하는 곳이 뭐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신입들은 머지않아 떠나고, ‘일할 사람’이 없다며 위에서는 난리다.

문제가 뭘까.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재현<사진> NPO스쿨 대표는 “지난 20여년간 조직운영 방식을 돌아봐야 할 때”라고 이야기한다. “너나없이 ‘똑똑한 조직’이 되기 위해 애쓰는 동안 서서히 건강을 잃어왔다”고 한다. 지난 3월, ‘건강한 조직’을 출간한 이재현 대표에게 ‘비영리 조직의 건강성’에 대해 물었다. 그는 경실련, 대한상공회의소를 거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미국 유나이티드웨이에서 근무했다. 2년 전 NPO스쿨을 만들고 다양한 비영리들을 만나 온 비영리 조직 전문가다. 

지난 11일,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열린 건강한 조직ㅇ
지난 11일,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열린 책 ‘건강한 조직’ 북 콘서트 현장. ‘조직의 병을 진단한다’며 의사가운을 입은 이재현 NPO스쿨 대표. ⓒ서울시NPO지원센터

◇제 3섹터, ‘건강성’ 잃은 ‘똑똑한’ 조직들

책에서, 그는 가상의 비영리단체를 소개한다. 

90년대, 활동가 몇몇이 모였다. ‘어려운 이웃을 돕자’며 뜨거운 마음으로 비영리 조직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내내 토론하는 게 일이었다. 사회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전달해야 할지, 다른 단체와는 어떻게 달라야 할지, 누구와 협력해야 할지, ‘존재 의의’에 대한 고민에 고민이 거듭됐다. 돈 벌긴 글렀대도 마음이 통하는 경험이 짜릿했다. 사회에 기여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다. 그런데 차차 일이 많아지고 식구가 늘면서, 조직은 ‘효율적인 제도’를 하나 둘 갖춰나갔다. 부서를 만들고, 부서장도 뽑았다. 전원이 모이는 ‘비효율적’ 회의를 ‘부서장 회의’가 대체했다. 부서별 업무 분장도, 성과평가 제도도, 권한과 위임을 명시한 전결제도도 만들었다. 그래서 그 결과는? 규칙은 세세해졌지만 일에선 늘 누수가 생겼다. 부서원들 사이에선 오해와 소문이 돌았다. 정체성이나 방향은 고민에서 멀어졌고, 떨어진 사업 잘 처리해 성과를 내는 게 최대의 목표가 됐다.

가상의 단체지만, 대부분의 비영리 조직이 밟아온 이야기. 이 대표는 “비영리조직이 존재 의의에 대한 고민을 멈추고 효율적인 방식의 운영에만 집중하다 보니 구성원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사업을 관행화 시켰다”며 “비영리는 사명과 가치 기반으로 설립된 조직이고 그렇게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ㅡ책 제목이 ‘건강한 조직’이다. 조직의 건강성을 다룬 이유가 무엇인가.

“지난 몇 년간 컨설팅을 통해 100여곳의 비영리조직, 신입활동가에서부터 사무총장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모두가 비슷한 휴유증을 호소하더라. 20여년간의 조직운영 방식을 돌아봐야 할 때라고 봤다. 지금까지 많은 조직들이 ‘똑똑한 조직’ 만들기에 집중했다. 기업 경영 시스템, 마케팅, 전략 기법 등을 도입했고, 분업이나 평가 같은 경영 시스템을 갖췄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정말 중요한 걸 놓쳤다.”

ㅡ어떤 부분을 놓쳤다고 보나.

“본질적인 질문에 논의가 없어졌다. 우리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하는 기관인가, 어떤 변화를 만들어야 하는가와 같은 고민들이다. 이 영역을 선택한 이들은 돈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온 거다. 그런데 입사한 뒤론 가치를 느낄 여지가 없는 구조다. 단체의 ‘존재 의의’를 담은 미션과 비전은 문구로만 남은 거다.”

ㅡ비영리단체라면 미션, 비전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지 않나. 매번 다시 이야기해야 할 이유가 있나.

“글로만 있는 미션은 의미가 없다. 조직의 모든 활동이 미션과 정렬돼야 하고, 모든 조직원이 자신의 일을 ‘미션’과 연결시켜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비영리에서는 막상 입사한 뒤론 가치를 느낄 여지가 없다. 회의 때는 사업 이야기만 이뤄진다. 조직이 내건 가치에 마음이 동해 입사했다가도, 들어온 뒤엔 공무원, 직장인과 다를 바가 없게 느껴지는 구조다.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게 이어지면 ‘기업과 다를 바가 없는데 월급은 적고 일은 많다’고 한다. 뜨거웠던 이들도 금새 식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것의 힘, 시스템을 뛰어넘는 ‘조직문화’

ㅡ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며, 너나없이 기업의 운영방식을 비영리에 도입했다. 비영리에 꼭 맞는 경영 툴이나 평가 체계가 있다고, 또 이런 저런 제도나 규칙을 도입하면 조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분업화도 하고, 팀별 업무 분장도 정리했다. 현실과 맞지 않는 게 생길 때마다 규칙에 규칙만 더해왔다. 그 결과가 비영리의 ‘정교한 관료주의’로 이어졌다. 조직으로서의 임팩트가 불분명하다. 사업 성과가 조직의 성과인 것처럼 여겨진다. 풀어야 할 사회 문제는 더 복잡해졌는데, 부서는 잘게 쪼개져 ‘모금액’, ‘홍보횟수’ 같은 팀 차원 성과에 매달리게 만든 거다. 비영리조직의 운영 방식은 정부나 기업과는 달라야 한다. 제도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조직의 가치, 문화가 조직을 운영 원리의 중심이 돼야 한다.”

ㅡ건강한 조직이란 무엇일까.

“세세한 규칙을 정해 통제하지 않아도 되는 조직, 일일이 지시하거나 보고하지 않아도 각자가 역할을 찾고 일 안에서 가치를 찾으며 능동적으로 돌아가는 조직이 건강하다는 데 이견이 없을 거다. 조직원들 스스로가 성장하기를 원하고, 성장하는 조직이다. 건강하지 않은 조직에서는 리더나 중간관리자, 그 아래 직원들이 같은 목표를 향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꿈을 꾼다. 건강한 조직에서는 위부터 아래까지 모든 구성원들이 일관된 곳을 본다. 사회적인 임팩트도 크다. 실제로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 패트릭 렌치오니는 ‘똑똑한 조직을 지향하는 곳은 건강한 조직이 되기 힘들지만, 건강한 조직을 지향하면 필연적으로 똑똑해진다’고도 했다.”

ㅡ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말은 좋지만 제도를 갖추는 게 아닌, 문화를 바꿔나간다는 게 쉽지 않아 보이는데.

“일단은 규칙에 그만 의존할 때가 됐다. 시스템은 충분하다. 근원적인 존재 이유를 곱씹기 시작할 때다. 이곳에 온 각자의 첫 마음,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를 나누고, 모두가 같은 방향을 향해 함께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합의해야 한다. 그렇게 합의한 조직의 진정성이 모든 사업이나 행동의 결정 기준이 돼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관리자 입장에선 건강한 조직보다는 ‘똑똑한 조직’을 만드는 편이 쉽다. 건강한 조직은 시스템이 아닌 조직 문화적 접근이다 보니 변화가 더디다. 에너지도 계속해서 투입해야 한다. 반면 똑똑한 조직은 통제와 보상 등 시스템으로 설계가 가능하다. 팀제 개편이나 규칙 도입 등 지시만 하면 되기 때문에 훨씬 쉽다. 그렇지만 문화는 한번 정착되고 나면 규칙에 비해 훨씬 지속 가능한 동력이 된다.”

ㅡ건강하지 않다고 해도, 다들 지금까지 오지 않았나. 모금액도 늘고, 규모도 성장했는데. 이런 문제들이 지금 불거진 이유가 뭘까.

“평상시에는 문제가 안된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위기를 겪거나 단체가 휘청거리면, 선배만 버틴다. ‘옛 기억’이나마, 이들은 신념과 가치를 기반으로 서로 공유하는 문화가 있다. 그런데 조직의 가치에 일치될 기회가 없었던 후배나 신입들은 완전히 흔들린다. 그간은 성장의 시기였다. 조직의 성장 안에 이런 고민들이 가려져 있다가, 성장이 멈추니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거다.”

 

◇기초체력 다지고, 건강하게 거듭나려면

ㅡ컨설팅을 통해 ‘건강하게 바뀌어간’ 단체 사례가 있나.

“난민인권센터(이하 난센) 사례를 들고 싶다. 난센은 2009년 설립된 단체다. 단체를 창립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던 김성인 사무국장이 7년 근속 후 안식년을 떠나고자 했다. 이에 ‘세대전환’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당시 2년 미만, 20~30대 3명과 20대 인턴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나와 상의해서 활동가 및 인턴 모두가 참여한 자리에서 ‘세대 전환 컨설팅’을 9번에 걸쳐 이어나갔다. 책상에 어떤 문서도 없었다. 우리가 누구 인지, 왜 여기에 왔는지, 어떻게 서로 존중할 수 있을지 계속 이야기한다. 사무국장의 업무나 권한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에 대한 부분이 아니다. 결과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각자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았고, 협업의 문화가 생겼다. 서로 성장하는 기쁨도 맛봤다.”

ㅡ규칙이 없으면 ‘조직원들이 느슨할 것’이라 염려하는 관리자들도 있을 것 같은데.

“관리자가 시스템이나 규칙에 의존하는 건 불안함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규칙은 가시적으로는 통제가 가능한 듯 보인다. 또는 서로가 규칙을 합의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 같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규칙의 해석과 적용을 두고 또다른 갈등이 있다. 신뢰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궁극적으로 비영리 조직이 딛고 있는 신뢰 기반 자체를 약화시킨다. 난센의 경우에도 지표나 규칙으로 만들어 해결하려 했다면 더 냉랭한 분위기만 만들었을 것이다. 두꺼운 법전이 수 십 권 있다 해도 작은 절도 사건 하나 막을 순 없다. 규칙은 영원히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다. 오히려 규정이 세세하면, 개인은 이런 저런 조항들을 가져다 대며 그 뒤로 숨는다. 규칙 사이 느슨한 공간이 있을 때, 조직문화가 그 자리를 메운다.”

ㅡ그런데 결국 이 모든 논의가 리더가 문제의식을 갖고 있을 때나 가능한 게 아닌가. 리더가 건강하지 않은 곳에서는 바꿀 의지 자체가 없다. 조직 내 개인으로서는 무기력하거나 막막한 느낌이 들 것 같은데. 

“문제 정의가 해결의 시작이다. ‘우리에겐 이러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정의한 리더에겐 해결의 여지가 있다. 그런데 ‘나는 열심히 하는데 애들이 문제다, 모금 환경이 문제다’는 식으로 자신을 제외한 외부 환경에서만 답을 찾는 리더를 둔 조직은 변화하기가 힘들다. 결국 리더가 바뀌지 않으면, 그가 바뀔 수 있도록 조직원이 나서 ‘리더십’을 보이고 햇볕정책을 피는 것도 필요하다.”

ㅡ제3 섹터에 종사하는 비영리 종사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의 비영리 종사자들이 모여 영국 선진 사례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영국 공무원에게 누군가 ‘협치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가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라 하자, 한국 참가자가 ‘그건 알겠고, 그래서 뭐가 정말 중요하냐’고 다시 되묻더라. 우리는 수십 년간 시스템 하나면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답은 거기 있지 않다. 

결국은 존중하고, 이해하고, 보듬는 과정이다. 그것이야말로 비영리 조직의 중요한 자산으로 다시 여겨져야 한다. 비영리의 건강성은 사회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들 한다. 한국이 이만큼 온것도 제3섹터의 역할이 컸다. 더욱 건강하고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건강한 섹터로 거듭나야 한다.”

 

건강한 조직건강한 조직|이재현 지음|지식과감성|265쪽|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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