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Cover Story] 50대인 나도 유산 기부… 이제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지 않을까요? ①

[Cover Story] 1억원 유산 기부… ‘헤리티지클럽’ 4호 회원 김영걸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잘나가던 교수님’에서 NGO 재능 나눔가로

이제 갑자기 교통사고가 난다 해도 마음이 편안해요.

100세 시대에 아직 6부 능선도 오르지 않았는데,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김영걸(58·사진)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다. 그는 최근 1억원을 유산 기부, 기아대책 ‘헤리티지클럽(유산 기부자들의 모임)’ 4호가 됐다. ’50대에 웬 유산 기부?’라고 의아해하는 이들을 위해 직접 인터뷰에 나섰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CRM(고객 관계 관리) 전문가인 그가 언론에 고액 기부자로 나서는 건 처음이다. 14년째 NGO에 재능 기부를 해오며, 기부 전도사가 된 그를 지난 11일 서울 홍릉동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에서 만났다.(그는 최근 보직이 바뀌었다며 ‘카이스트 발전재단 상임이사 김영걸’이라는 명함을 내밀었다.)

김영걸 카이스트 교수 (2)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내 그의 연구실에서 인터뷰 중인 김영걸 교수. ⓒ조선영상미디어 양수열 기자

―이미 1억원 이상 기부한 고액 기부자 모임인 ‘필란트로피 클럽’ 회원인데, 왜 ‘헤리티지 클럽’에도 가입했나.

“클럽 중독은 아니다.(웃음) 필란트로피 클럽은 1년 반 만에 회원수 50명을 넘기며 건강하게 잘 성장하고 있다. 근데 헤리티지 클럽은 1년 넘도록 3명밖에 안 되더라. 아직 우리나라 문화에서 확산이 어려운 기부 방식인 것 같았다. 형제들한테도 권했더니 ‘아직 창창한데, 왜 벌써 죽는 이야기를 하느냐’고 꺼려하더라. 유산 기부에 대한 인식이 둘 중 하나다. ‘젊은 나이에 괜히 나중 일로 폼 잡는 거 아니냐’는 인식, ‘괜히 기부했다가 사고라도 나는 것 아닌가’ 하는 징크스에 대한 두려움이다. 활성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헤리티지 클럽 1호’가 돌아가신 어머니(故 설순희 여사)였는데, 어머니 1주기에 맞춰 유산 기부를 결심했다.”

―유산 기부 하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야 할 것 같은 인식이 있다. ‘유산 1억원 기부’가 생소하다.

“아내의 첫마디가 이랬다. ‘좋은 일이긴 한데, 당신 돈 없잖아.’ 통장에 겨우 백몇십만원밖에 없었다. 4년 전 주택을 지어 이사했고, 재작년 딸 둘 결혼시키고, 기아대책 한톨청소년봉사단장 하면서 열심히 후원하고 나니까 내 수중엔 현금이 별로 없다. 아내는 ‘당장 사고라도 나면 (유산 기부 위해) 집을 팔아야 하느냐’고 물었다. 어머님 사후에도 1억원 유산 기부부터 먼저 하고 맨 마지막에 상속세를 냈으니까 아내는 그게 걱정된 것이다. 퇴직금, 일시 위로금, 사망 보장형 보험금 등을 합치면 1억원 정도 되더라. 집을 안 팔아도 된다니 아내도 오케이했다.”

―유산 기부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가.

“정말 쉽다. 나와 내 자녀 혹은 자녀 대표 한 명이 가서 유산 기부 약정서에 사인하면 된다. 기아대책에서 변호사나 세무사 및 관련 서비스를 전부 지원해준다. 사회를 위해 뭔가 하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르는 분들에게 적합한 방식이다. 당장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유산’이니 살아있는 동안 할 필요가 없다. 현찰, 주식, 부동산, 심지어 보험까지 어떤 것으로든 기부할 수 있다. 고액 후원처럼 액수가 정해져 있지도 않다.”

김영걸 교수가 약정서에 서명한 뒤 (왼쪽부터)강창훈 메이저기프트 본부장, 아내와 딸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기아대책
지난 4일, 유산기부 약정식에서 김영걸 교수가 약정서에 서명한 뒤 (왼쪽부터) 전두위 메이저기프트 본부장, 아내 심영선씨, 딸 김지인씨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기아대책

 

◇모자(母子)가 함께 유산 기부… 국내 유산 기부 문화 확산 바라


―유산 기부 약정식에서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어머니께 유산 기부를 권해 드린 일”이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어머니는 85세임에도 정정하셨다. 근데 유산 기부를 약속한 후 두 달도 안 돼 쓰러지셨고, 7개월 후 돌아가셨다. 사람이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 않나. 건강할 때 유산 기부를 권했고, 어머니께서 흔쾌히 결정하신 게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장례식장에서 ‘설순희 여사님 기아대책 유산 기부’라 쓰인 팝업 광고를 단체에서 세워줬다. 다들 어머니가 전 재산을 기부하신 줄 알고 놀라고 큰 감동을 했다. 어머니는 자녀·손주들 앞에서 찬사를 들으시고, 자녀는 ‘훌륭한 어머니 두셨다’ 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걸 본 누군가가 유산 기부에 동참할 마음을 먹으면 더욱 좋은 일이지 않나. 실제로 헤리티지 2호 후원자도 고액 후원자 모임에서 어머니의 사례를 듣고 기부를 결심했다고 한다. 얼마나 큰 기쁨인가.”

―어머니께 유산 기부 1호를 권한 계기는.

“사실 10년 전부터 유산 기부의 필요성을 이야기해왔다. 1만원부터 4만5000원까지 정기 후원하는 해외 아동 결연 프로그램만으로는 수요에 한계가 있다. 계속 굶는 아이들의 모습만 보여주는 방식보다는 고액 기부와 유산 기부 같은 블루오션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왔다. NGO 입장에서 유산 기부는 기부했다고 당장 후원금이 들어오는 기부도 아닌 불확실한 기부다. 그래서 ‘이미 한 분 확보해놓았다’고 설득했다. 그 한 분이 바로 어머님이었다(웃음). 5남매인데, 형제들도 좋은 일이라며 모두 찬성했기에 가능했다.”(그의 여동생은 매일유업 김선희 대표로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과 사촌지간이다.)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유산 기부 문화가 제대로 정착 안 됐다. 유류분(상속인을 위해 법률상 유보한 상속 재산의 일정 부분) 제도가 있어서 사후에 자녀에 의해 유산 기부가 뒤집히는 등의 송사도 있었다. 이 때문에 NGO에서도 유산 기부 캠페인을 적극 벌이지 않았는데….

“기아대책 간사님들께 ‘기증자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억원 기부했으니까 이제 더 하실 일 없겠네’라고 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처음에는 보통 재산의 일부를 한다. 앞으로 30년 더 산다고 했을 때, 내 재산이 늘어나면 어디에다 기부하겠는가. 유산 기부 약정해놓은 기관에다 하지 않겠나. 미래산업 정문술 회장님이 개인 기부 역사상 최초로 카이스트에 300억원을 기부했다. 사람들은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근데 215억원을 더 기부하고, 110억원인가를 유증으로 더 기부했다. 유산 기부는 시작일 뿐 남은 기간 점점 더 많은 기부를 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실향민 1세대 창업주들은 돌아가시기 전에 통일이나 북한을 위해 좋은 일 해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을 것이다. 이분들이 절실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기회를 드려야 한다.”

김영걸 교수의 사무실 액자에는 ‘최경주 자선 골프대회’, ‘슈팅 포 아프리카’ 등 기아대책에 재능 나눔을 해온 이력이 모두 담겨 있었다. 무려 14년째 이어진 인연이다. 한 NGO에 유산 기부를 하기까지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50대인 나도 유산 기부… 이제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지 않을까요? ②편 읽기

인터뷰=박란희 더나은미래 편집장 / 정리=박혜연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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