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방지대책 1년 평가 좌담회
아동 학대 신고 전년 대비 55%↑, 전국 학대예방경찰관 303명 배치
23만명 부모에 양육 관련 교육 등 아동보호기관과 공조 체계 눈길
“현장 인프라 구축 확보보단 사회 전반 인식 개선 우선 돼야”
지난해 3월 정부의 ‘아동학대 방지대책’ 발표 이후, 연간 아동학대 신고접수 건수는 2만5873건으로 전년 대비 55%나 증가했다. 현장은 얼마나 변했을까.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아동복지NGO 굿네이버스는 ‘아동학대 방지대책 발표 1년, 성과와 발전 방향’이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사회로 열린 좌담회에는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 본부장, 우철문 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과장, 임대식 보건복지부 아동권리과 과장,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명애 안산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가나다순)이 참석했다.
◇아동학대 방지대책 1년…정부 합동점검, 경찰-아동보호기관 공조 체계 이뤄져
이봉주=먼저 대책을 발표한 정부와 경찰,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에서 부문별 성과를 공유해 달라.
임대식=정부는 지난해 위기 아동 1만7000여 명에 대한 합동 점검을 했다. 학대 사례 90여 건을 조기 발견해 피해 아동 보호 및 부모 교육을 실시했다. 또 관련법 개정으로 신고의무자 범위 확대 및 미취학·장기 결석 아동에 대한 신속 발견이 가능해졌다. 전국 4개 검찰청에 여성아동범죄조사부를 신설하고 59개 검찰청, 252개 경찰서에 전담 검사 및 여성청소년 수사팀을 배치한 것도 성과다. 약 23만명의 부모가 자녀 양육 관련 온라인 교육 영상을 필수적으로 시청하는 등 국민 인식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우철문=학대 예방 및 사후 관리를 전담하는 학대예방경찰관(APO·Anti-Abuse Police Officer) 303명이 전국 252개 경찰서에 배치돼 있다. 이들이 여성청소년 전담 수사팀과 적극 대응해 작년 아동학대범죄 사법 처리가 전년 대비 70% 증가했다. 지역 아보전과의 협업으로 경찰관의 현장 동행 조사율도 86% 늘었다. 지난해 6차례 걸친 정부 합동 점검에서도 의뢰받은 774명 아동의 소재를 확인하고, 보호자 40여 명을 아동학대 혐의 등으로 송치했다. 올해도 미취학아동 점검 과정에서 478명 의뢰 아동의 소재를 확인하고 그중 10건에 대해 수사 중이다.
장화정=가장 큰 변화는 아보전과 경찰의 공조 체계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제 아동학대가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된다. 경찰이나 가정법원에서도 아보전 입장을 반영해주고, 관련 조치를 취할 때 학대 행위자의 실질적 변화를 위해 노력해준다. 인식 개선 면에서도 아동학대 신고 전화(아동지킴콜 112), 학대 예방 포스터 등에 생활밀착형 홍보가 많이 됐다는 점을 상당한 성과로 본다.
◇업무 과중·예산 부족…현장에서는 인프라 구축 원해
이봉주=현장에서 아동학대 방지대책이 어떻게 적용됐는지, 지역사회가 느끼는 체감도를 말해달라.
김정미=대책 발표 이후, 현장에서는 학대 사례 수가 굉장히 늘었다. 전수조사 등을 통해 학대 아동들이 많이 발견됐다는 얘기다. 다만 전수조사에 착수하면 현장에서는 피해 아동 후유증 치료, 가족 기능 회복 등 기타 전문 서비스들이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상담원이 당장 개입해 보호해야 하는 아동이 있어도 밀려오는 다음 학대 사례들에 대응해야 해 부담이 크다.
장화정=인천 어린이집 사건 이후 나온 대책이 CCTV 설치에 예산 약 360억을 배치하고, 보조교사의 보수율을 1만원에서 일부 높이는 수준에서 끝났다. 2년 사이 아보전은 10개 늘었으나, 사건마다 전수조사가 들어오면 업무 과중이 심하다. 2015년 아보전 상담원 업무 시간이 약 131만5575시간이었다. 상담원 1인당 84일을 초과 근무하고 있다.
한명애=안산 아보전의 경우, 상담원 업무량이 주당 평균 60~70시간이다. 아동학대 조사팀은 2인 1조로 3개 조가 월 120군데 현장에 나가고, 사례관리팀이 1인당 평균 112사례(80가정)를 감당한다. 1년을 채우기도 전에 몸이 아파 그만두는 상담원들이 많다. 고위험 아동(25세 미만 부모에 36개월 미만 아동)에 집중하는데 나머지는 관리가 안 된다.
정익중=아동학대의 사회·경제적 비용은 최소 3899억원에서 최대 76조원으로, GDP의 5.1%다. 그런데 정부 예산은 이 비용의 최소 4.3% 수준, OECD 평균의 7분의 1 정도다. 다른 저출산 국가들의 우선순위는 항상 아동인데, 우리는 워낙 관련 예산이 적어 비교조차 힘들다.
이봉주=현장의 업무 부담에 대해 정부가 어떤 중장기적인 대책을 준비하고 있는가.
임대식=정부도 아보전, 학대피해아동쉼터 등의 증설과 예산 보완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갖고 있다. 현재 관련 대책으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가정 내 학대 징후를 미리 확인하고 아동가구 전반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지역복지과 내 ‘복지 허브’와 연계해 공공자원과 민간자원을 활용하는 방법도 모색 중이다.
정익중=정부가 가진 빅데이터가 아동학대 연구를 위해 공유돼야 한다. 출생신고 의무화로 정부가 빠뜨리는 사각지대도 없애야 한다. 18세 미만 아동 사망 건수가 1년에 2000건이다. 병이나 교통사고처럼 사인(死因)이 분명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수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결국 사회 전반 인식 개선이 먼저
이봉주=마지막으로 아동보호 체계의 문제점이나 한계, 해결책에 대한 제안을 말씀해 달라.
김정미=인프라의 문제가 가장 크다. 현장에서도 손발이 있어야 움직인다. 굿네이버스는 2014년부터 아동보호 체계 관리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상담원 1인당 적정한 사례 수, 제공 가능한 적정 서비스 등에 대한 연구 결과를 조만간 중간발표하고 2018년 최종 발표한다. 이런 연구들이 국가의 관리 체계 안에 정책으로 잘 반영됐으면 한다.
한명애=아동학대를 발굴하는 관련 복지기관, 건강가정지원센터 등 기관들은 시·군·구 단위로 하나씩 다 있다. 그런데 정작 사례를 받아 관리하는 아보전이 시·군·구 단위가 아니어서 업무량이 상당하다. 시·군·구 단위 아보전 추가 설치가 가장 필요하다. 또한 경찰과의 협업 측면에서, APO가 현장에 나오면 아동 관련 응급조치를 할 수 있는 수사팀에 이를 다시 전달해야 한다. 이때 현장을 보지 못한 수사팀과 의견 차이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 다소 아쉽다. 개선방향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장화정=올해 중앙정부 아동 보호 예산 약 236억원 중 대부분이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 의존한다. 정부 일반 예산(보건복지부 일반 회계)으로 넘어오는 것이 근본적 해법이다. 경찰의 인식 교육도 필요하다. 경찰이 방임이나 정서 학대에 대해 ‘이 정도는 학대가 아니다’라고 보기도 한다. 세미나나 워크숍을 통해 인식 차이를 좁혀가야 한다.
우철문=학대예방 경찰관 증원 및 현장 법 집행력 강화 같은 경찰 인프라도 중요하다. 현재 현장에서 학대 의심자의 작위적 방해는 처벌할 수 있으나, 단순 거부나 기피 등 부작위적 방해 행위에 대해서는 제재 수단이 없다. 경찰이 접근금지 같은 임시 조치를 신청할 때도 피해자들은 법원에 직접 신청하는 반면, 경찰은 검찰을 거치게 돼 있다. 해외 경찰처럼 법원에 바로 신청하도록 절차를 간소화해 신속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